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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역대 민주당 정부들에서 어떻게 외면당했나?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논란으로 그동안 이들이 펼쳐 온 운동 방식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그 중에는 그간의 위안부 운동이 반일 민족주의여서 문제였다는 견해도 있다.

분명 반일 민족주의적 해결 방식에는 큰 약점이 있다. 일본 ‘민족(국민)’ 전체를 적대시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의 문제인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에 효과적이지 않을 뿐아니라, 일본에 맞선 한국 내 ‘민족적 단결’도 실제 현실에서는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특히 문재인 정부가 포퓰리즘적으로 반일 민족주의를 활용해 왔지만, 그것은 (지난해 봤듯이) 진정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보진영 일각에선 미래통합당 등 보수 세력을 친일·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에 맞서는 세력에 민주당도 포함시켜 왔다.(계급 협력) 그러나 포퓰리즘 전략은 운동의 발전에 해롭다. 지배계급 기반 정당인 민주당은 일관된 반우파·반제국주의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활동가가 반일 민족주의 비판을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비판과 결합시킨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비판에 일부 일리가 있다고 대안들도 올바르게 내놓는 것은 아닌 듯하다. 반일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견해 중 일부는 민족주의 대신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자고 주장한다. 일부는 한일 관계 악화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어처구니 없게 말이다. 혹자는 기껏 문재인 정부의 반일 민족주의 포퓰리즘을 비판하고는 해법은 국제법과 외교적 노력을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일 민족주의든 아니든 이런 잘못된 접근법들의 공통된 약점은 위안부 등 한·일 과거사 문제가 오늘날의 제국주의의 문제이자 한·미·일 지배계급에 맞서는 문제라는 점을 못 본다는 것이다. 또한 보편적 인권론이든 외교적 해결론이든 계급을 뛰어넘어 해결해야 하고 한국 국가에 의존해야 한다.(그 점에서 실천에서는 반일 민족주의의 실천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현실의 위안부 운동에선 이런 모순된 노선들이 절충돼 왔다. 그 점에서 정대협 운동이 일관되게 반일 민족주의였다고 하는 비판에는 부정확한 면이 있다.)

일본 식민 지배의 끔찍한 역사가 있는 나라에서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는 평범한 한국인들의 커다란 공분이 있는 문제다. 그래서 친미·친일이라고 할 이명박이나 박근혜조차 국내 여론이 악화되면 ‘항일’ 제스처를 취하곤 했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선(先) 조처’를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한동안 한일 관계가 껄끄러웠다.

민주당 정부는 지지층을 의식해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압력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받는다. 그러나 지난 민주당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뤄 왔는지를 살펴보면 민주당 세력에 기대를 거는 것이 큰 착오임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은 일본군 위안부 등 일본 국가가 벌인 제국주의 전쟁 범죄를 해결하는 데서 진지하게 나선 적이 없었다.

역대 민주당 정부는 국민 대중의 공분이 너무 커지거나 이를 국내 정치 상황에서 이용할 필요가 있을 때, 반짝 ‘항일’ 제스처를 취하다가 이내 꼬리를 내리고 타협하는 식이었다.

항일 제스처

김대중 정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흔히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을 두고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 지향적 관계를 구축’한 모범 사례라고 치켜세운다.

그러나 이 선언은 1965년 한일협정을 긍정적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도의적 사과만 했을 뿐 위안부 등 일본 국가가 벌인 범죄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 선언 이후 한·일 간 경제·안보 등 각종 분야에서 광범한 협력이 시작됐다. 이 때문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두고 ‘명분이 아니라 실익을 추구한 사례’라는 평가도 나온다.

1998년 당시 일본 외무상이었던 고무라 마사히코는 이렇게 말했다. “파트너십 선언 당일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총리에게] ‘앞으로 한국 정부는 과거 역사 문제에 대해서 건드리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실제로 공동 선언 이후 김대중 정부는 임기 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외면했다.

2001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들끓자 김대중 정부는 일시 항일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노무현은 일본 총리 고이즈미에게 “내 임기 동안에는 정부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나 쟁점으로 제안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듬해 일본이 독도 문제로 도발해 오자, 노무현은 태도를 바꿔 일본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2005년 8월, 당시 국무총리 이해찬(현 민주당 대표), 당시 민정수석 문재인이 포함된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고 밝혔다.

