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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죽은 역학자들: 코로나19의 기원과 맑스주의 역학자의 지도》(롭 월러스 지음):
“자본과 무관한 병원체는 없다”

《죽은 역학자들 - 코로나19의 기원과 맑스주의 역학자의 지도》 롭 월러스 지음, 구정은,이지선 옮김, 너머북스, 2021년, 308쪽, 21000원

마르크스주의 역학자 롭 월러스의 신간 《죽은 역학자들》(너머북스, 구정은·이지선 옮김)이 나왔다.

지난해 번역돼 나온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너머북스, 구정은·이지선 옮김)이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의 글들이라면, 이번 책은 코로나19 발생 이후인 2020년에 쓴 글과 인터뷰 모음이다.

롭 월러스는 지난 25년간 신종 전염병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해 왔다. 2007년 그는 H5N1 조류 독감 바이러스의 근원을 1990년대 중반 중국 광둥성으로 지목한 첫 번째 연구의 주요 저자였다.

그가 찾아낸 전체 그림은 중국 경제 개발로 농촌에서 도시로의 거대한 이주가 있었고, 1985~2000년에 농민은 노동자가 되고 농업은 산업 농업이 되면서 전염병의 병원체 역시 산업화된 것이었다.

즉 전염병의 정치·경제적 기원을 파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책의 핵심 메시지도 “구조적 문제”를 빼고 전염병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조적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다.

월러스가 바이러스의 정치적·경제적 기원을 파고들자 그때부터 학계에서의 경력이 사실상 차단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블로그 ‘병원균 농업’을 통해 산업형 농업의 실상을 알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돼지 독감이 유행할 때도 같은 입장을 내놨다.

월러스는 식료품점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연구와 글쓰기를 지속했고 기어코 7년 만에 거대 농업과 팬데믹의 위험을 경고하는 책을 냈다.

롭의 부모도 물리학자이자 생태학자였다. 둘은 무기 연구소 설립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만났고,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 같은 급진 과학자들의 초기 그룹을 함께 조직했다.

그래서 《죽은 역학자들》의 3장과 9장은 자신의 아버지인 로드릭 월러스(수학역학자)와 함께 썼다.

서커스단의 소년과 코끼리

이번 책 첫 페이지에서 월러스는 이 책을 코로나19로 숨진 육류 가공 노동자들에게 헌정했다.

책 5장에서 저자는 그 노동자들에 대한 야만적인 대우를 고발한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육류 포장 공장에서 사망자가 나오자 더러운 이민자가 코로나19를 공장으로 들여왔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기업의 대변인은 자기 기업의 (이민) 노동자들을 비난했다. “특정 문화권의 생활환경은 전통적인 미국 가정의 그것과 다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직업안전건강관리청이 내놓은 가이드라인은 감염된 공장 노동자를 증상이 있을 때만 격리할 것을 권고했다.

《죽은 역학자들》은 세계 각국이 감염병 예방과 대응에 실패한 것은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병된 뒤에 일어난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공중보건 예산을 삭감하고 시장에 내맡길 때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감염병 예방과 대응은 번번이 실패하고, 역학자는 사후 뒤치다꺼리를 주로 맡는다 ⓒ출처 Monthly Review

이런 조건에서 “역학자가 주로 하는 일은 서커스단 소년이 삽을 들고 코끼리 뒤를 쫓아다니는 식의 사후 관리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 아래에서 역학자나 공중보건 기관은 치명적인 감염병을 부르는 최악의 관행들을 합리화하면서 시스템이 실패한 뒤 뒤치다꺼리를 하고, 그 대가로 펀딩을 받는다.”

《죽은 역학자들》은 이번에 문제가 된 야생식품 시장을 공식화하고 있는 것도 자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상거래의 규제 완화가 진행돼 모든 것이 점점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대부분의 종이 사는 곳곳에서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만 그런 게 아니다. 저자는 미국과 유럽도 H5N2를 비롯한 H5N 시리즈의 신종 인플루엔자들의 발생지였음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절대적 지리가 아닌 ‘관계적인 지리’를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보면, 전염병의 핫스팟은 뉴욕, 런던, 홍콩 같은 세계 자본의 중심지들이다.

“예를 들어 [바이엘, 카길 같은] 다국적기업들의 ‘콩 공화국’은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걸쳐 있다.”

새로운 지리가 경영과 자본, 하도급과 판매망, 초국적 토지 매입을 따라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대 농업 기업들이 국경을 가로질러 운영하는 ‘상품 공화국’들을 타고 새로운 전염병의 동학이 만들어진다. 숲이 사라지고 질병이 출현할 환경이 만들어진다.

삼림 벌채의 범위가 클수록 더 특이한 동물원성 병원균이 먹이 사슬로 침투한다.

