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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배상 판결 패소의 의미:
한국 지배계급도 피해자들을 외면한다

이번 재판의 원고였던 이용수 할머니. 한일위안부합의 유지라는 문재인 정부의 배신은 피해자들을 내친 법원의 핵심 근거였다 ⓒ이미진

4월 21일 법원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단을 뒤집었다. 이용수 할머니 등 피해자와 유족 20여 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소송 각하)한 것이다.(본지 365호 관련 기사: ‘법원이 문재인의 배신을 정당화하다’)

이는 올해 1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피해자 13명이 승소한 재판 결과와는 다른 것이다. 두 소송은 완전히 똑같은 내용이었는데도 말이다.

1월의 배상 판결 직후 문재인은 “곤혹스럽다,” “바람직하지 못하다”(신년 기자회견)며 법원을 대놓고 압박했다. 1월 배상 판결이 박근혜-아베의 기만적인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와 정면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합의는 일본 정부의 ‘위로금’ 10억 엔 지급으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종결하자고 명시했었다.

결국 문재인은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는 한일위안부합의가 양국 간의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대통령의 입장이 이러하니 4월 판결 직후 외교부는 회피하듯이 모호하게 말했다.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이어 나갈 것이다.]”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 윤미향 의원도 정부의 배신을 호도하며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 중심 접근을 벗어난 합의는 무효라고 이미 발표했다.” 이것은 단순히 거짓말이다. 더구나 윤미향 의원은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소송을 전 정의연 대표 자격으로 승계해 이번 소송의 원고이기도 했다.

민주당 비상대책위원 박정현도 “사법부의 반인권의식, 반역사의식, 반시민의식”을 탓하며 툴툴거렸지만 문재인 정부의 배신을 모른 체한 채 법원만 비판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사실 법원은 문재인 정부의 배신을 정당화해 준 것이다.

판결이 대변하는 이해관계

이번 위안부 패소 판결은 명백히 한국 지배계급의 의중을 반영한 정치적인 판결이다. 형식적인 삼권분립 구조를 넘어 행정부와 사법부가 공유하는 더 근본적인 계급 이익이 있다.

법원은 배상 판결을 석 달 만에 뒤집은 판결문에서 “전적으로 대한민국의 국익에 미칠 유불리를 냉정하게 고려”해 결정한다고 했다. 법리는 그다음 문제였다.

법원이 고려한 ‘국익’은 한·일 양국 지배계급(국가기관 관리자들과 기업인들)이 맺고 있는 안보적·경제적 유대와 그 이해관계다.

물론 해방 이후 한·일 관계는 언제나 과거사 문제라는 폭탄을 안고 있었다. 역대 한국 정부들은 모두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한미일 동맹이 주는 안보적·경제적 이익 쪽으로 기울었다. 일본 제국 하에서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의 외면으로 두 번, 세 번 짓밟혔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라는 판결 때문에 일본과의 합의를 모색했던 박근혜 정부가 반동적인 합의를 한 것도 그 사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취임 전에는 피해자가 바라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집권 후에는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뒤집었다. 급기야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인정한다고 공표해,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국제기구·국제법은 괜찮은 대안이 못 된다

이번 판결 이후 국제사법재판소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하자는 일각의 목소리가 커졌다. 원고의 한 분인 이용수 할머니도 그러한 입장이다.

1990년대 초 일본 현지에서부터 시작된 지난한 법정 투쟁은 한국 법원에서도 20년 동안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국제기구에 기대를 걸어 보는 피해자의 심정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양차 세계대전과 그 전후 처리 과정을 비롯해 제국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볼 때, 국제법과 국제기구는 세계 질서에서 힘을 발휘하는 강대국에 유리한 도구이지, 피억압자들이 기대를 걸어 볼 만한 수단이 되지 못했다. 국제법은 인권, 평화, 평등 같은 추상적인 이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체로 별 소용이 없다.

이번 위안부 배상 재판에서의 법리적 쟁점은 국제법상 국가면제 적용 여부였다. 국가면제에 따라, 타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국제법에는 상호주의 및 강행규범(국제 사회의 선량한 공통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최상위규범) 원칙도 있다. 이는 ‘국가면제’ 논리와 모순된다. 그러나 모순 속에서 결국 더 중시돼 온 것은 제국주의 세계질서이다.

가령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제2차세계대전 시기 자국민을 대상으로 강제노역을 저지른 독일군에 대해 ‘상호주의를 위반한 불법 행위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배상 판결을 내렸다. 독일 정부 소유 재산인 문화교류센터를 압류해 강제집행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이 판결은 얼마 가지 못했다. 독일 정부가 이탈리아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해 결국 2012년 이탈리아가 패소했기 때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무력 분쟁”(전쟁 행위)은 불법 행위이기 이전에 고도의 주권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단지 독일의 손을 들어 준 게 아니라 제국주의 논리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결국 이후에 이탈리아 하급심에서 비슷한 배상 소송들은 줄줄이 기각됐다.

4월 패소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국제사법재판소의 이러한 문제적인 판례를 따랐다. 위안부 문제를 “무력 분쟁”의 일환으로 해석한 것이다.

1990년대 정대협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노력으로 유엔 인권소위윈회와 국제노동기구(ILO)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는 보고서들을 채택하는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추상적이고 상징적 의미 이상으로 강제력은 없었다. 일본 자민당 정부와 우익의 역사 왜곡과 망언은 계속됐다.

반제국주의

일각에서는 유엔 등 국제기구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이 중재에 나서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전략상 한국보다 일본을 훨씬 중시하는 제국주의 강대국으로서 자기 국익을 앞세웠을 뿐이다.

특히,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관철시키려는 조처 중에는 경쟁 상대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군사 동맹 강화가 있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이를 강조하고 있다. 최근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는 대놓고 일본 정부 편을 들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려면 일본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위안부 운동이 국제법/국제기구에 이 문제를 맡기는 데 힘을 쓰면 운동의 초점이 흐려지고 노력과 시간이 낭비될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가로막는 주범들에게 해결을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현재의 군사대국화 야망을 이루려고 과거 제국의 만행을 옹호하고 은폐하고 있다. 미국은 그런 일본과 동맹을 맺고 기존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미·일은 그 동맹에 한국을 충실한 하위 파트너로 삼고 싶어 한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수십년 간 이런 동맹 질서 안에서 안보적·경제적 이익을 누려 왔다. 비록 지금은 중국을 의식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노골적으로 찬양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것이 위안부 문제가 일본 정부와 이른바 ‘국제사회’, 그리고 한국 국가에게도 외면받는 이유다.

이런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안부 문제는 친제국주의적인 한국 정부에 의해서나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국제 기구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 반제국주의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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