위안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라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마땅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를 위해 실질적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그 맥락에서 2006년 7월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 국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과 교섭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위헌심판을 제기하고 나섰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위안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 줬다. 그전에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는 일본 국가에 면죄부를 주며 다시는 이 문제를 공식 거론하지 못하게 만든 반동적 합의였다. 그래서 한일위안부합의 폐기는 박근혜 퇴진 촛불의 주요 요구 중 하나였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대중의 염원이 강력했기 때문에 문재인은 대선 때 이 합의를 비판하고 파기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집권 후 문재인 정부는 말을 바꿔 합의 파기는커녕 재협상조차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2018년 말 문재인 정부는 화해·치유재단(한일위안부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낸 10억 엔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기 위해 세워진 기구)을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10억 엔 반환은 하지 않아, 위안부합의의 핵심은 유지했다.

오히려 문제 해결을 방해하기도 했다. 2016년 3월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일위안부합의가 피해자들이 일본에 배상을 요구할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 판결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 뒤 등장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가 이 헌법소원을 각하해 달라는 정부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언론들이 폭로하고 나서야 정부는 마지못해 시인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불러 위하는 척하면서 뻔뻔하게 뒤통수를 쳐 온 것이다. 윤미향 씨가 여당 국회의원이 된 것을 두고 이용수 할머니가 분통을 터트린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말 따로 행동 따로 민주당 정부도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도 끝내는 제국주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출처 청와대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한·일 갈등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강제동원 문제에서도 일본에 타협적이었다. 정부는 일본 전범 기업들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들에게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고 말하며 일본과의 협상에 이를 이용하면서도, 그 파장을 억제하려 해 왔다.

그래서 2019년 말 국회의장 문희상(문재인 정부의 대일 특사 출신)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한·일 기업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커다란 분노를 샀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의 법적 책임을 전혀 제기하지 않는 이 미온적 안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의 타협 시도는 그 후에도 계속됐다. 최근 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을 매각해 강제동원 배상금을 물리기 위한 절차를 개시했다. 차일피일 미루던 끝에 절차를 개시한 것이다. 그 사이에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인단 등은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협의체를 구성해 어느 정도 해결 방안이 마련되면 피해자들의 의사를 물어 자산 매각 조처는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협의체 제안은 정부와의 사전 교감 속에서 마련됐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직후에 문재인은 협의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사법 절차를 “존중”한다고 하면서 일본 정부에게는 압박 카드로만 쓰고 실제로는 상호 절충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 문제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항일 투사 행세를 하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연장해 버린 일에서도 드러난 바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도 정작 한국 국가로서의 책임을 전혀 하지 않아 왔다. 피해자 개인들이 벌인 소송 뒤에 숨어 있을 뿐, 정부가 나서서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에 법적 책임을 따져 묻고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는 오늘날의 제국주의 문제다

민주당 정부를 포함한 역대 한국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도 결국에는 제국주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정부의 태도를 결정짓는 데서 국내적 요인이 작용하더라도 결국에는 국제 정치·경제적 요인이 더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과 일본과의 경제·안보 관계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해결보다 더 우선적이었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가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제국주의 질서에 편입해 성장해 왔다는 점과 관련 있다.

1945년 이래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일본은 가장 중요한 동맹이었다. 이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추동해 온 핵심 동력이었다. 일본 지배자들이 지난 시기의 전쟁 범죄 등을 부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의 군사대국화 프로젝트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최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도 미국은 일본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동맹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미국은 여기에 한국을 포함시켜 한·미·일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하려 해 왔다.

미국이 한국 정부가 ‘과거’를 신경쓰며 한·일 안보 협력을 지체시키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 온 이유다. 2015년 2월 웬디 셔먼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중국이 이른바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다투고 있[다.] … 물론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치 지도자든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일본 제국주의와 동맹 관계를 형성하며 성장해 왔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한국의 지배계급이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일본 주도의 제국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데 협력해 왔다.

이런 점은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며 오늘날 제국주의 체제와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임을 보여 준다.

또한 과거사 문제는 민족 대 민족, 또는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 준다. 과거사 문제는 현존하는 제국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문제이자 ‘민족’ 내의 자본주의 지배자들에 맞서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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