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건설노조와의 ‘200일 전쟁’ 선포:
법치를 내세워 노동자 투쟁 단속하기
〈노동자 연대〉 구독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 추진에 사활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고 임금 등 조건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일부 노동조합을 ‘기득권,’ ‘불법’ 세력으로 몰아 공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노조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조성해 노동개혁 추진의 동력으로 삼고, 투쟁 속에서 오랫동안 정착돼 온 ‘관행’을 불법으로 몰아 사용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당장 공격의 타깃은 건설노조를 향해 있다. 윤석열 정부는 건설노조에 대한 “200일 전쟁”(지난해 12월 8일부터 올해 6월 25일까지)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특히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가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하며 동조 파업에 나서자 공격에 고삐를 죄였다.
지난 1월 19일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양대노총 등 건설노조 사무실 34곳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해당 노조들의 전·현직 간부들이 2020년 말부터 2022년 초까지 건설 현장에서 소속 조합원의 채용을 강요하고 각종 명목의 돈을 요구했다며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상 공동 공갈·강요 등 혐의를 적용했다.
설 연휴 직후부터는 대대적인 현장 특별단속도 시작했다. 경찰은 최근까지 186건(929명)을 수사해 23명을 송치(7명 구속)했고 890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선
정부와 사용자들과 친기업 언론은 “건설 현장에 만연한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자는 누구인가?
안전 설비 미비로 매년 건설 노동자 400여 명이 사망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산재 사망사고는 건설 산업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더 빈번해진다. 지난해 건설업에 종사한 노동자는 200만 명이 넘는데, 그중 약 80퍼센트가 일용직·비정규직이다.
이 속에서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위험과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건설업 사용자들은 인건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접고용을 회피해 왔다. 가령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건설사에 직고용된 정규직이었다. 그런데 IMF 외환 위기 이후에 기업들이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고 노동자들을 특수고용·비정규직으로 내몰았다.
사용자들은 숱한 불법을 저지르면서 안전 규정을 무시하고, 인력을 최소화하고, 공사기간 단축에 혈안이다. 임금 체불도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건설업 임금 체불 규모는 지난해 11월 기준 2639억 원으로, 2021년보다 285억 원이나 증가했다.
정부는 사용자들의 이런 부당노동행위는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되레 이 알량한 누더기 중대해재처벌법조차 후퇴시키겠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 안전·생명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던 정부와 경찰, 건설 자본들이 건설노조의 활동을 ‘조직적 불법 행위’, ‘조직적 폭력’이라며 단속에 나선 것이다. 윤석열이 말하는 “법과 원칙”의 실상이다. 이만한 적반하장도 없다.
노림수
경찰은 건설노조가 사용자들에 맞서 투쟁하는 것, 즉 ‘집단적 위력을 과시하는 업무방해·폭력 행위’, ‘불법 집회·시위’ 등을 단속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공사 현장 점거, 태업·출입통제 등이 공기를 지연시키는 업무방해라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건설 노동자들은 매년 집단적으로 싸워서 일당을 1만~2만 원씩 꾸준히 올려 왔다. 그 속에서 조합원 수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도 광주·전남 지역의 건설 전기 노동자들은 50일간 현장 투쟁, 거리 시위, 한전 본사 점거 등을 벌이며 끈질기게 싸워서 임금을 인상시키고 유급휴가를 얻어 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건설기계 노동자들도 투쟁으로 임금 인상을 따냈다.
특히 건설 경기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사용자들은 이런 저항을 위축시키고 길들이려고 칼을 빼든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화물연대 파업에 연대하고 나선 것도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정부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노동조합이 “위력”을 행사해 사용자들에게 부담을 지워 온 ‘관행’도 뿌리 뽑겠다고 야단법석이다. 건설사들이 정부에 고발한 대표적인 노조의 ‘부당행위’ 사례가 타워크레인 월례비(고발 사례의 59퍼센트), 노조 전임자 임금(27퍼센트), 채용 ‘강요’(6퍼센트) 등이다.
그러나 타워크레인 월례비는 사용자들을 “공갈 협박”해서 뜯어낸 검은 돈이 아니다. 되레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노동강도를 높이고 시간외 근무를 시킨 대가로 지급하는 일종의 성과급이다. 사용자들이 공기를 단축하고 인력 충원 비용을 절감하려고 노동자들에게 추가적인 일을 시키면서 월례비 관행이 생겼다. 아무 대책도 없이 이런 관행을 없애겠다는 것은 사실상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도 노사 간 체결한 단체협약에 따라 지급되는 것이므로, 공갈협박죄를 들먹일 게 아니다. 사용자의 전임자 임금 지급은 노조법상 근로시간면제한도제(타임오프제)로 보장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의 공격에 단호하게 맞서면서도 활동가들은 정부의 압박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노동자 단결을 위해 효과적인 방안이 무엇일지 하는 논의는 필요하다.
가령 사용자들로부터 전임자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 전임자 임금을 조합원들이 지급하는 것이 현장 조합원들이 노조 간부들을 통제하며 조합 민주주의를 지키도록 강제하기가 더 나을 것이다.
노동자 단결
조합원 채용 ‘강요’ 문제도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과 이익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민주노총이든, 한국노총이든 건설노조들은 고용불안이 만연한 상황에서 사용자들에게 자기 조합원을 채용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는 사용자들이 건설 현장의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려고 조합원들을 채용에서 배제하거나 복수노조를 악용해 온 것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자리가 중요하고, 노동조합이 이를 따낼 통로가 돼야 조합원을 유지하고 늘릴 수 있다는 생각도 퍼져 있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조합원들에게는 단기적으로 이로울지 몰라도,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로울 수 있다. 특히 경제 위기로 건설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조합원 채용 요구는 줄어드는 파이를 놓고 노동자들끼리 경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일부를 배제시키는 효과를 낳기 십상이다.
그럴수록 정부와 사용자들이 노조를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기 더 쉬워질 것이고, 아직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실망을 줄 수 있다.
더구나 경기 후퇴 시기에는 기존 조합원들의 일자리도 따내기 어렵기 때문에, 노조가 신규 조합원을 받지 않으려 하거나 조직 확대 노력을 중단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난다. 노동자들이 더 광범하게 단결해 투쟁할 필요가 있는 때에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 점에서, 노동조합이 일자리 경쟁의 한복판에 뛰어들기보다 노동강도를 낮추고(건설 현장은 노동강도가 세기로 유명하다)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라고 요구하며 투쟁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폐지하고 건설사들이 직접고용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어떤 요구를 내놓고 투쟁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과 단결에 이로운지는 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토론하고 논쟁해 결정할 문제다. 고용 불안에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정부가 나서서 처벌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