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배상 판결 확정:
일본 정부 자산 압류, 문재인 정부는 기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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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월 2일 같은 주제로 진행한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1월 8일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게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익히 예상되듯이, 이 판결에 일본 정부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법적 배상 기피하는 “외교적 해법”은 해법이 아니다
우선, 배상 판결의 의미부터 짚어 보자. 왜 꼭 법적 배상이어야 하느냐는 이야기들이 정부 쪽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 외신기자가 배상을 집행해야 한다고 보냐고 묻자,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외교적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직후, 신임 주일대사 강창일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애초에 법적 배상이 그저 다른 기금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피해자들이 한일 위안부 합의와 위로금 10억 엔을 거부하고 배상 소송을 진행했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한
위안부 피해자들이 법적 배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데에는 이해할 만한 맥락이 있다.
이번 판결은 1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것이다. 이 소송을 걸기 전에 피해자들은 1990년대 내내 일본 현지에서 배상과 공식 사죄를 청구하는 법정 투쟁을 벌였다. 1991년 8월 14일 첫 공개 증언으로 잘 알려진 고 김학순 할머니도 그중 한 분이셨다. 그러나 당시 일본 법원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네 번의 소송을 다 기각했다.
이 재판이 진행되던 시기에 일본 정부는 일명
고노 담화는 지금껏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한 최대치라고도 볼 수 있다. 2015년, 당시 일본 총리 아베와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여기에도 한참 못 미치는 내용이다.
문제는 그러한 고노 담화조차 결코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제대로 인정하는 내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제국의 책임을
이런 표현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가족들에 의해 떠밀리거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갔다는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또 자진해서 위안부가 된 경우도 적잖았다는 주장의 여지를 남겼다.
고노 담화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일본의 고위 관리들과 우익은 계속해서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고
그리고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라는 자 하나가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게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인가? 바로 이런 이유로 피해자들은 법적 배상 과정을 통해, 일본 정부를 재판정에 세워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죄를 인정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명예를 온전히 회복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외면하는 문재인 정부
위에서 지적했듯이, 문재인 정부는 이번 위안부 배상 판결을 전혀 환영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는 배상 판결을 내린 법원을 압박하는 것인 동시에, 위안부 피해자들더러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지금 한
그러나 강제동원 배상은 판결 이후 2년이 훌쩍 넘는 지금까지 여전히 멈춰 있다.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한국 정부는 강제 집행을 하지 말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지방법원
다시 말해, 강제 집행은 법원 소관이지만 결국은 한국 정부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2년여 전 강제동원 배상 판결로 한
그러나 말과 달리, 문재인 정부의 실천은 정말이지 보잘것없이 타협적이었다. 일본 정부에 맞서는 카드로 제시했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금 정부는 오히려 일본 정부가 배상 재판에 불복해서 재판이 지연되는 걸 기회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왜 일본 정부에게 타협하고 마는 것일까? 사실 반일 제스처와 타협적인 대일관계를 왔다갔다하는 행보는 본질적으로 역대 한국 정부에서 계속 반복돼 온 패턴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계승한다고 하는 과거 민주당 정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정부는 집권 직후 독도와 어업협정 문제로 잠깐, 2001년에는 일본 측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으로 대중의 공분이 일었을 때 잠깐 일본과 충돌하는 듯했다. 하지만 실천에서는 한
노무현 정부도 2000년대 초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
일본이 과거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이유
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과거의 전쟁범죄를 부정함으로써 오늘날 일본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러한 일본의 전략과 한국 국가의 관계는 무엇인지이다.
오늘날의 한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제국주의 질서는 전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세계가 미
1960년대 초 이후 미국 지배자들은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하나로 묶어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고자 했다. 특히 일본을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이자 잘 달래가며 묶어 둬야 할 파트너로 삼았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은 패전 이후 20여 년 만에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다시금 도약했다.
그러한 일본을 방어하는 일에 한국이 중요했다. 한국은 북한과 맞닿아 있는 대소련 전진기지였다. 한국도 미국과 일본의 하위 파트너로서 이 동맹 질서에 편입돼 성장했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진영의 중요한 일부로서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공유했다.
한
이 합의 이후 한국의 핵심 산업들은 일본의 자금과 기술, 기계를 흡수해 성장했고, 일본의 대한국 수출은 크게 늘었다. 두 나라 정부와 기업 권력자들 사이의 인적 관계도 긴밀해졌다. 한
1990년 이후로는 세계 질서가 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동구권
특히 아시아



이는 독보적인 세계 패권국임을 과시해 온 미국의 위상을 흔드는 동시에, 그때까지 아시아의 최강대국이던 일본의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특히, 중국이 급성장했던 시기에 일본은 반대로 경제 성장 추세가 멈추고 장기 불황에 빠져 있었다.
세계 체제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국은 세계 시장에 진출해 있는 자국 기업의 이익을 궁극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힘, 즉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애쓰고 경쟁한다. 이 경쟁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둔 국가들이 제국주의 질서에서 앞자리를 차지한다. 일본도 그중 하나였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미
또, 일본은 대중국 견제에 저돌적으로 나서며 세력을 과시했는데, 댜오위다오 또는 센카쿠 열도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과 서로 전투기를 발진시키며 위험을 고조시켰다.
이런 과정
한국 정부의 친제국주의적 대외정책에 반대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지배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모순된 압력에 처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다시 부상하는 모습에 분노하는 한국 대중을 의식해, 일본과 미국이 어느 정도는 양보도 해 주길 바라며 줄다리기하기도 했고, 때로는 이것이 볼멘소리의 항의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경제적
다시 말해, 오늘날 한국 지배계급은 과거사 문제 해결을 번번이 가로막는 국제 질서에 이해관계를 가진, 그 구조의 일부다. 한국 지배자들은 일본이나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앞세우며 제국주의에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대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아시아
그 시기의 핵심적 부분이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였다. 김대중 정부는 한
이후 박근혜 정부가 강행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한
한국 국가
당장에 배상 판결 문제는 계속해서 쟁점이 될 것이다. 이 배상 판결 집행을 시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