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치려는 사측에 맞서:
단호한 투쟁 태세로 택배 노동자들이 성과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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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충원 합의 이행에 미적대던 사측과 정부를 파업으로 압박해 택배 노동자들이 추가 성과를 얻었다.
1월 28일에 택배 노·사와 정부·여당은 ‘택배 과로사 대책 1차 합의문’
택배사들은 약속한 분류 인력 6000명
요컨대, 1차 합의문
노동자들은 파업 돌입날인 1월 29일 오전에 전 조합원 총회를 통해 86퍼센트 찬성률
이렇게 추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유리한 정세 속에 노동자들이 신속하고 단호한 투쟁 태세를 갖췄기에 가능했다.
택배사들은 1차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뒤통수를 쳤다. 노조가 1차 합의문의 이행을 위해 면담을 요청했는데, 묵묵부답하면서 각 대리점들에 ‘현행대로 분류 작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을 내렸다. 특히 약속한 6000명을 설 특수기에 충원하겠다고 하고선 감감무소식이었다.
노동자들은 “합의 이후에도 무엇 하나 달라진 것 없어 설 특수기를 이대로 맞이하면 과로사 발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분개했다. 정부·여당은 이를 이행하도록 강제하기는커녕 수수방관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파업을 통해 약속 이행을 강제해야 한다고 나섰다. 그제서야 정부·여당은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며 동분서주했다. 조합원이 전체 택배 기사의 11퍼센트에 불과해 파업 효과가 미비할 것이라고 큰소리치던 택배사들도 직접 협상 자리에 앉지 않을 수 없었다.
택배 노동자들이 정부의 지지율 하락 국면을 이용해 투쟁에 나선 것과 효과적이었다. 대선 전초전인 서울·부산 시장 선거가 2달여 앞으로 다가 온 상황에서, 설 명절을 앞두고 택배 파업으로 ‘물류 대란’이 일어난다면 정부에 큰 부담이 됐을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편의를 제공해 온 택배 노동자들에 대한 다른 노동자들의 정서도 매우 우호적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완강한 투지를 보이며 이러한 상황을 잘 활용했다.
유리한 정세를 활용하기
1월 29일 아침, 택배 노동자들은 지회별로 택배 터미널에 모여 작업을 거부하고 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오전 조합원 총회 후엔 마무리 집회를 하고 해산했다.
필자가 방문한 한진택배 이천터미널엔 조합원들이 빠진 자리에 택배들이 무수히 쌓여 있었다. 조합원들의 분류 작업 거부로 비조합원들도 지장을 받았다. 한진택배 본사에서 차량을 일부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단체행동은 노동자들의 자긍심도 고취시켰다. 노동자들은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생애 첫 파업 경험을 나눴다. “택배 일을 시작하고 수년 만에 처음으로 식사다운 점심을 먹는다. 이렇게 모여 같이 밥을 먹으면서 웃고 얘기도 하니 사람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앞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퇴근 후엔 같이 술잔도 기울였으면 좋겠다.”
한편, 1차 합의 이후 1주일 간의 우여곡절은 과로사를 근절하고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선 만만찮은 과제들이 놓여 있다는 점도 보여 줬다.
노동자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듯, 무엇보다 수시로 뒤통수를 치는 택배사들을 결코 믿을 수가 없다. 택배사들이 손바닥 뒤집듯 사기를 치는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정부 자신이 노동자들과의 약속 이행을 방기하고 있다. 2018년 10월에 정부 주도로 우체국 집배원 과로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
전체 택배 기사들이 분류 작업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인력 충원 규모도 더욱 확대돼야 한다. 특히 자동 분류 설비가 없는 롯데택배와 한진택배의 충원 규모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
이번 성과가 보여 주듯, 택배사와 정부의 약속을 강제할 진정한 힘은 현장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에 달려 있다. 택배 노동자들이 금번 합의를 잘 지켜내고, 이를 발판으로 더 나은 조건을 쟁취해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