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버니 샌더스의 ‘민주사회주의’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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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2월 5일 국정연설에서 사회주의를 맹비난했다. 이 비난의 한쪽 끝은 베네수엘라였다. “사회주의 정책 때문에 베네수엘라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극도로 가난한 절망의 나라로 전락했다.”
트럼프의 말은 베네수엘라만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사회주의를 채택해야 한다는 요구들이 … [있다. 그러나] 미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버니 샌더스를 겨냥한 공격이었다. 버몬트주(州)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2016년 대선 당시 ‘민주사회주의’를 걸고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 열화와 같은 지지 속에 미국 공식 정치 논쟁에 사회주의를 복귀시킨 바 있다.
2월 19일 샌더스가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반응은 폭발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출마 선언 3시간 30분 만에 미국 모든 주에서 3만 8000명이 27달러(한화로 약 3만 원) 소액 후원금을 보내, 1차 후원금 목표 100만 달러를 달성했다. 24시간이 채 안 돼 후원금은 600만 달러(약 25만 명 참가)로 뛰었다.
샌더스는 출마 연설에서 “100만 명의 기층 활동가가 모여 ‘정치 혁명’을 이루자”고 호소했다. 출마 선언 1주일도 안 돼 100만 명이 샌더스 선거 운동원으로 등록했다. 젊은 층이 특히 많았다. “샌더스, 출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게시글이 SNS에 줄을 이었다.
이런 열광의 근저에는 심각한 불평등과 천대에 대한 분노, 트럼프 정부에 대한 저항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
샌더스는 출마 연설에서 미국 사회의 극단적 불평등을 비판했다. “억만장자 세 명이 하위 50퍼센트를 합친 것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임금 수준이 형편없고, 실업과 노숙자가 대규모로 존재한다.
인종차별·성차별·성소수자 천대도 기승을 부린다. 미국·멕시코 국경장벽을 짓겠다는 트럼프는 이런 차별을 노골적으로 부추긴다.
그러나 대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은 이런 트럼프에 맞서려는 대중의 바람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트럼프를 상대로 크고 작은 쟁투를 벌이긴 했지만, 중요 쟁점(특히 계급적 쟁점)에서는 트럼프와 보조를 맞췄다.
최근에도 민주당은 역대 최장 기간 셧다운(연방정부 폐쇄) 끝에 트럼프의 국경장벽 예산을 액수만 조정해 하원에서 통과시켜, 둘의 차이는 정책이 아니라 액수뿐이라는 조롱을 면치 못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고강도 경제 제재를 지지하는 것도, 그런 경제로 도탄에 빠질 수천만 대중은 관심 밖인 것도 두 정당 모두 마찬가지다.
“서민의 영웅”
반면 샌더스는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고 트럼프를 꺾을 뿐 아니라 경제·사회·인종·환경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고 급진적으로 주장했다. 샌더스는 이를 위해 일련의 사회 개혁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과세, 최저임금 인상으로 생활임금 성취,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모든 노동자에게 유급휴가·육아휴직 보장, 전국민 단일의료체계 확립, 이민 정책 대개혁, 기후변화 대응 일자리 창출로 화석연료 중심 경제 탈피 등.
샌더스는 옳게도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에 반대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비판적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예멘을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독재적인 사우드 왕가와 트럼프가 가까이 지내는 것을 비판했다.(그러나 아쉽게도 샌더스는 ‘두 국가’ 방안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등 제국주의 문제에서 약점이 없지 않다.)
위의 요구들을 국가 주도 개혁으로 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샌더스의 ‘민주사회주의’는 체제 변혁적 사회주의라기보다는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 샌더스가 내건 정도의 대규모 사회 변화를 위로부터의 개혁으로만 성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샌더스 자신도 호소하는 거대한 대중 운동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기층 청년들이 샌더스의 호소에 영감을 받으면서 ‘민주사회주의’는 꾸준히 성장세를 타고 있다. 심지어 오랫동안 민주당 의존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전통이 지배적이던 미국 조직 노동운동에서도 일부가 샌더스 지지 선언을 조직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 미국민주사회주의당(DSA) 당원이 5만 넘게 성장한 것도 그런 정치 흐름의 일부다. 특히 2018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의원에 당선한 DSA 당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국가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한 복지 확충을 골자로 하는 ‘그린 뉴딜’ 법안을 발의해 주목을 받았다.
‘민주사회주의’의 인기를 보여 주듯, “서민의 영웅” 오카시오-코르테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책까지 등장했다!
이런 열풍을 타고 오른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미국 공식 정치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대중적·전국적 제3정당이 출현한다면, 그것은 20세기 초 노동운동 출신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의 대선 도전 이후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변화 열망을 담은 젊은 운동이 부상하고 있다. 미국 좌파들이 이 흐름에 잘 접속한다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