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세계유산 신청 논란:
일본 정부는 무엇을 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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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강행하기로 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범죄가 벌어졌던 현장이다.
사도광산은 갱도가 400킬로미터에 이르는, 한때 일본의 최대 금광산이었다. 1990년대부터는 폐광 후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
2023년 세계문화유산 등록 심사를 받으려면 일본 정부는 다음 달 1일까지 유네스코에 추천서를 내야 한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앞둔 1939년 2월부터 1942년 3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조선인 1200여 명을 사도광산에 동원해 초착취했다. 피해자들은 “생과 사의 경계에 선 하루하루”(고 임태호 씨 증언)를 보냈다.
앞서 2015년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 지역인 군함도(일본명 하시마)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반면, 한국 시민단체들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했을 때는 집요하게 반대해서 무산시켰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이 일본의 오랜 광물 생산 역사를 보여 주는 유산이라고 하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강제동원의 끔찍한 역사는 없는 양 취급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이용해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침략 전쟁과 전쟁 범죄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군사대국화
그러나 이 문제는 단지 일본의 우익 집권당인 자민당(또는 그 강경파)이 과거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문제다.
고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란 단지 어떤 정부나 집권당의 정책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서로 끝없이 벌이는 경쟁 체제다.
제국주의 강대국 중 하나인 일본은 다른 강대국들(특히,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군사대국화”를 이루려 한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과거 식민지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오늘날 밀어붙이고자 하는 군사대국화 계획에 차질을 준다고 여긴다.
특히 역사 문제는 중국과 벌이는 경쟁에서 일본에 불리하다. 일본의 침략 역사는 중국이 일본을 견제하는 데 유리한 쟁점인 반면, 일본에는 아시아 주변국들을 중국 포위 전략으로 끌어들이는 데 걸림돌이다.
한편,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 현재는 중국을 견제하려고 일본을 주요 동맹으로 삼아 왔다. 그리고 한국은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서 나름의 대우를 받으며 성장해 왔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는 게 아니라 한일 갈등을 무마시키는 데 이해관계를 가졌고, 그런 압력은 대체로 미국에 더 중요한 동맹인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가해졌다.
지금도 바이든 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번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신청 강행 결정에 대해 “미국과 소통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국제기구도 일본의 계속되는 역사 왜곡을 해결하는 데서 한계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역대 한국 정부들은 한·미·일 동맹이 주는 이득 때문에 일관되게 역사 왜곡에 항의하거나 위안부, 강제동원 등 피해자들의 편에 서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말로는 일본 정부에 항의했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다.(이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와 국제기구·국제법을 다룬 다음 기사를 참고하시오: ‘위안부 배상 판결 패소의 의미: 한국 지배계급도 피해자들을 외면한다’) 이번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신청에 대해서도 한국 외교부는 즉각 항의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촉구하는 한·미·일 동맹 강화에 부응하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데에 더 큰 강조점을 두고 있다.
역사 왜곡 시도의 배경에 있는 제국주의 질서에 반대해야 한다. 특히 한국 정부가 그 질서에 편승할 때 항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