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
‘탈핵’ 공약처럼 말뿐인 기후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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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이하 로드맵)의 일부 내용이 언론에 공개됐다. 전문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는 올해 상반기 내에 로드맵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도들을 보면, 정부 목표는 2050년 탄소 순배출량을 2018년보다 97퍼센트 줄이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2050년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그것도 ‘제로’에 가깝게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탄소 배출량은 7억 2760만 톤으로 세계 11위 규모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파국을 막으려면 금세기말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2018년, 1.5도 특별보고서). 그러려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퍼센트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4월에 개최한 기후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이 목표를 따를 것이라며 다른 선진국들에도 동참을 요구했다. 바이든은 ‘탄소 국경세’ 도입을 예고한 바 있는데, 미국보다 탄소 규제가 약한 나라의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주로 중국을 겨냥한 조처이지만 한국처럼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로드맵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든 발을 맞추려는 시도인 듯하다.
정부는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발전 부문에서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한 방안은 2050년까지 석탄화력 발전소를 7곳 남겨 두는 안이다. 여기서 배출되는 탄소는 연간 1900만 톤이다.
다른 안은 2050년까지 모든 석탄화력 발전소를 폐쇄한다.
그러나 두 안 모두 가스 발전소를 계속 운영한다. 여기서 배출되는 탄소는 9200만~1억 톤에 이른다. 탄소 ‘중립’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지는 이유다.
어떻게?
그런데 어떻게 탄소 배출량을 97퍼센트나 줄이겠다는 것일까?
정부는 ‘탄소 포집과 활용, 저장’(CCUS) 기술을 활용해 연간 탄소 8500만 톤을 제거하겠다고 한다. 이 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석탄화력 발전소 등 탄소를 배출하는 굴뚝에 포집 장치를 달아 탄소를 흡수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현재 실험 중이다. 다른 하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것(DAC)인데, 이 기술이 극도로 비효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 중 농도가 0.04퍼센트에 불과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발전 부문에 이어 배출량이 많은 산업, 수송, 건물(건축과 냉난방) 등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대폭 줄이고 ‘전기화’해 탄소 배출량을 각각 83퍼센트, 98퍼센트, 86퍼센트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 발전을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는 이 계획이 말도 안 된다고 비판한다. “서울 면적의 10배”를 태양광 패널로 덮겠다는 것이라며 태양광 설치로 숲이 파괴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현재 한국의 생산 방식을 고스란히 뒷받침하려면 재생 에너지 생산 설비가 대단히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또, 지금처럼 이윤을 좇는 민간 사업자에게 재생 에너지 사업을 맡기면 숲이 파괴되고 부실 공사로 인해 피해도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규모 재정 투자를 하고 제대로 감시하면 그런 피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전국의 골프장을 합하면 서울 면적의 60퍼센트가량 된다. 전국의 아파트 면적은 서울 면적의 1.7배가량 된다. 도로 면적은 서울의 3곱절이나 된다. 이 밖에도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은 많다.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고 대량 생산·설치로 효율을 높이면 실현 가능성은 더 커진다. 무엇보다 재생 에너지 생산 확대는 기후 위기를 멈추고 인류 전체의 삶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조처다.
사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파들도 더는 기후 위기를 부정하지 못한다. 또, 미국의 무역 장벽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탄소 중립에 호응하는 모양새는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핵발전 비중을 늘리고 탄소중립 시기를 몇 년이라도 더 미루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국내 핵심 제조업(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건설업 등) 자본가들에게 경쟁력을 갖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관점을 대부분 수용한다. 그래서 로드맵에 따르더라도 2050년에 핵발전소는 상당히 많이 운영된다. 핵발전 비중이 7퍼센트로 줄어들 것이라고 하지만, 전체 전력 생산량이 2.3배로 늘어나므로 실제 핵발전소의 발전량은 상당한 규모로 유지된다.(2018년 133테라와트시에서 2050년 88테라와트시로 감소)
게다가 이번에 나온 계획은 30년 뒤의 목표뿐이다. 그 사이에 한국 대통령은 6번, 미국 대통령은 최소 3번은 바뀔 것이다. 탄소 중립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과 중간 목표들은 그때그때 ‘조정’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우파 야당 사이의 차이는 30년 뒤냐 35년 뒤냐 하는 수준의 차이일 뿐이다.
어느 언론도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로드맵 실행에 필요한 재정 규모와 이를 조달하기 위한 수단도 명시돼 있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완전히 공허한 계획이다.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정부가 실효성 있는 계획을 제시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기껏해야 바이든이 그랬듯(관련 기사: ‘지배자들은 정말로 기후 위기를 해결할까?’, 〈노동자 연대〉 371호) 정부 지출은 최소화하고 민간 투자에 의지하려 할 것이다. 이는 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계획이 수정되거나 좌절될 수 있다는 뜻이다.
로드맵에는 산업 전환에 따라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도 거론되지 않은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전환’이니 ‘정의로운 전환’이니 하며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협조를 얻기 위한 감언이설을 흘리지만, 정작 노동자들의 해고를 막고,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할 대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로드맵 실행을 민간 기업들에 의존한다면 그 일자리는 저질 일자리가 되기 쉽다. 이 정부가 추진한 ‘군산형 일자리’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택배, 우편, 보건 등 사회 필수 인력에 대한 태도를 봐도 알 수 있다.
전기요금과 각종 세금 인상도 뒤따를 것이다. 이는 기후 위기 대응 비용을 노동자·서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그 고통을 가장 크게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공격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기후 운동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한다.
P4G 서울선언문 – “노력한다”는 말만 가득한 공허한 선언
5월 30~31일에 열린 ‘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P4G)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서울선언문’에는 아무런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되지 않았다. “강조한다”, “노력한다”, “독려한다” 등 이제는 지겹기까지 한 뻔한 표현들만 잔뜩 담겼을 뿐이다. 주최 측인 문재인 정부도 목표를 제시하겠다는 약속만 했다.
한편 “상업적 확산”, “민간 자금 유입과 민간의 적극적 참여” 등 신뢰하기 어렵고 기업 이윤을 우선시하는 대안들이 강조됐다. “시장 기반의 해결책”은 세 차례나 언급됐다. 바로 그 시장이 지금의 기후 위기를 낳은 주요 원인인데 말이다.
시장은 어마어마한 환경 파괴를 낳지만 그것을 복원하는 데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이윤 축적 경쟁은 사회의 극소수인 자본가들만의 이익에, 그것도 단기적 이익에 골몰하도록 만든다.
그린워싱을 비판하는 시위대에는 경찰을 투입해 항의의 목소리를 억누르더니, 선언문에서는 역겹게도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귀 기울일 것”이라고 썼다. 누가 이 따위 선언문을 존중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