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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노동시장 구조개악 강행 위험, 지금이(9~10월) 저항할 때다

이 신문이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인 오늘(9월 11일) 오전, 정부(합동브리핑)는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다음주 초부터 당정협의를 진행하는 등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밀고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정부는 두 가지를 노리는 듯하다. 첫째, 노사정위 막판 타결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노동계와 경제계에 조속[한] 결단”을 촉구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강행 추진 예고는 타협 결렬로 이어지기보다 오히려 막판 합의 촉진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올해 상반기 공무원연금 개악 과정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 새누리당은 실무기구(공무원연금 ‘개혁’ 대타협기구의 후신)에서 합의안이 나오지 않더라도 5월 1일까지 국회특위에서 개악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결국 실무기구는 5월 1일에 맞춰 공무원연금 개악 합의안을 냈다.(이 합의에 공노총과 교총뿐 아니라 민주노총 가맹조직인 전공노의 이충재 당시 집행부도 서명했다.)

흔히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우리가 반대하더라도 개악이 추진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이런 협상에 매달리곤 한다. 자신들이 타협에 나서지 않으면 더 나쁜 안이 관철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한국노총이 막판 타결로 이끌릴 위험이 적지 않은 이유다.

정부의 노림수는 둘째, 명분 쌓기다. 노사정위 타결이 안 돼 정부 주도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강행하더라도, 대타협을 위한 노력을 할 만큼 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물론 노사정위 타결을 이루지 못한 채 국회 논의에 들어가면 여러 난관에 봉착할 수 있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시간의 촉박함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 길을 택할 경우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심화되는 경제 위기, 박근혜가 한·중 정상회담 등 외교적 ‘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정치 상황, 꾀죄죄하고 한심한 새정치연합, 노동계 저항 가능성의 불투명성 등은 정부가 이런 길을 택할 수 있는 조건이 되고 있다.

노사정위 논의 중단 촉구와 논의 개입, 둘 다?

어느 경우이든, 이 신문의 지난호 사설 ‘이렇게 생각한다’(필자의 논설, ‘민주노총 하반기 투쟁 계획에 부쳐’로 대신한 글)에서 강조됐듯이, “9~10월 투쟁이 매우 중요”한 상황임을 보여 준다. 그 글은 “무엇보다 투쟁의 형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일들이 이때 벌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주말과 다음 주초는 노사정위 타결 또는 정부 주도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강행의 기점이 될 수 있다. 만약 노사정위 대타협이 이뤄진 후 국회 법안 논의로 넘어가면, 그때 가서 이를 막기는 매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노사정 막판 타결을 막거나, 설사 타결되더라도 한국노총 지도부가 결코 노동자 대중을 대변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대규모 저항을 지금 조직해야 한다.

정부가 다음주 당정협의를 시작으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추진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강행시 즉각 총파업 돌입” 결정대로 투쟁에 들어가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강행시 즉각 총파업 돌입” 결정대로 투쟁에 들어가야 한다 9월 2일 서울역에서 열린 보건의료노조 결의대회. ⓒ사진 조승진

이런 급박한 상황에 비춰 봤을 때, 민주노총 지도부가 지난 10일 ‘노사정위 논의 중단 촉구’ 농성을 아무런 후속 투쟁지침 없이 종료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

상당수 노동조합 지도자들이나 활동가들은 당장 투쟁을 배치할 동력이 있는가 하는 회의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지난 몇 달 동안 제시하거나 실천한 방향이 조합원들의 투쟁 기대감을 높이는 효과를 내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니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가령 노사정위에 대한 민주노총의 태도는 표면적인 단호함과는 달리 내부적 혼란을 드러냈다.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는, 대타협이 성사되느냐에 관계없이 복귀만으로도 (정치적 상징으로서) 효과를 낼 것이 뻔했다. 그것은 주요 공기업들의 급속한 임금피크제 합의와 투쟁 전선의 동요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전에 강력한 반대 압력을 형성하지 않았다(한국노총 기층에서 상당한 반발이 있었음에도). 그 전에 민주노총과 야당이 국회 논의 등 ‘사회적 합의’의 군불을 피운 것도 (의도치 않았을지라도) 한국노총이 노사정위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좀 더 쉽게 만들어 준 면이 있다.

더욱이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논의 중단을 촉구하는데도 그 가맹조직인 공공운수노조는 노사정위 내 ‘임금피크제 원포인트 협의체’ 논의에 한국노총 산하 공공부문 노조들과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애초 예정됐던 9월 11일 파업 계획을 12일 집회로 축소했다.

이런 문제점은 임금피크제 노·정실무협의 제안에서도 나타났다. 기재부가 ‘원포인트 협의체’ 참가를 거부했을 때 한국노총은 정부의 약속 불이행을 이유로 노사정위 논의를 거부해야 마땅했지만, ‘원포인트 협의체’ 대신 ‘노·정실무협의 기구’로의 대체를 수용했다. 노사정위 논의의 걸림돌을 치워 준 셈인데, 이를 모를 리 없는 공공운수노조 역시 이를 수용했다. 어쩌면 공공운수노조는 노정교섭이라는 점에 구미가 당겼는지도 모른다.

