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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인상이 기후 위기 해결에 도움이 될까?

‘난방비 폭탄’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근심과 불만이 커지는 사이, 기후 운동 내에서는 오래된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 기후 활동가의 냉담한 주장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스요금 인상의 체감 폭이 큰 이유가 뭔가요?” 하는 진행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11월보다 12월이 추워서 가스를 많이 써서 그렇지요.”

일종의 충격 효과를 노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난방비 폭탄에 난처해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냉소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가 펼친 주장을 최대한 공정히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인기 영합성 요금(혹은 지원) 정책으로 공기업에 과도한 부채를 쌓도록 해서는 안 된다. 또 전기·가스 같은 에너지 이용에 ‘적절한’ 요금을 부과해야 에너지 수요를 ‘관리’할 수 있고, 그래야만 기후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전자의 주장, 즉 공기업 부채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를 두고는 즉각 반론이 제기됐다. ‘착한 적자’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다.

다만 뒤의 주장에 관해서는 혼란이 적지 않다. 개개인의 과도한 에너지 소비가 문제이고,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짧은 진술에 최소한 네 가지 쟁점이 있다. 에너지 가격을 올리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나? 얼마나 올릴 수 있나? 얼마가 적절한 요금인가? 누구에게 부과해야 하는가?

먼저, 주류 경제학의 수요·공급 논리와 달리 지난 반세기 동안 에너지 가격은 온실가스 배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부터 볼 필요가 있다. 가격은 잠깐 내렸다가도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시종일관 늘었다. 시장이 환경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초기 환경경제학의 가정은 완전히 파산했다.

논리적으로는 화석연료 가격을 인위적으로 한계 상황까지 끌어올리면 사용량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화석연료 가격을 극단으로 올리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에 근본에서 위배되는 것이다. 프레온 가스처럼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차적이고 그래서 강대국들이 나서서 사용을 금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화석연료는 현 자본주의 강대국들이 가장 많이 의존하는 에너지원이자 상품 소재이고 그래서 ‘전략 자원’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현 정부, 혹은 현존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 안에서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도 지난 30년 동안 거듭 좌절돼 왔다. 기후 위기를 멈추려면 체제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전 세계 수많은 청년들의 공감을 얻게 된 이유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이나 기후 운동 내에서나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기후 위기를 멈출 수 있다고 믿는 이가 다수다. 따라서 좌파는 인내심을 갖고 기후 운동에 참여하며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도전해야 할 필요성과 그 가능성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입증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더 광범한 사람들을 기후 운동에 참여시켜야 할 뿐 아니라 특히 노동자 대중을 운동의 일부로 획득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얻는 이윤에 의존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기후 위기의 피해 당사자일 뿐 아니라 그 피해를 최소화할 힘을 갖고 있고, 궁극적으로 그 힘을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데 사용할 잠재력도 갖고 있다.

누구에게 얼마나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도 바로 이런 운동 건설을 위해 제기돼야 한다. 이 점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난방비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체제의 논리에 순응하는 것이지 도전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사실 에너지 가격을 인상하는 데에는 운동 자체가 필요없다. 이런 주장은 평범한 청년과 노동자들이 기후 운동과 소원해지도록 만드는 효과만 낼 것이다.

일부 활동가들은 정부와 기업에 더 큰 책임이 있다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가 사용한 만큼의 책임은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기후 위기에 끼친 영향은 단지 양적인 차이만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에너지원을 결정한 권한은 고사하고 선택의 여지도 거의 없다. 심지어 서울 인구의 절반은 남의 집에 세 들어 산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특별한 이익을 얻은 것도 없다. 그러기는커녕 비용과 대기오염으로 이중의 부담을 지고 있을 뿐이다. 기업주들만이 이로부터 이윤을 얻는다. 따라서 사용량에 따라 부담을 지도록 하자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가정에서 연료 연소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의 5퍼센트 가량으로 지난 30년 동안 감소해왔다. 도시가스 보급이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감축도 비용 전가가 아니라 바로 이처럼 에너지원 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이뤄야 한다 ⓒ자료 출처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주택 단열 개선을 지원하라는 주장은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옳은 얘기지만 그것이 요금 인하나 난방비 지원을 반대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가정용 난방 연료는 필수재이므로 정부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에게 공급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대중의 곤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요금을 인상하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기후 위기의 대안을 찾는 것은 올바른 판단에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런 생각은 난방비 인상이나 전기요금 인상처럼 당장에 사람들의 소비 절약을 강제하는 정책들에 이끌리게 하는데, 실제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만 떠안긴다. 사후 지원 대책은 다른 복지제도들처럼 대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불필요한 형평성 논란만 불러일으킨다.

평범한 개인의 에너지 소비를 문제 삼는 주장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한겨울에 반팔 입고 지내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는 일부 기후 활동가들의 주장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기후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할 평범한 사람들을 별 근거도 없이 서로 불신하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팔만 입고 지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그렇게 늘어난 온실가스 배출이 얼마나 되는지도 근거가 없다.

이런 이미지가 여러 ‘공익’광고에도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정부와 기업주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책임을 가리는 데에 참 편리한 변명이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멈추고자 하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실내복보다 정부와 기업, 국가와 체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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