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연금 개악 제안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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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또다시 국민연금 개악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초당적인 협조를 통해서 연금 개혁을 일부나마 시행했으면 한다”며 “모수 개혁부터 2월 안에 매듭짓기 바란다”고 했다. 국민연금 모수 개혁은 연금 제도의 기존 틀은 유지하면서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노후에 받는 돈)을 손질하는 것을 말한다.
이미 21대 국회 막판인 지난해 5월에도 여야는 국민연금 개악안에 사실상 합의한 바 있다. 당시 이재명 대표는 “우리 민주당이 다 양보하겠다”며 계속해서 후퇴했다.
그때 합의된 안은 보험료를 소득의 9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0퍼센트에서 44퍼센트로 조정하는 안이었다.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44퍼센트나 오르는 반면, 소득대체율은 10퍼센트만 올리는 개악인 것이다.
예를 들어, 월급이 300만 원(현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인 봉급생활자는 월 보험료가 27만 원에서 39만 원으로 늘어난다. 이 중 절반을 사용자가 부담하긴 하지만 노동자도 월 6만 원이나 더 내야 하는 것이다. 반면, 30년 뒤에 받는 국민연금은 80만 원에서 88만 원으로 고작 8만 원 늘어난다. 게다가 개인이 보험료를 전부 부담하는 지역 가입자는 12만 원을 고스란히 더 내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은 이런 합의안의 국회 처리조차 막아섰다. 모수 개혁뿐 아니라 구조 개혁(국민연금에 기초연금·퇴직연금까지 연계해 연금 제도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도 함께해 더한층의 연금 개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국민의힘 원내대표 권성동은 “최근 이재명 대표가 연금 개혁을 띄우는 것은 대선용으로 이미지에 분칠하는 것”이라며 또다시 연금 구조 개혁도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다수 부자들은 ‘모수 개혁’이라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같은 언론들은 연금 구조 논의로 시간을 끌지 말고, 보험료를 대폭 올리는 안을 빨리 처리하라고 국힘에 촉구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인 조규홍도 국힘 지도부를 만나 모수 개혁을 신속히 처리하자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2월 중에 연금 개악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 소속인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2월 내에 처리하려고 한다”며 국힘을 압박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정부·여당과 협상하며 계속 후퇴한 것을 볼 때, 이번 협상에서 연금 수령액을 더 삭감하는 합의안이 나올 공산도 있다. 보험료만 대폭 오르고 연금은 제자리인 안이 통과될 수도 있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민주당은 연금 보험료는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대폭 낮추는 개악을 주도한 전력이 있다.
민주당이 지금 연금 개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지배계급에게 수권 정당으로서 면모를 보이고, 대선에서 ‘중도층’의 표심을 잡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주 등 부자들이 앞으로 국민연금 지급을 보조해야 하는 정부 재정 적자가 늘어나는 부담, 그리고 그 적자를 메울 때 늘어날 자기네의 세금 부담 증가를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노후 생활 보장을 강화하기는커녕 기업주 등 부유층의 부담 증가만 걱정하는 행태는 다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또다시 개혁 염원자들의 실망만 자아낼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연금 기금 고갈은 진정한 문제가 아니다
우파들은 지금 국민연금 적자가 “매일 885억 원”씩 쌓이고 있다며, 2056년이 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고 호들갑을 떤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마치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양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연금 기금이 바닥난다고 해서 연금 지급이 중단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구 여러 나라들은 이미 기금이 없어도 노령연금을 지급하고 있고, 한국의 건강보험도 기금 없이 운영 중이다.
노동계급에게 진정한 문제는 연금 기금 고갈이 아니라 연금이 최소한의 노후 생활조차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연금통계 결과’를 보면, 우리 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됐고, 평균 수령액은 41만 3000원에 그쳤다. 여기에 30만 원이 채 안 되는 기초연금을 더해도, 1인 최저생계비인 116만 원에 턱없이 부족한 ‘용돈 연금’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노인빈곤율은 38.1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연금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으니 노인의 약 30퍼센트는 65세 이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
우파들은 2056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된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해 한국의 전체 연금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7퍼센트가량에 불과할 것으로 추계된다. 이미 유럽 국가들은 GDP의 10퍼센트 넘는 돈을 연금 지급에 쓰고 있는데 말이다.
부유층과 기업주들에게서 더 많은 세금과 보험료를 거둬 연금만으로도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보험료 인상에 동의해 준 진보 단체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민주노총·한국노총·참여연대 등 포함)이나 진보당·정의당 같은 주요 진보 단체들은 ‘노후 보장성’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올해 1월 22일 이 단체들은 지난해 4월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채택된 다수안을 통과시키라고 촉구했다.(그러나 지난해 5월 연금행동과 진보당은 이재명 대표의 양보 제안을 비판하고, 국민연금 지급액을 좀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야만 했다.)
그러나 국회 연금특위 다수안도 진정한 개혁안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은 44퍼센트(소득의 9퍼센트에서 13퍼센트로) 올리는 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25퍼센트만 오르는 안이었기 때문이다.
이 단체들도 노동자들이 보험료 인상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데에는 찬성한다. 이들도 경제를 위해 재정이나 연금 기금의 ‘건전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금 기금 안정성을 중시하며 노동자 고통 ‘분담’을 받아들이면 진정한 연금 개혁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자기의 보험료 부담을 대폭 올리라고 투쟁에 나설 노동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정부·여당과 거듭 타협하며 더한층의 개악안을 수용하는 민주당의 행보도 막을 힘도 없게 된다.(연금행동이 2월 6일에 발표한 성명에서도 연금 개악을 제안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명시적인 비판은 없었다.)
게다가 경제가 지지부진해 자본가들이 좀체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주 등 부유층의 세금과 보험료 부담을 높이라고 요구하며 대규모로 싸워야 진정으로 노후 생활 보장을 위한 연금 개혁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