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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 노동자는 살인적 업무 강도에 시달리는데:
인력 ‘구조조정’ 추진하는 우정본부

우정사업본부(이하 우정본부)가 비용 절감을 위해 집배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업무량과 업무 강도를 진단해서 “여유 인력”을 산출하고 그에 따라 올해 상반기 이후에 인력을 재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집배 노동자들은 “마른 수건을 더욱 비틀어 짜려는” 노동강도 강화 시도 및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보고 반발하고 있다.

이미 여러 우체국에서 사측이 제멋대로 측정한 업무 강도를 기준으로 퇴직자와 병가 등에 따른 결원을 충원하지 않아, 집배 노동자들의 업무 과중이 심각하다. 실제로 경기·인천 지역은 올해 159명의 채용 인원 중 15명의 발령을 보류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선 “여유 인력”이 194명이나 된다며 퇴직으로 빠질 40여 명을 제때 충원하지 않고 있다.

집배 노동자들은 한 해 20명 안팎의 사망자가 나올 만큼 장시간·중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늘어난 택배 물량에다, 자가 격리자에 대한 등기 배송, 지역 보건소 마스크 등기 배송, 긴급재난지원금 배달(대구 지역) 등으로 업무가 더 늘었다고 호소한다. 게다가 올해에는 폭염일이 늘어나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기가 훨씬 고될 것이다. “여유 인력”은커녕 당장 증원이 절실하다.

얼마나 더 죽어야 멈출 텐가 지난 10년간 집배 노동자 184명이 과로 등으로 사망했다. 6월 17일 구조조정 규탄 전국집배노조 기자회견 ⓒ출처 공공운수노조

살인적인 업무 강도 시스템

이번에 우정본부가 “여유 인력”을 산출하는 근거로 사용한 ‘집배 업무 강도 시스템’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살인 업무 강도 시스템”으로 악명이 높다.

이 시스템은 우편물 배달 과정의 각 업무별 ‘표준시간’을 만들어 업무량과 강도를 측정한다. 편지 한 통 배송에 2.1초, 등기 한 통에 28초, 택배 한 통에 30.7초 등으로 표준시간을 잡고, 집배원의 노동을 기계처럼 계량화하고 집배원을 옥죈다.

우정본부는 이를 기반으로 개인별 업무 강도를 계산한다. 업무 강도가 1이면 하루 8시간 근무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보고 1 미만이면 “여유 인력”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기준이라고 비판한다. “제가 초과근무를 2시간 더 해서 하루 10시간을 근무하는데 업무 강도가 0.8로 나옵니다. 0.8이면 8시간도 안 걸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건데, 업무별 표준시간은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조병일 집배노조 경인지역본부장)

오죽하면 같은 정부기관인 감사원도 2018년에 이 시스템이 업무량을 과도하게 설정하고 휴식시간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정 노사가 참여하고 청와대가 주도해 구성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도 이 시스템이 인력 산출의 근거로 부적절하다고 권고했는데, 우정본부는 이를 무시하고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우체국은 개인별 업무 강도 지수를 게시해 집배원 노동자들 간에 경쟁을 부추기고, 관리자들이 이를 근거로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강도를 높이라는 압박에 시달린다. 김밥을 들고 뛰어 다니면서 먹고, 아예 점심을 거르는 집배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집배 업무 강도 시스템은 당장 폐기돼야 한다. 2012년에 이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왔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집배 노동자 184명이 과로 등으로 사망했다.

“뒤에서 칼 꽂는”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와 우정본부는 비용 절감에만 혈안이 돼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우정본부는 늘어나는 적자를 줄여야 한다며 인력 구조조정 등 다양한 비용 절감 방안을 내놓고 추진 중이다. 정규 집배원 2000명 증원 약속을 파기하고 그중 일부를 비정규직인 위탁택배원으로 대체했다. 상시업무 정규직 채용으로 비정규직 양산을 막겠다면서 오히려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소형 우체국 폐국, 정규직 업무 아웃소싱 등도 추진해 왔다. 이런 조처는 공공서비스 축소와 노동조건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소형 우체국 폐국이 추진되자, 전국적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과 우체국 노동자들이 크게 반발했다. 지역 주민들의 우편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커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전환배치되거나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을 겪고 있다.

올해 우정본부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조직 인력 운영 효율화”를 중점 과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각 우체국별로 집배 업무 강도를 진단해 업무 강도에 따라 정원을 늘리거나 줄이고, 업무 강도가 낮은 곳의 인력은 전환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부족한 인력을 늘리지 않고 기존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가 올라가는 조처인데다, 전환배치되는 노동자들은 새로운 지역에서 업무를 익혀야 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숨이 턱까지 찼다가 [위탁택배원 증원으로] 조금 숨을 쉴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집배 업무 강도 시스템’을 사용해 정원 회수나 인력 재배치를 한다는 게 현장의 심각한 문제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김현우 집배노조 동대구지부장)

노동자들은 이러한 정원과 인력 재배치가 노동강도 증가는 물론, 장차 정원 감축(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사측은 업무 강도에 따라 우체국 간 인력을 맞추면 집배원들은 힘들지 않을 거라고 주장해요. 그런데 [정원이 줄어든] 우체국으로 보면 인원 감축이에요. 사측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에요. 업무 강도를 근거로 인력이 남는다며 구조조정으로 갈 수 있어요.”(조경훈 인천 계양우체국 집배원)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 재정 적자가 늘 것을 우려해 공공기관 예산을 10퍼센트 삭감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라 비용 절감 압박은 커질 수 있다.

대면 업무가 많은 집배원들은 자기가 ‘슈퍼 전파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묵묵히 일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공무원 연가 보상비를 일방적으로 삭감한 것에 이어 구조조정까지 시도하자 노동자들은 “뒤에서 칼을 꽂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집배노조는 인력 재배치 철회, 구조조정 철회, 정규 인력 충원, 업무 강도 시스템 폐기를 요구하며 투쟁한다는 계획이다.

구조조정이 아니라 정규직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 정부가 그에 필요한 예산을 대폭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