시장경제의 비효율성 보여 주는 반도체 부족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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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반도체 부족 현상은 자동차 산업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 지엠, 포드, 폭스바겐 등 전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감산에 들어갔다. 개당 1~2달러 하는 반도체 부족 때문에 올해 1분기에만 전 세계 자동차 생산이 130만 대 감소했다고 한다. 또, 올해 전 세계 자동차 업계 매출이 606억 달러
반도체 재고를 비교적 많이 확보했다고 알려진 현대자동차도 감산을 피하지 못했다. 현대차 울산1공장은 4월 7일부터 일주일간 가동을 중단했고,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도 12∼13일에 이어 19~20일에 또다시 가동을 중단했다. 부평 2공장 가동률을 50퍼센트로 유지하던 한국지엠도 19일부터 일주일간 부평 1, 2공장 전체를 정지한다. 갈수록 감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처럼 자동차 업계가 반도체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은 기업들이 수요 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자 자동차 기업들은 반도체 주문을 줄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동차 수요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자동차 기업들이 부랴부랴 다시 반도체를 주문했지만, 반도체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수요가 늘어난 컴퓨터
여기에 2월에는 분명 기후 변화와 관련 있는 북극발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되며 자동차 업계는 물론 가전 업계와 컴퓨터
이 때문에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은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애플의 위탁생산 전문 업체인 폭스콘의 회장 류양웨이는
자유 시장 경쟁
반도체 부족 현상은 2021년이 경기 후퇴에서 벗어나는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에서는
흔히 주류 경제학은 시장의
그러나 가격은 공급과 수요를, 생산과 소비를 결코 순조롭게 연결할 수 없다. 생산은 항상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격은 생산이 완성될 쯤에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해 주는 게 아니라, 생산이 시작되기 전에 원했던 바를 나타낼 뿐이다.
이번 반도체 부족 현상에서도 드러나듯이 제조업 생산은 최종 소비를 불과 두어 달 앞두고 시작되는 게 아니다. 반도체 생산의 증대도 수년에 걸쳐 고정자본에 막대한 투자를 해서 공장을 짓고 기계를 설치하는 일에 좌우된다. 게다가 반도체 생산은 한 번 작업에 들어가면 수개월간 미세공정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이어져야 하고, 어떤 이유로든 한 번 공장이 멈추면 앞뒤로 수개월간의 공정이 쓸모 없어지는 산업이다.
따라서 생산 계획에 관한 조율이 필수이지만
이처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비롯하는 비효율성은 최근의 백신 공급 부족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이 제기됐지만, 충분한 이윤을 얻을 수 없다고 본 제약회사들과 주요 국가들은 백신 개발에 나서지 않았었다. 팬데믹이 벌어지자 거대 제약회사들은 신속하게 백신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개발 계획은 전혀 조율되지 않았고, 백신 생산을 위한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혼란스러웠다. 변이 발생을 막기 위해 백신 접종은 가능한 빨리 전 인류에게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은 계속돼 왔지만, 이윤을 위한 제약회사들과 각국 정부의 백신 경쟁 때문에 팬데믹 대처는 실패하고 있다. 코로나 감염병은 풍토병이 될 공산이 매우 커진 것이다.
사실 계속되는 장기 침체야말로 자본주의의 비효율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를 생산할 수단과 일할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능력들은 낭비되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처하려면 현재의 생산 방식을 완전히 개편하기 위한 세계적인 수준의 계획과 생산 조율이 시급히 필요하지만,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기업과 정부들은 인류에게 닥칠 재앙보다 당장의 이윤을 더 신경 쓰고 있다.
게다가 지배자들은 자본주의의 이런 구조적 문제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 한다. 이미 자동차 기업들은 감산에 따른 피해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시작했다. 위기 대응을 위해 국가 재정 지출이 증대하자, 복지와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부족 심화시키는 미·중 갈등
반도체 부족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과 중국 간의 경제적 경쟁도 격화하고 있다.
4월 12일 미국 정부는 반도체 부족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지엠, 글로벌파운드리, TSMC, 삼성전자 등 기업 19곳의 경영진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미국에서의 반도체 생산을 압박하기 위해 기업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이미 지난 2월 24일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이런 조처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는 중국의 기세를 그대로 놔둘 경우 패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물론 세계 반도체 시장은 여전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세계 반도체 매출의 48퍼센트를 차지한다. 하지만 미국 내 공장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12퍼센트에 불과하다. 1990년 37퍼센트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다. 반면, 한국
한편, 중국은 중국대로 첨단기술 개발이 절실히 필요하다. 중국 경제는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첨단 반도체 기술에서는 여전히 1~2세대 뒤처져 있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이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이다. 2019년 중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3000억 달러를 웃돌았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이런 성장세를 꺾어야 중국이 패권 도전에 나설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중국의 거대 IT 기업 화웨이를 제재해 이를 고사시키려고 하는 미국 정부의 행보를 보면 이런 의지를 잘 알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만 경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독일 총리 메르켈은
그런데 이런 경제적 경쟁의 심화와 자국으로의 공급망 확보 전략은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자 주요 기업들이 반도체 재고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TSMC 마크 리우 회장은
한편, 한국 기업과 정부는 미
물론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계획이 제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이다. 사실 반도체 산업은 새로운 산업의 등장에 따른 자본의 분산과 집적
초기에 반도체 기업들은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 반도체 회사
이처럼 반도체 산업 내 여러 분야로의 자본의 분산과 각 분야 내에서의 거대 자본의 등장은 자본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한 파산
따라서 주요국 정부들이 국가 경쟁력을 위해 자국 내로 반도체 공급망을 모두 확보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자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격화하는 세계 패권 경쟁은 산업 생산지의 변경 과정을 더욱 촉진할 듯하다. 그리고 이런 경쟁 압박은 안 그래도 불안정한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반도체 부족 사태가 흘끗 보여 줬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