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 파견용역 노동자들 1차 공동파업 성사:
연대를 통해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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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의료연대본부·보건의료노조·민주일반연맹 소속 파견용역직 노동자들이 함께한 이 집회에는 1000명이(보건의료노조 추산) 참가했다. 파업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뿐 아니라 국립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 민간병원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노동자들은 2년째 계속되고 있는 ‘희망고문’을 중단하고 직접고용 정규직화 하라고 요구했다.
현재 국립대병원 파견용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율은 0퍼센트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더니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에 고작 32퍼센트만 전환했다. 그것도 대부분 무기계약직과 자회사로 전환한 것이다.
이날 파업 집회에서도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말로만 사람이 먼저라고 하고 생명 안전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그 약속 지켜지고 있습니까? 우리 노동자들이 사람과 생명, 안전을 지키려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의료연대본부 이정현 대구지역지부장)
국립대병원들도 시간을 끌며 눈치를 보다가 결국 자회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자회사는 또 다른 간접고용일 뿐이다.
병원 측은 정년 단축을 거론하며 자회사 방안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기도 한다. 직접고용 정규직은 정년이 60세니까 고령인 노동자들은 자회사에 고용되는 게 낫다는 얘기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더라도 정규직화 이후 정년은 별도로 정할 수 있게 돼 있다.
또, 병원 측은 파견용역직 노동자들 중 일부만 직접고용하려 하기도 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환자 직접 부서’와 ‘환자 간접 부서’를 나눠 일부만 정규직화 하려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 노동자들이 하는 일 중 어느 하나도 필수적이지 않은 게 없다. 청소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는다면 , 식당 노동자들이 식사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병원은 위생·영양 등 여러 면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이처럼 정부와 병원 측은 어떻게든 차별을 유지하려 한다. 표준임금제도 그 중 하나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자에게 표준임금제를 적용해 저임금과 차별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확산시키고 있다.
서울 도심 공동집회로 2차 파업의 규모를 더 키우자
정부와 국립대병원장들이 단결해서 정규직화를 회피하는 상황에 맞서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소속 노조가 달라도 공동투쟁을 하고 있다.
지난 2년 사이 박근혜 퇴진 투쟁의 여파와 개혁에 대한 기대 속에서 젊고 새로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보건의료노조 소속 비정규직 지부들이 속속 생겨났다. 의료연대본부 소속인 경북대병원 민들레분회는 세 배 가까이 성장했다. 30대 안팎의 젊은 노동자들도 가입했다.
분당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지난해 첫 파업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최근 보건의료노조와 의료연대본부가 함께 주도적으로 나선 제주 영리병원 저지 투쟁의 승리도 많은 병원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줬다.
이런 변화와 기층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염원은 서로 다른 3개 산별연맹(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민주일반연맹)이 공동투쟁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이제 세 노조의 연대투쟁은 다시 노동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높이고 있다.
“[4월 20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집회도 같이 했잖아요. 사람들이 각자 잘하는 것 모아서 하니까 좋은 것만 보이잖아요. 그래서 분위기가 엄청 뜨거웠어요. 그렇게 집중력 높은 집회는 처음 봤어요. 다들 같은 걸 바라고 있고 같은 생각하고 있으니까요.”(경북대병원 박일순 민들레분회장)
투쟁의 힘을 키우려면 이런 분위기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1차 파업의 성과를 이어 세 산별연맹·노조 노동자들이 서울에서 정부에 항의하는 대규모 공동 집회와 행진을 벌인다면 2차 공동파업(6월 18일 예정)의 자신감을 높이고 규모를 키우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공정하지 않다고?
국립대병원들은 비열하게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파업을 닷새 앞둔 5월 16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비정규직 파업을 비난했다. 비정규직을 직접고용 하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이 어렵다는 둥,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았다는 둥 말이다.
그러나 ‘공정성’ 논리는 핑계일 뿐이다. 애당초 정규직이어야 마땅할 사람들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은 병원이다. 정부와 병원은 이를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게다가 이미 수년째 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일할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따지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 국립대병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개선에 관심 있다는 듯 말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일 뿐이다. 그랬다면 왜 정규직 노동자들이 여러 해 연속 파업에 나서야 했겠는가.
비정규직을 직접고용 한다고 정규직의 처우가 나빠지라는 법도 없다. 직접고용 전환 인력이 정원에 포함된 만큼 그에 따라 예산을 늘리면 된다. 정부는 그럴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사코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도록 만들려 한다. 정부가 직접고용이 아니라 ‘자회사’ 방안을 내놓은 것도 비용을 들이지 않기 위해서다. 따라서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정부 지원을 늘리라고 투쟁해야 한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
이런 이간질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하는 것을 사측이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 잘 보여 준다.
파업에 동참하는 여러 국립대병원들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지 메시지를 보냈고, 경북대병원 정규직 분회는 병원 로비에서 지지 집회를 열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공동 파업에 이어 올해 3월에도 본관 로비에서 공동 집회를 열었다. 5월 21일 파업 집회에도 적지 않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지지 방문과 집회를 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파업으로 생기는 임금 손실을 걱정해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 지지금을 모금하는 등 연대 운동을 벌인다면 아주 효과적인 연대가 될 것이다.
자회사 방안 열어 준 유은혜 교육부 장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실제로는 ‘정규직화 제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온갖 꼼수를 쓸 수 있게 구멍을 숭숭 뚫어 놨기 때문이다. 2년 내내 노동자들의 항의와 투쟁이 계속된 이유다.
문재인의 개혁 배신은 그가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보다 기업주들의 이윤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특히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적폐’라 부른 친기업 규제 완화 정책을 밀어붙여 왔다. 그런 정책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노동조건 악화, 안전 위협, 의료비 등 공공서비스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데 말이다.
민주당 내 진보파로 알려진 교육부 장관 유은혜도 이런 정부의 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교육부장관 유은혜는 직접고용이 맞다는 게 평소 소신이라고 밝혀 왔다. 그러나 최근 국립대병원에 보낸 공문에서는 “직접고용 등” 절차를 이행하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다. “등”을 붙여 다른 방안(자회사)을 추진할 수 있게 문을 열어 준 것이다.
유은혜는 2016년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교육공무직법을 발의했다가 보수적 반발에 굴복해 20일 만에 법안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교육부장관 임명 청문회를 앞두고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소되고 있어 그 법안을 발의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수많은 학교 비정규직이 정규직화에서 배제됐다. 최근에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면담 요청도 묵살하고 있다.
이런 정부에 맞서 지금처럼 공동 투쟁을 확대해 나아가야 한다.
이 기사는 5월 21일 국립대병원 파견용역직 공동파업 집회에서 반포한 리플릿에 실린 글을 일부 개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