지카 바이러스도 사스 바이러스처럼 숲을 나와 확산됐다. 이 책에서 저자가 지적하지는 않지만, 기후변화 역시 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추진력을 줬다.

지난해 7월에 나온 유엔 보고서를 보면, 새로운 인간 전염병 넷 중 셋은 동물원성 기원이다. 《네이처》의 한 연구를 보면, 그중 절반이 농업적 동인과 관련 있다.

‘보이지 않는 거인’

“현재 자본과 무관한 병원체는 없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군은 농산물과 축산물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산업화는 농산물과 축산물의 대부분을 유전적으로 단일화시켰다. 치명적인 병원체를 스스로 배양하는 셈이다.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농업은 자신을 방어할 자체적 수단이 없다. 따라서 백신과 항생제에 의지한다. 항생제 내성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소농을 비난하고 농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게 산업형 축산의 표준 위기관리 대응이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거대 농축산기업들이 번식과 사료, 생장, 도축, 판매의 전 과정을 장악하고 있다.

‘자유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 대신 ‘보이지 않는 거인’들이 있다.

카길, 타이슨푸드, JBS, EW, 헨드릭스제네틱스, 그리모, 바이엘, 다우듀폰, 켐차이나 등 소수의 거대 농업 기업들이 전 세계 종자, 비료, 살충제, 제초제, 곡물, 소, 돼지, 닭, 달걀, 농토, 담수, 목초지, 저장과 운반, 가공과 판매까지 다 장악하고 있다.

물론, 채굴산업과 루이비통 같은 사치품 산업도 아마존과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있다.

국영 은행들, 금융 자본, 정치인과 정부들이 이들 모두를 밀어준다. 정부의 보조금, 코로나 지원금도 주로 이들이 차지했다.

과학 연구와 연구비의 많은 부분도 이런 체제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고 있다.

이윤에 눈먼 기업들은 오히려 모든 위험을 숨기고 뻔히 역학적으로 위험한 사업을 벌이지만, 그 막대한 피해는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다.

저자가 계속 강조하듯이, 사실 이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와 수준의 해악들이다.

따라서 “질병을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질병의 인과관계와 방역을 보는 시각이 생물의학이나 생태 보건학을 넘어서 너무 폭넓다 싶을 정도까지 생태사회학적 분야로 뻗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기술 유토피아적” 접근과 환상도 경계한다. 거대 농업 산업이 우리를 이대로 묶어두기 위한 술책에 가깝다는 것이다.

“‘기술’이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특정한 목적에 따라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특정한 형태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중립적이고 저렴한 도구인 양 묘사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기술은 특정한 물질적 요구들과 이어져 있다.”

따라서 《죽은 역학자들》은 “에코헬스”, “원헬스”, “지구공학적” 접근, “기술자본주의” 연구기관의 주장 등 우리를 현혹시킬 만한 사이비들을 비판하고 있다.

유목민과 버펄로의 존재 가치, 생물 다양성을 해치는 에티오피아의 유칼립투스 사례 등은 이런 분별력을 갖게 하는 데 유익할 것이다.(11장)

문제는 자본주의다

농업 사회학자와 함께 쓴 11장에서는 식물성 대체 고기 산업과 세포 농업의 육성을 제안하는 환경운동가들을 비판한다.

《민주주의는 없다》의 작가 애스트라 테일러 등은 그린 뉴딜처럼 “공공 주도 투자”로 대체육 사업을 육성하고 기존 축산업을 종식시키자고 제안했다.

빌 게이츠나 환경운동가를 자처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배양육 산업에 투자한다.

이미 카길과 타이슨푸드 등이 식물성 대체육을 생산하고 배양육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 곡물시장의 40퍼센트를 장악한 거대 농축산기업 카길이 곡물로 만드는 인공고기나 줄기세포로 고기를 배양하는 세포 농업(배양육) 장사를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저자가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업과 정부의 인적 경계 자체가 흐려졌다. 회전문과 같다고 할까. 회사 사람이 정부 관료가 되고, 정부 관료가 회사 사람이 되고, 다시 정부 관료가 된다. 회사나 정부로 돌아올 때마다 지위가 더 높아진다.

카길은 오랫동안 막대한 농업보조금을 누렸다. “공공 주도 투자”로 정부가 과연 이들을 대체할까.

또한 롭의 비판처럼 유목민들과 소농들이 무슨 죄인가. 소나 양을 키웠을 뿐 그들이 지구를 망친 게 아니다.

“생태적, 사회적, 방역학적으로 오로지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그런 고기는 없다.”

만약 축산업을 없앤다고 해도 카길, 바이엘, 다우듀폰, 켐차이나가 지배하는 세상 그대로라면 산업 농업은 얼마든지 지구를 파괴할 것이다. 따라서 역시 문제는 자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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