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직접고용 논란:
문재인의 미온적 개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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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공항공사가 외주업체 소속인 보안검색 노동자 1902명을 직접고용하기로 발표한 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 소속 정규직 노조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고, 일부 청년 구직자들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 국민 청원란에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중단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며칠 만에 20만 명이 넘게 서명을 했다.
여기에는 〈조선일보〉와 같은 우파 언론들의 부추김도 크게 작용했다. 우파 언론들은 이번 논란이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이 낳은 문제라며 연일 비난을 해 대고 있다. 통합당도 이 사안을 정부에 대한 공세를 높이는 데 이용하고 있다.
그동안 가장 많은 특혜와 특권을 누려 온 이 사회 지배층 인사들이 공정성 운운하고 청년들의 불만을 이용하려 나서는 것은 위선이다. 우파는 평범한 청년들의 조건 개선에는 관심도 없다. 그간 보수우파 정부들 하에서 청년 실업은 높아져 왔고, 보수 정부들은 청년들이 ‘눈높이가 너무 높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둥 청년 탓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박근혜는 청년들을 다 중동에 보내라고도 했었다.
무엇보다 우파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와 차별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추진해 온 자들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청년들은 처음부터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에 취업할 가능성 자체가 팍 줄어든다. 가장 큰 피해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위선자들
결국 우파가 속 보이게 위선을 떠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으로 자라난 불만을 이용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파 야당이 문제라고 문재인 정부가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민층과 청년층에서 불만이 커진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지난 3년간 정부의 개혁 이행이 너무 꾀죄죄하거나 배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총선 이후 불과 몇 개월 만에 다시 하락하는 것을 봐도 광범한 불만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정부는 공공부문에 대규모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청와대는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많이 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그래 봐야 박근혜 정부와 비교한 수치일 뿐 필요한 인력 수준에도 못 미친다. 장시간 중노동으로 과로사 등 사망이 연이어 벌어지는 우체국에서도, 야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한 철도에서도 정부는 인력 충원을 한사코 거부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공약도 파산했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 대상을 선별하고 전환 방식에도 차등을 뒀다. 이 과정에서 절반 가까운 비정규직이 아예 제외됐고,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도 일부는 직접고용 방식으로, 다른 일부는 자회사 방식으로 나뉘어져 전환됐다.
뿐만 아니라 전환자들 대부분이 임금 등 조건이 거의 개선되지 않았고 저임금을 고착화할 직무급제가 도입되거나 임금이 삭감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은 이번의 지저분한 논란은 정부가 일부만 정규직화 대상으로 삼고 차별을 유지해 각 부문 간 갈등과 논란을 부추긴 결과이다. 결국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민간부문 정규직화의 마중물이 되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비정규직 고용은 더 늘었다.
인천공항에서도 전체 비정규직 9800여 명 중 2143명만 직접고용(22퍼센트)하고 나머지는 자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는 2017년 12월에 노사가 3000여 명을 직접고용하기로 합의했던 것에도 못 미친다. 이번에 직고용되는 보안검색 노동자 중 정규직 전환 논의가 시작(2017년 5월 12일)된 후 채용된 800여 명은 경쟁 채용 과정에서 탈락할 위험도 크다.
직접고용이 돼도 기존 정규직과는 구분되는 별도 직군으로 두고 임금과 처우는 자회사 수준과 동일하게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의 조건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직고용 규모든, 처우 개선이든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다룬 내용들이 결국은 부풀린 숫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1호 사업장이자 상징이었던 인천공항에서의 정규직화는 기만적이었다.
이처럼 우파나 정부 모두 위선적이긴 매한가지다.
‘정규직 기득권’ 공격은 하향 평준화만 낳는다
인천공항 논란을 두고 노동시장 내 격차 심화가 진정한 배경이라는 지적이 적잖이 나온다. 이를 해결하려면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고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선 정규직의 임금을 억제하거나 끌어내려 절감한 비용으로 정규직 채용을 늘리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규직이 비정규직 임금의 2배를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는 민주당 김두관 의원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겨레〉에 칼럼을 쓰는 이강국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공정을 위해 공공부문에 필요한 것은 철밥통 혹은 귀족이라 불리는 정규직의 기득권은 제한하고 문호는 개방하여 더 많은 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다.”
격차 해소를 위해 정규직 ‘기득권’을 내려 놔야 한다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가 즐겨 해 온 주장이다. 사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부분적으로 이미 실행한 바도 있다.
그래서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조건을 악화시켜 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악화된 조건 회복 열망이 컸지만,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정규직이 희생하라거나 공공부문 호봉제를 없애야 한다며 직무급제 도입을 추진했다.
그런데 정부가 ‘공정임금’,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내세우며 추진한 공공부문 직무급제는 비정규직 처우도 악화시켰다. 직무급제가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직무급제는 비정규직 업무에 낮은 직무 가치를 부여하고는 그에 따른 낮은 임금(최저임금 수준)을 정당화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이 악화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역시 상향 압박보다는 하향 압박이 커지기 십상이다. 그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조건과 비교해 처우를 개선하라고 요구해 온 것을 볼 때, 기준점 자체가 낮아지는 것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
이는 그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은 격차가 존재하면서도 함께 등락을 해 온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정책을 펴면서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과 노동자를 이간질하며 이들 모두에게 책임을 전가해 왔다.