대안을 현실화할 물리적 힘

한편, 민주노총은 8~9월 정책 대안 제시에 공을 들였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임금피크제 등 ‘사회 여론’ 환기에 주력하는 상황에서 그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물론 대안적 요구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대안을 관철할 힘, 즉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부자에게 세금을, 재벌의 사용자 책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상시·지속업무 정규직화 같은 요구는 전혀 새롭지 않다. 심지어 여론조사(리얼미터)를 보면 국민 절반 이상이 임금피크제를 통한 청년 고용이 효과가 없을 것임을 알고 있고,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통한 신규채용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그것을 현실화할 물리적 힘을 어떻게 발휘하느냐다.

일부 노조 지도자나 엔지오 또는 온건 개혁정당의 지도자들은 ‘대안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해서 되겠느냐’는 주장을 흔히 한다. 그러나 사실 이 주장은 대안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정부측 개악안에 대한 일관된 반대가 아니라 타협(양보)안을 찾아보자는 얘기다.

이것은 노동운동 진영을 혼란에 빠뜨리고, 투쟁이 아니라 협상과 사회적 대화에 우위를 두는 것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정규직 과보호론의 허구를 폭로하며 투쟁 속 단결을 제시하기보다, 정규직-공공부문 방어를 수줍어 하며 양보론(가령 고통분담형 임금피크제나 임금삭감형 노동시간단축)을 기웃거리는 것은 대안을 현실화할 힘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대한 불만이 광범하다. 당장 투쟁을 배치할 동력이 있는가 하는 회의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면, 현장 조합원들은 지도부가 투쟁을 호소하면 응할 태세가 돼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현장 조합원들은 노조 지도부보다 ‘왼쪽’(지도가 제공되면 발휘될 투쟁성이라는 면에서)에 있음을 거듭 드러냈는데, 좌파 활동가들은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에도 철도노조 강제전출 합의 부결 등 몇 가지 사례들이 있지만, 가장 최근의 사례만 꼽자면 지난 8월 29일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연가투쟁안이 통과된 것이다.

연가투쟁 폐기 수정안은 가뿐히 부결됐고, ‘활동가 연가’를 ‘전 조합원 연가’로 변경하자는 수정안은 5표가 모자라 아깝게 부결됐다. 만약 활동가들이 조합원들의 진정한 정서를 읽고 미리 전 조합원 연가를 자신 있게 설득했다면, 이것이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될 수도 있었음을 보여 준다.

투쟁들을 하나로 연결하기

비록 현재의 노동자 투쟁이 대체로 보아 차질이 빚어지기 일쑤이지만, 이것은 한국 노동계급이 약화돼서이거나 현장 조합원들이 사기저하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설 만큼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반기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는 민주노총 소속이냐 한국노총 소속이냐를 막론하고 지도부가 이끌면 싸우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좌절된 이유는 노조 지도부들이 파업을 철회하거나 사실상 힘을 싣지 않거나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로는 전통적인 파업 양식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것은 그 자체로 옳지 않은 주장인데다 파업을 회피하는 소심한 노조 지도부를 정당화하는 주장이기 십상이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노조 지도자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총파업 주장(이상주의적)도 나온다. 노조 지도자가 소명하지 않는데도 아래로부터 현장 조합원들이 파업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라면 뭐가 고민이겠는가.

현장 조합원들이 불만과 분노는 크지만 스스로 투쟁에 나설 만큼 자신이 있지는 않은 현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노동조합 지도부의 공식 투쟁 소명을 기회로 삼아 현장 조합원들의 활력과 사기를 높이는 것, 기본적으로 기층을 강화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점에서 보면, 답답한 마음에서 실질적인 파업 조직이나 기층 강화를 가두 선도투쟁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전혀 효과적이지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없다.

민주노총은 9월 12일 공공부문 집회를 비롯한 일련의 투쟁들을 민주노총 차원의 항의로 확대하기 위한 계획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 9월 19일에는 교사와 공무원 집회가 있고, 9월 17일에는 조선업종 2차 공동파업, 9월 18일에는 전국 교수대회가 있다. 금호타이어 지회는 직장폐쇄에 맞서 파업을 이어가고 있고, 현대차지부도 임금피크제-임금체계 개악 반대 등 문제로 쟁의 절차에 들어갔다.

기층의 투사들과 활동가들은 각 부문의 투쟁들이 성공적으로 벌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다른 부문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와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악 반대, 임금 인상 등을 위해 투쟁하면서 맹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금호타이어 노동자, 조선업 노동자, 현대차 노동자 등이 성과를 거두도록 그들을 방어하고 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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