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악에 맞서는 프랑스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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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자들이 갈 길을 보여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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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프랑스 전역이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악 시도에 맞선 파업과 시위의 물결로 뒤덮였다. 노조 추산으로 전국에서 280만 명이 참가했다. 200만 명이 참가한 1월 19일 파업·시위보다도 규모가 더 크다.
철도를 비롯한 공공 부문뿐 아니라 민간 부문 노동자들도 파업에 참가했다. 지난해 10월 생계비 위기에 항의하며 파업한 정유공장 노동자도 상당수가 다시 일손을 놓았다.
연금 개악은 핵심적으로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이다. 마크롱 정부는 연금 수령 시작 연령을 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려 한다. 그리고 43년 동안 연금을 납부해야만 연금 전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휴직이나 이직, 실직 등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하면 연금 수령 연령은 더 늦춰진다. 그야말로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는” 전형적인 복지 삭감 정책이다.
마크롱 정부는 프랑스인의 출산율이 낮아지고 평균 수명이 늘어 연금 개악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신자유주의적 연금 개악을 추진하는 다른 정부들도 흔히 사용하는 것이다. “기금 고갈” 운운하며 연금 개악을 준비 중인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재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팬데믹 기간에 평범한 프랑스인 수백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동안 프랑스 억만장자들은 자산을 막대하게 늘렸다. 2021년 프랑스 억만장자들이 벌어들인 수입은 무려 235조 원에 달했는데, 이는 프랑스 전체 공공병원 예산의 두 배에 달하는 액수다.
한국의 대기업도 윤석열 정부로부터 6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감세 혜택을 받게 된다. 이에 반해 올해 의료·교육 등 공공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제 살 깎아 먹기 식인 노동계급 내 재분배가 아니라, 부자들과 사용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연금 개악을 정당화하는 명분들은 사회의 진정한 불평등을 가리고, 그 책임자들이 면피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1월 31일 시위에 참가한 유치원 교사 하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8년 경제 위기 때 정부는 어디선가 수백조 원을 찾아와 은행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보듯이 언제나 더 많은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노동계급입니다. 너무 불공정합니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이미 2019년, 대규모 파업과 시위로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악을 저지한 바 있다. 2019년 12월 한 달 내내 100만 명이 넘게 참가한 시위가 지속됐고, 철도·정유·전력 등 공공 부문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노동자가 파업했다.
유류세 인상 등 마크롱의 정면 공격을 막아 낸 2018년 노란 조끼 운동이 이 파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노란조끼처럼 하자”는 구호가 유행했다. 1995년 이래로 가장 큰 파업이 벌어졌다. 이 저항에 밀려 마크롱 정부는 연금 개악안을 철회해야만 했다.
이번에도 프랑스 노동자들은 마크롱의 연금 공격에 대거 맞서고 있다. 일부 전력 노동자는 이른바 “로빈 후드 작전”이라고 불리는 비공인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파업은 하되, 학교, 보육원, 공공 스포츠 시설, 저소득층 가정 등에 무료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연금 개악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좌절시킨 경험이 있다. 아직까지 마크롱 정부는 후퇴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파업이 더 확대된다면 마크롱 정부를 한 발 물러서게 할 수 있다.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토요일을 다음 행동의 날로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파업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평일에 일손을 놓아야 한다.
프랑스 급진 좌파들은 이런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NPA)은 2월 6~8일 다시 파업에 돌입하는 전력·정유 노동자를 중심으로 총파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배자들의 공격에 단호하게 맞선다면 이를 좌절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보여 주고 있다.
윤석열도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는” 연금 개악안을 곧 내놓을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프랑스처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