이간질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는 공공기관에 도입한 임금피크제 문제이다. 박근혜는 청년 채용을 늘린다는 명분으로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해당 노동자들의 임금을 많게는 40퍼센트까지 삭감했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청년 채용은 전체 공공기관 정원의 2퍼센트(1만 명)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공공기관 채용이 미흡한 상황에서 청년 실질 실업률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대신 삭감한 임금으로 새로 채용한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충당하는 데 부족하다며 나머지 노동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임금 억제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신규 노동자들의 임금을 충당해야 한다는 논리를 노동운동이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각각 한쪽을 핑계로 한 양쪽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한 하향 압박만 더 커질 것이고, 개선은 없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반목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뜻하는 바는 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결국 전체적인 하향평준화 압박이 커진다. 이것이 노동자들이 추구할 제대로 된 격차 해소 방안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격차 해소는 정규직 임금 삭감이나 억제가 아니라 조건을 향상하기 위한 투쟁과 연대를 확대하는 속에서 효과를 낼 수 있다.
공정 경쟁이 대안인가?
일부 청년들의 반발의 배경에는 최근 코로나19와 경제 상황 악화까지 겹쳐 고용난이 심각해지고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기 더 어려워진 상황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하에서의 공정 논리, 즉 ‘노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라는 접근은 커다란 맹점이 있다. 공채 시험을 거치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은 노력에 따른 보상이 아니므로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문제를 비롯해 수차례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단 허구적이다. 채용 시험이 누구에게나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데 유리한 기회를 잡으려면, 좋은 대학에도 가야 하고, 알바 따위 하지 않고 학업과 시험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이미 부모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고, 노력할 수 있는 조건 자체에서 이미 유불리가 형성되므로 이에 따르는 결과가 공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이 사회의 지배층은 시험 결과는 노력에 따른 결과라며 개인들에게 실패의 책임을 떠넘긴다. 취업 실패는 청년 개인 탓이라는, 냉혹하기 짝이 없는 책임전가 논리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고 정부는 저질 단시간 일자리만 만드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취업 기회는 더 좁아졌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공정성 논리는 이 사회의 진정한 불평등은 가리고 경쟁의 결과에 따른 차별은 정당하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적잖은 청년들이 비정규직이 되는 현실을 봐도 공정성 논리는 서민층 청년들에게 이롭지 않다.
공채시험만이 만능인가 하는 물음도 던져 봐야 한다. 이는 해당 기업에서 수년 동안 투여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력은 보상받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컵밥으로 허기를 채우며 고시원에서 수년간 살아야 하는 이른바 “공시생”들의 불운이 그들 탓이 아니듯,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을 꿈꿔서는 안 되는 인생인 것도 아니다.
이 노동자들은 열악한 처우와 차별 속에서도, 업무 수행에 요구되는 훈련을 받았고, 대부분 최소 수년 동안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해 기여하고 검증된 사람들이다. 오히려 상시 지속적 업무를 하면서도 비정규직으로 고용돼 차별을 받은 것이 문제였다. 이 노동자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 정규직화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연대와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중요하다
지금 인천공항 직접고용 논란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노동운동의 대응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상당수 노동자들을 배제하고 전환 방식(직접고용과 자회사 등)도 차이를 둬 한계가 많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반목시킬 위험성도 컸다. 따라서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동력으로 삼아 요구를 쟁취하려 해야 했다. 당연히 정규직 연대도 함께 건설해야 했다.
그런데 당시 민주노총이나 공공운수노조 집행부는 정부의 ‘개혁 의지’에 기대 협력과 교섭을 통해 성과를 내려 했다. 그래서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부와 정책 협의를 하는 데 힘을 쏟았다. 정부가 민주노총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고 후퇴가 역력해지는 상황이 됐는데도 그랬다. 정부와 척질 각오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지난 3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만만찮게 투쟁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로 그 잠재력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주장들도 곳곳에서 제기됐다. 비정규직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진 시기에는 이런 주장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2019년 7월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파업을 벌였을 때, 여론의 지지는 상당했다.
요컨대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주장은 노동자 투쟁의 정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대오가 강력하고 사기가 높으면 투쟁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호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투쟁으로 세력균형을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래야 보수적인 일부 정규직 노조 집행부나 일부 정규직의 반대도 약화될 수 있다.
아쉽게도 지금 논란이 되는 인천공항에서 공공운수노조와 인천공항지부 지도부도 기층 노동자들은 정규직화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컸음에도 투쟁보다는 교섭에 힘을 실어 대응했다.
이런 대응은 무엇보다 조합원들의 활동과 투쟁이 부차화되는 문제를 낳았다. 노동자들은 답답한 심정으로 지지부진한 교섭만 쳐다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정규직 노조의 반발을 제압할 힘도 약해졌다.
또한 교섭에 힘을 싣는 대응은 정부의 자회사 방안에 대해서도 불필요하게 타협적인 태도로도 나타났다. 공공운수노조 집행부가 조건부 자회사 전환 방안을 교섭 카드로 올릴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노조의 추천으로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방안을 마련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가 제시한 방안은 자회사를 수용하되 조건을 개선하는 내용이었다.
노조가 자회사를 수용한 이후에도 사측이 직고용 규모를 더 줄이고 전환자 처우 개선도 외면하는 압박이 계속 벌어졌다. 당시 사측과 교섭에 참가했던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와 한국노총 소속의 여러 노조 지도부들이 이런 후퇴에 합의를 해 줬다. 당연히 해당 노동자들은 격하게 반발했고, 이 중 일부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항의에 나서 최근 보안검색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다시 얻어 낸 것이다.
이렇게 불필요한 타협과 노조 지도부의 거듭된 후퇴도 노동자들 사이에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냈다는 점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국 관건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화하고 이 속에서 연대를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펴 나가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성 논리나 정규직 책임론 등 각종 노동자 분열 이데올로기들을 일관되고 단호하게 반박할 수 있는 정치가 중요하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이라는 확고한 원칙과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혁명적 정치로 조직된 좌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