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활동가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배척 중단을 건설노조에 호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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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가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조합원 1600여 명이 참가했다.
이 집회는 임단협 체결을 위한 파업 결의대회 일정의 일부였다.
건설노조 내에서 이주노동자 배척 문제는 지속돼 온 쟁점이다. 일부 지부는 건설 현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출입을 막는 활동을 벌여 왔다.
이번 사건은 여기서 더 나아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에 12월 28일 영남 지역의 7개 이주노동·인권 단체(경산이주노동자센터,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경주이주노동자센터, 대구이주민선교센터,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 울산이주민센터, 이주와가치)가 해당 집회를 규탄하고,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에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단체들은 대경건설지부에 집회 취소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 7개 단체들은 1월 8일까지 추가 연서명을 받아 또 성명서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 단체와 개인을 포함해 900여 곳이 동참했다. 그리고 민주노총 위원장 면담 등을 추진하고 있다. [기사 발행 이후 민주노총 위원장 면담 기일인 1월 19일까지 연서명 마감이 연장됐고, 연서명 동참도 1000여 곳으로 늘었다.]
이 성명서는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의 죽음도,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은 이주노동자의 죽음도 잘못된 제도를 노동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정권과 자본의 탄압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에게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잡아가라는 집단행동을 하는 순간, 노동자들은 서로 갈라지고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무력해진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배척을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배척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기본권, 노동조건이 한국인 노동자와 동등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민주노총의 강령에도 위배된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의 지도부는 연서명한 단체들의 요구에 책임 있게 응답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재발 방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건설노조 모두, 고용 불안이 만연한 상황에서 사용자들에게 소속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를 위해 공사 현장 점거나 태업·출입 통제 등의 행동도 하지만, 부적절하게도 사용자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을 관할 노동청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실제로 신고하기도 했다. 직접 조합원들을 동원해 공사 현장 출입구를 지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신분증을 검사하고 출입을 막기도 한다.
지난해 정부의 ‘건폭’몰이 공격을 등에 업은 사용자들이 노조원을 해고하고, 건설 경기가 악화되는 등 고용 불안이 심해지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척이 더 커진 듯하다. 자신이 해고된 자리에 이주노동자가 고용된 경우 그런 배척을 더 자극했을 것이다.
그러나 건설업에서 고용 불안과 저임금의 주범은 다단계 하도급을 확산한 사용자들과 이를 용인하는 정부이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아니다.
더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 배척은 매우 근시안적인 태도다. 당장의 일자리를 얻는 데 다소 도움이 될지 몰라도, 노동자를 분열시켜 정부와 사용자에 맞서 싸울 힘을 장기적으로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절박한 필요와 조금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한국에 온다. 최근 네팔 정부가 고용허가제 한국 조선업종 한국어능력시험에 탈락한 네팔 노동자들에게 제조업 한국어능력시험 응시를 금지하자 시위가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 네팔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이 시위에서 두 명이 사망했다.
한국은 중동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이주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조금은 나은 편이다. 그래서 정부가 주기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해도 그 수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늘었다.
정부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모두 내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하다가,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단속을 느슨하게 한다. 이런 패턴으로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처지에 묶어 놓고, 이를 전체 노동자의 조건을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이용한다.
따라서 노조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을 신고하면 정부가 어느 정도 단속을 하고 일부 현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출입을 저지할 수 있어도,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열악함을 이용해 한국 노동자를 압박하는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제 살 깎아 먹기
미등록이든 ‘합법’ 신분이든 이주노동자는 이미 전체 건설 노동자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들을 적으로 돌리고서 노조가 힘을 발휘하는 데는 절대적 한계가 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전체 노동자 약 180만 명 중 이주노동자는 32만 명이 넘고, 그중 11만 명 이상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추정된다(건설근로자공제회, ‘2024년 건설근로자 수급전망’). 반면,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은 약 14만 명이다(한국노총 건설노조를 합치면 25만 명가량).
설령 일부 현장에서 이주노동자 배척이 가능하더라도 그런 행위는 제 살 깎아 먹기일 뿐이다. 이는 현장에서 노조의 투쟁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정부의 ‘건폭’몰이가 한창일 때, 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강요’했다며 경찰이 우선 수사 대상으로 지목한 건설 현장 중에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이주노동자 고용을 문제 삼은 곳도 있었다.
노조원들이 배척적인 말을 하며 자신보다 열악한 처지의 이주노동자들을 쫓아내는 장면이 저녁 9시 뉴스 전파를 타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해 5월 〈조선일보〉는 경기도의 한 건설 현장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 규탄 집회를 보도하며 “‘외국인 노동권 보장’ 외치더니 … 일자리 뺏는 민노총”이라고 비난했다.
우파 언론의 비난은 역겹도록 위선적이지만, 정부와 사용자, 우파가 노조를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데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배척 행위 같은 협소한 부문주의의 약점을 이용하기 쉽다는 점을 보여 준다. 노조에 대한 경멸감을 조성해 노동개악의 추진 동력을 얻으려는 것이 ‘건폭’몰이의 목적 중 하나였다.
이주노동자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임금 저하 없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낮춰 일자리를 늘리라는 등 모든 건설 노동자(한국인·이주 노동자)를 단결시키는 요구를 내놓고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