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도료”라더니 현대중공업 집단 피부 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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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조선업체들의 비용 절감, 규제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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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현대중공업에서 도장(페인트칠) 작업을 하는 노동자 24명에게 피부 발진 증상이 발견됐다. 노동자들은 전신에 두드러기가 났고 가려움과 고통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한 노동자는 노동조합과 상의해 산재를 신청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차일피일 시간만 끌면서 산재 승인에 미적대고 있다.
이 노동자는 말했다. “딱히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유해물질이 몸 안에 쌓여서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집단 피부 발진은 지난해 사측이 도입한 무용제 도료와 관계가 있다. 무용제 도료는 기존에 시너(신나)를 섞어서 사용하는 용제 도료와 달리, 대기 오염을 낳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배출이 적다고 한다. 그래서 ‘친환경’ 페인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바로 그 페인트를 사용한 노동자들에게서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여러 조선소 노조들에 따르면, 현대중공업뿐 아니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에서도 무용제 도료로 인한 발진 사례가 확인됐다. 도장 작업에는 특히 미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높아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많을 수 있다.
규제 완화
최근 조선소들에서 무용제 도료 사용이 늘어난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의 규제 완화가 있다. 정부는 2018년에 대기환경보존법을 개정해 용제 도료를 사용하는 조선소에 VOC 저감 장치를 설치하도록 했다. 2022년까지 설치를 완료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비용 부담이 커진 조선소와 페인트 기업들이 TFT를 꾸려 정부와 협상에 나섰다. 결국 정부는 저감 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무용제 도료 사용을 늘리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한 추산에 따르면, 이 같은 방법으로 전체 조선업체들이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 1조 7000억 원이라고 한다.
현대중공업 등 기업주들은 노동자 건강과 안전에 미칠 영향은 따져 보지도 않고 무용제 도료를 마구잡이로 작업 현장에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이번 집단 발진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현대중공업지부와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가 집단 발진 사례들을 폭로하며 비판에 나서자, 사측은 부랴부랴 문제가 된 제품을 작업 현장에서 빼고 다른 무용제 도료를 투입했다. 그런데 새로 들인 제품이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검증 결과를 제시한 것도 아니어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사측은 발진 증상이 나타난 노동자 중 다수가 하청 노동자들인데도, 이들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일부 노동자들은 일을 그만뒀고, 일부 노동자들은 사측의 눈치 속에서 산재 신청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안전은 뒷전
사측이 지급한 기준 미달의 작업복과 장갑 등도 문제였다. 도장 작업을 하려면 정부의 KS 승인을 받은 작업복과 장갑이 필요한데, 사측은 이를 무시하고 값이 싼 작업복을 지급했다. 피해 당사자인 한 노동자는 열악한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도료와 달리) 무용제 도료는 마르는 시간이 길어 옷과 장갑에 묻으면 스며들어 피부로 침투해요. 스프레이로 무용제 도료 작업을 하는 분들은 비에 흠뻑 젖은 것처럼 몸이 눅눅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 따르면, 집단 발진 문제가 불거지고 난 뒤 현대중공업 사측은 새 작업복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것도 불만을 사고 있다.
“새 작업복은 고무 재질로 만들어져 있어 통풍이 안 됩니다. 여름에는 더워서 죽어요. 장갑도 미끄러워서 사다리 같은 것을 타면 위험합니다.
“사실 피부 트러블은 평소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장 작업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 심각성이 드러난 작업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 정부와 사측은 안전 투자를 대폭 늘리고,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에게는 원·하청 가리지 말고 필요한 조처와 보상을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