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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리 인상으로 더욱 악화되는 기업 부채 위기

11월 2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또다시 기준금리를 0.75퍼센트포인트 올렸다. 이로써 미국 기준금리는 4퍼센트로 올랐다. 미국 기준금리가 4퍼센트대로 오른 것은 2008년 1월 이후 약 15년 만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기준금리 발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종금리는 이전에 예상한 수준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까지 미국 기준금리가 5퍼센트를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1퍼센트포인트 높아지면서 한국은행도 이달 말에 또 한 번의 ‘빅스텝’(기준금리 0.5퍼센트포인트 인상)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진 상황이다.

한국보다 미국 기준금리가 높아질수록 원화 가치는 빠르게 하락하고,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빼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면서 건설사들의 부도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미진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부동산 PF발 위기로 촉발된 한국 금융시장의 자금 경색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50조 원 이상의 자금 공급 방안을 발표하며 자금 경색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또 올리면 자금 경색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특히, 증권사·건설사의 부도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자금 조달이 힘들어진 증권사들은 자산을 내다팔아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내년 1분기부터는 중소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다.

부동산 PF 대출 중단과 부동산 시장 급락으로 건설사들의 부도 위험도 커졌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4만 1604채로, 한 달 사이에 8882채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중소 건설사들뿐 아니라 태영건설·신세계건설·코오롱글로벌·효성중공업 같은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도 높은 부채 비율 때문에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최근의 급격한 금리 인상 때문에 국내 중소기업들은 자금을 구하지 못해 그야말로 고사 상황으로 내몰렸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기준금리가 3퍼센트로 인상되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할 사업체가 86만 4123곳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그런데 기준금리는 이미 3퍼센트다. 중소기업들의 연쇄 부도 위험이 임박했다.

외화 자금 조달난

한편, 국내 금융시장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서 기업들의 외화 자금 조달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흥국생명은 11월 9일로 예정돼 있던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을 조기상환 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는 채권이지만 보통은 5년 만에 상환하는 게 관례이므로 ‘사실상 5년 만기 채권’으로 인식돼 왔다. 흥국생명은 채권 상환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려 애썼지만, 이자가 너무 높아 자금 마련에 실패했다.

흥국생명의 외화 채권 상환 실패로 외화채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으며 한국 기업들의 신종자본증권 가격이 폭락했다.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외화 채권을 발행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문제는 내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한국 기업들의 외화채권 규모가 약 249억 200만 달러(약 35조 3000억 원)나 된다는 점이다(NH투자증권 조사). 외화채권 발행 규모는 2015∼2019년까지 100억 달러대에 머물렀지만, 2020년 이후 연간 300억 달러 수준까지 급증했다. 한국 기업들이 외화 부채를 갚기 어려워질수록 외환 위기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한국의 수출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미 지난달 한국의 수출액은 524억 8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5.7퍼센트 감소했다. 2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 오던 수출이 2년 만에 감소한 것이다. 특히,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4퍼센트나 급감하면서 수출 전반에 타격을 입혔다.

가계 부채 문제도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1900조 원까지 불어난 가계 부채의 이자 부담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준금리가 4퍼센트를 넘어서면, 이미 7퍼센트대에 진입한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등의 최고 금리는 9퍼센트까지 오를 것이다.

지난해에 4억 원을 4퍼센트 금리로 빌린 경우 월 이자 부담은 약 133만 원이지만, 대출금리가 9퍼센트까지 오르면 월 이자는 약 300만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미국의 금리 인상은 한국의 부동산과 기업·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대폭 올리면 금융 불안정이 더욱 심화돼 결국 외환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조금만 올리면 그것은 그것대로 외화 자금 이탈 등으로 외환 위기가 터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미 중소 증권사·건설사들에서는 구조조정과 해고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와 기업 부채 위기가 심화될수록 이런 공격은 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공산이 크다.

이윤 보호를 위한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벌어진 생계비 위기와 구조조정·해고에 맞서, 금리 인하와 부채 탕감, 일자리·임금 방어를 위한 저항이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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