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화 승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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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년 가까이 싸워온 끝에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성과를 거뒀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는 9월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보라매병원에서 일하는 파견용역직 노동자 800여 명을 직접고용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보라매병원의 경우 서울시 산하 병원이라(서울대병원 위탁운영) 추후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서울대병원 사측은 그동안 고집해 오던 자회사 전환 방침을 포기하고 전산·승강기를 제외한 파견용역직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 하기로 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으로 쟁취한 모든 권리가 올해 11월 1일부터 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 중 일부는 기존 정규직과 완전 통합된다. 일부는 ‘환경유지지원직’이라는 별도직군을 만들어 새로운 임금체계를 적용하기로 했다. 서울대병원은 그동안 노동자들을 두 개의 직군(일반직, 운영기능직)으로 나눠 별도의 임금체계를 적용해 왔는데, 이번에 새로운 직군과 임금체계가 추가된 것이다. 환경유지지원직의 임금은 운영기능직의 86퍼센트 수준이다.
노동조합은 전산직도 정규직화 대상으로 할 것과 정규직과의 통합직군화를 요구해 왔지만 안타깝게도 관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는 그동안 ‘저임금 고착화’라는 비판을 받아 온 표준임금체계(정부안, 공공병원TF안)에 비하면 상당히 나은 조건이다. 표준임금체계가 최저임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과 달리, 이번 합의안은 경력에 따라 호봉이 꽤 오를 수 있도록 돼 있다.
여기에 단협상 보장된 각종 수당과 기본급 인상으로 인한 시간외·야간 수당까지 고려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꽤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차별 해소를 기대하며 크게 기뻐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등 함께 싸워 온 다른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을 비롯해 자회사를 강요받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 결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립대병원 연대 투쟁
‘자회사’ 등 무늬만 정규직화 하려는 사측과 이를 방치하는 정부에 배신감을 느껴, 올해 3월부터는 3개 산별연맹에 속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에 나섰다. 서로 다른 산별연맹에 속한 병원 노동자들이 공동 투쟁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기층 노동자들의 간절한 바람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또 공동 투쟁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려 노동조합 조직을 강화하며 상승 효과를 내기도 했다. 세 차례에 걸친 공동 파업은 단결의 가능성과 정부를 향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잘 보여 줬다.
2018년 서울대병원 정규직·비정규직 공동 파업을 비롯해 국립대병원 정규직 노조의 연대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 전까지 여러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조의 정규직화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다. 사용자들은 정규직의 반대를 자회사 전환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삼았다.
국립대병원의 관할 부처인 교육부 장관 유은혜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잖이 압박을 받았다. 장관 취임 전에 국립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여러 차례 거론한 바 있기 때문이다.
특히, 8월 22일부터 시작된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3차 공동 파업과 의료연대본부 소속 노동자들의 무기한 파업은 마침 문재인 정부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두고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에 벌어졌다. 유은혜는 조국을 방어하다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투쟁은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독립적으로 잘 싸우면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집행부가 정부와의 대화 테이블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것이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이롭지 않다.
이번 서울대병원의 성과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조국 임명 강행으로 계급적 불만을 사고 있는 지금 노동운동은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산별연맹 지도자들이 지금 이런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해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