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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독도 표기 논란:
왜 일본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길까?

일본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공식 홈페이지에 내걸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도가 공개되자 한국 외교부를 비롯해 여야 주요 정당들과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비판 입장을 내놨다. 민주당 대권 주자인 이낙연, 정세균은 문제가 계속되면 한국 대표단의 올림픽 불참(보이콧)도 고려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5월 28일 일본 관방장관 가토 가쓰노부는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다케시마[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이며 한국 측의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독도 논란은 두 달 전에도 불거진 바 있다. 3월 말 일본 문부과학성이 검정 승인한 고등학교 1학년 사회과 교과서 30종 모두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영유권 주장이 담긴 것이다. 그중 6종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더 노골적인 서술도 포함됐다.

일제 침략의 첫 희생물

독도 문제는 20세기 초 일본 제국의 조선 침략에서 비롯된 아주 오래된 문제이자 동시에 오늘날의 제국주의 문제이다. 독도는 조선 침략의 첫 번째 제물이었다.

암초 섬으로 이뤄진 독도는 비록 사람이 정착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지만 울릉도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조선인이 자주 오가며 이용해 온 조선 땅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상에도 조선 국가는 이미 15세기에 조세 관리를 위해 독도를 공식적으로 탐찰했고 이를 기록에 남겼다.

반면에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은 1905년에야 시작된 일이었다. 울릉도, 독도 일대의 섬들을 가리키는 혼란스러운 명칭들이 정리되고 비로소 ‘다케시마’라는 일본식 용어가 독도를 뜻하는 것으로서 통일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당시 일본은 한 해 전인 1904년부터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일본은 본격적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눈독 들이기 시작했다. 동해안에서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 필요한 군사적 거점으로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1905년 2월 22일 일본은 독도를 강탈했다. 조선에 어떠한 공지도 없이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자국 영토로 편입시킨 것이다.

일본 측은 당시 조선 정부가 적극 항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도는 주인 없는 땅이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 시기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종속돼 가고 있었다. 일본은 1904년 2월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보호국 체제로 뒀고, 1905년 11월에는 을사조약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오늘날의 일본 제국주의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 1945년 조선은 식민지에서 해방됐다. 원칙대로라면 당연히 모든 조선 땅은 조선에 돌려줘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독도를 순순히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국제사법재판소(ICJ)로 독도 문제를 가져가자고 요구하면서 분쟁을 일으켰고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방해하려 했다.

일본은 주변 섬을 영토로 확보하는 데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다. 해당 지역에 매장된 지하자원과 배타적경제수역(EEZ) 등 경제적 이익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더 먼 거리까지 군사적 해상 세력권을 뻗치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 때문에 일본은 독도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도 각각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쿠릴열도 4개 섬 등을 놓고 영토 분쟁을 치르고 있다. 특히 댜오위다오 지역(동중국해)은 남중국해와 함께 지난 10여 년 사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첨예한 긴장을 낳는 지역의 하나로 변모해 왔다.

일본이 2000년대 들어 군사대국화에 더한층 박차를 가하고 폭발적으로 성장한 중국을 견제하려고 하면서 영토 갈등은 더욱 심화했다.

아베 정권은 “강한 나라”를 표방하며 군사대국화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였고 해석 개헌 등으로 이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왔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비롯해 역사 왜곡이 극성을 부린 것도 이 과정에 동반된 것들이었다.

미일 동맹과 바이든

이 모든 과정에서 미국의 구실은 결정적이었다.

일본은 냉전기에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는 데 있어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패전 이후 몰락하다시피 했던 일본을 강력히 지원했다. 전후 독도 문제가 명확하게 처리되지 못한 것도 미국이 일본을 위해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모호하게 해석, 처리해 줬기 때문이었다.

이런 관계는 큰 틀에서 냉전 해체 이후에도 이어졌다. 소련은 무너졌지만, 급성장한 중국의 존재는 일본뿐 아니라 독보적인 세계 패권국임을 과시해 온 미국의 위상도 흔드는 것이었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서 일본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국주의 질서는 미국에서 바이든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바이든은 중국 견제와 그것을 위한 한·미·일 동맹 강화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미국이 중시하는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협의체)에서 중심 구실을 하고 있다.

반제국주의

이것이 바로 독도 문제 등 한일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미국이 ‘한·미·일 동맹을 위해 원만하게 해결하라’면서도 사실상 더 중요한 동맹인 일본의 편에 기울어 온 이유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다.

이번 도쿄올림픽 지도 표기 문제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개입은 대안이 되지 못할 것이다. IOC는 올림픽과 연관된 온갖 이권들을 놓고 부패하기로 악명 높은 기구인 데다, 여기에 막대한 돈줄을 대는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실제로 IOC는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측이 지도에 독도를 표기했을 때 일본이 노발대발하자 한국더러 독도를 지우게 만들어 놓고, 이번에는 뒷짐만 지고 있다.

한국의 주류 정치인들도 지금은 강경해 보이는 발언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항의가 일관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적 여론뿐 아니라 영토 주권이 걸려 있는 독도 문제를 지배자들이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대 모든 정권들은 일본과 갈등을 빚다가도 결국에는 한·미·일 동맹이 제공하는 더 큰 이해관계(또는 압박) 때문에 일본과 타협해 왔다.

예컨대 1965년 박정희 정권은 한일 협정을 맺는 과정에서 하루빨리 대일 청구권을 받아 경제 개발 자금에 쓰려고 독도 문제를 매듭 짓지 않고 외면했고,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신한일어업협정을 맺으면서 독도 영유권 문제를 유보한 채 독도가 한국과 일본의 중간수역에 들어가도록 합의해 줬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을 맺는 등 북핵을 이유로 한 관계를 부쩍 강화하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대선 공약이자 임기 내내 계속 쟁점이었던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 해결보다는 일본과의 화해, 협력을 더 강조해 왔다.

한·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친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해 온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반일’도 아니고, 독도 문제에서 일관된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도 없다.

독도 문제의 진정한 대안은 제국주의 질서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대중 운동의 관점에서 모색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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