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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선거:
유럽, 지배계급의 위기로 극우가 득세하다

5월 23~26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단연 눈에 띄는 현상은 강경 우익(나라에 따라 극우·파시즘) 정당들의 부상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부총리이자 내무장관인 마테오 살비니가 속한 인종차별적 우익 정당 동맹당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다. 프랑스에서는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이 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중도신당과 선두를 다투고 있다. 영국에서도 극우 정치인 나이절 퍼라지의 신당 브렉시트당이 높은 성적을 거둘 듯하다.

이들의 부상은 세계적 현상의 일부다. 유럽 바깥에서도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등 강경 우익들이 집권해 있다.

유럽 몇몇 나라에서는 극우 정당이 연정 파트너로 정부에 참여하고 있다. 예컨대 동맹당은 우파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파시스트 정당 오스트리아자유당(FPÖ)이 우파 정당 국민당과의 연정에 참가하고 있었다.(이 연정은 부패 추문으로 5월 19일 파기됐다.) 헝가리에서는 노골적인 파시스트 정당 요빅당이, 스웨덴에서는 역시 나치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강세다.

5월 18일 이탈리아 북부 도시 밀라노에서 동맹당이 주최한 대규모 극우 시위(공동 유세)는 유럽 극우들의 전시장 같았다.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 마린 르펜, 네덜란드 자유당(반(反)이슬람 극우 정당) 대표 헤이르트 빌더르스,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당(AfD) 대변인 외르크 모이텐이 이 시위에 참가했다.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핀란드, 불가리아의 극우 정당들도 이날 시위에 모습을 보였다.

이들 중에는 노골적인 파시스트 정당들도 있고, 우파 포퓰리즘 정당 안에 파시스트들이 또아리를 튼 정당들도 있고, 인종차별적 포퓰리즘 정당들도 있고, 파시스트는 아닌 강경 우익 정당들도 있다.

5월 18일 이탈리아 동맹당이 주최한 대규모 극우 시위 ⓒ출처 RICHARD DURAND

악취 나는 부산물

이들의 부상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낳은 악취 나는 부산물이다.

세계경제 위기 이래 각국의 정부들은 막대한 재정을 투여해 은행과 자본의 수익을 지키려 나선 한편 가혹한 긴축 정책을 펼쳤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기성 정치에 대한 항의 정서가 분출했다. 몇몇 나라에서는 저항이 벌어지기도 했다. 각국 지배계급은 그런 저항을 강경 진압하거나(예컨대 노란 조끼 운동을 대하는 프랑스 정부), 반동적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노동자 대중을 분열시키려 들었다.

후자의 대표적 사례가 인종차별이다. 자본주의에는 인종차별이 본성처럼 내장돼 있지만, 위기 시기에 자본가들은 대중이 겪는 고통이 자신들 탓이라는 점을 가리기 위해 인종차별을 더 반동적인 형태로 휘두른다.

경제 위기 이후 유럽(과 세계 곳곳) 지배계급은 난민, 이민자, 무슬림을 표적 삼아 인종차별을 부추겼다. 무슬림 천대는 중동에서 제국주의 지배자들이 벌이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지배 정당들이 앞장서서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상황은 인종차별적 극우가 성장하는 최적의 토양이 됐다. 동시에 극우 정당들은 지배 정당들에 대한 대중의 환멸 정서에 올라타 세를 키웠다.

기성 지배자들은 이렇게 성장한 극우 정당들과 경쟁하고 그들을 제어하려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극우 정당이 활개칠 토대를 키우는 효과를 냈다.

위기 때문에 기성 지배자들이 혼란에 빠지면서 극우 정당이 득세하기도 했다. 영국 지배계급이 유럽연합과 영국의 관계 설정(브렉시트) 문제로 사분오열하는 틈을 타 강경 우파들이 세를 키웠다.(관련 기사: 본지 284호 ‘영국 지배계급, 비틀거리며 벼랑으로 걸어가는 중’)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브렉시트당은 현재 지지율이 한 자리수 대인 보수당의 기반을 상당히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고, 극우의 부상을 저지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포데모스

개혁주의의 위기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위기에 대안을 제시했어야 할 개혁주의 정당들이, 긴축을 시행하고 무슬림을 희생양 삼고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보다 왼쪽에서 부상한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들도 끝이 좋지 않았다. 그리스 시리자가 그 사례다.

시리자는 한때 유럽연합 긴축에 맞선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지금은 앞장서서 긴축을 추진한다. 시리자의 배신은 그리스에서 파시스트 정당 황금새벽당이 다시금 활개치는 배경이 됐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 직전 창당해 돌풍을 일으켰던 스페인 좌파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의 사례도 두드러진다. 4월 28일 스페인 총선에서 극우 정당 ‘복스’(Vox)가 급부상했는데, 같은 선거에서 포데모스는 의석을 절반 가까이 잃었다.

창당 초 포데모스는 스페인 양당 정치의 대안이 될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듬해인 2015년 총선에서는 3위에 만족해야 했고, 2016년 총선에서는 전년보다 100만 표나 잃었다.

포데모스는,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중도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초기의 급진적 공약들을 폐기하고 사회당의 긴축 정책을 지지했다. 한때 국가주의적 헌법을 부정하며 대개조를 요구하던 포데모스는 카탈루냐 독립 요구를 외면하고 스페인 국가주의를 찬양하고 나섰다.

기성 사민주의 정당의 대안이 됐어야 할 포데모스가 스페인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기성 정당 2중대’처럼 행동하자,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분노를 표출할 방법을 찾던 몇몇 사람들은 항의의 의미로 우파 포퓰리즘 정당 ‘시우다다노스’와 극우 정당 ‘복스’에 투표했다.(우파에 대한 증오 때문에 사회당이 1위 자리를 유지했지만 말이다.)

위기를 겪으며 대중이 기성 지배계급에 환멸을 느낄 때, 좌파적 대안이 부족(혹은 부재)하면 극우가 그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좌파적 과제

좌파는 위기에 책임이 있는 기성 체제에 매몰되지 말고 아래로부터 투쟁을 건설해 지배자들의 긴축을 저지하고 극우의 부상에 맞서야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국민당-자유당 연정이 붕괴한 것은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자유당 소속 부총리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가 러시아 대통령 푸틴 측근의 조카와 만나 정부 사업 입찰을 약속하는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폭로된 것이 연정 붕괴의 계기가 됐다.

국민당 소속 총리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극심한 모욕감을 느낀다”며 연정을 파기하고 조기 총선을 선언했지만, 애초에 노골적인 나치 정당 자유당을 연정 파트너로 택한 장본인은 쿠르츠와 국민당이다. 쿠르츠 정부는 제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초로 나치 정당을 합법화해, 자유당이 활개칠 여지를 주기도 했다.

인구가 900만 명이 채 안 되는 나라에서 수천 명이 즉각 수도 비엔나 거리를 메웠다. 쿠르츠의 연정 파기 선언은 이 항의에 밀린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 ‘즉각 좌선회’(LJ)를 비롯해 그간 자유당에 맞서 운동을 건설해 왔던 여러 노동자·좌파 단체들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영국의 사례도 중요하다. 영국 지배계급의 위기 속에서 좌파 성향의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이 급부상했고, 한동안 코빈은 좌파적 유럽연합 탈퇴 기조를 유지하며 노동계급적 긴축 반대 선동을 펼쳐 커다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브렉시트 위기가 이어지면서 코빈은 당내 우파의 맹공에 직면해 (불가피하지는 않았던) 타협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공격 중에는 코빈이 반유대주의자라는 혐의도 있었는데, 평생을 반제국주의 운동에 헌신해 온 사람에게는 커다란 모욕이었다.

그러나 브렉시트를 둘러싸고 마비 상태에 빠진 영국 의회 바깥에서는 중요한 운동이 성장했다.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맞선 수십만 명 규모의 거리 운동은, ‘거리의 군대’를 건설하려 드는 영국 극우(대표적으로 ‘민주축구사나이연맹’)에 맞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 기후 재앙에 맞서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는 거리 시위 ‘멸종 반란’(XR) 운동이 부상해, 위기에 빠져 있던 영국 정부가 기후 재앙을 “국가비상사태”라고 규정하게끔 몰아붙이기도 했다.

다가올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극우의 부상이라는 우려스런 현실을 반영하는 표결이 나올 공산이 크다. 좌파는 극우와 파시즘뿐 아니라 이들이 부상하는 토양이 된 자본주의 재앙(경제 위기·전쟁·기후 변화)에 맞선 진지하게 대중 운동과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유럽 급진 좌파들의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