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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영국 군주제 반대 시위 탄압에서 드러난 세계적 국가 탄압 강화 추세

위태로운 경제를 관리하고 저항을 억누르는 국가 권력의 기능이 세계 곳곳에서 강화되고 있다.

위태로운 경제를 관리하고 저항을 억누르는 국가 권력의 기능이 세계 곳곳에서 강화되고 있다. 프랑스 연금 개악 반대 시위대를 막기 위해 배치된 경찰들 ⓒ출처 Photothèque Rouge

5월 6일 영국 국왕 대관식을 앞두고 런던 경찰은 군주제 폐지 시위 조직자들을 체포해 예의 그 멍청함을 드러냈다. 런던 경찰은 오명을 입은 기관이다. 영국 사회의 권력 핵심부에 속한 루이즈 케이시[보수당 정부의 사회복지 담당 관료 — 역자]조차 지난 3월에 낸 보고서에서 런던 경찰을 인종차별과 성차별, 성소수자 혐오, 부패가 체계적으로 만연한 곳으로 평가했다.

여론 조사에서는 군주제가 지지를 잃고 있다는 결과가 한결같이 나온다.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그렇다. 찰스 3세가 재위 기간 중 십중팔구 가장 큰 인기를 누렸을 그 때에[대관식 날 — 역자], 런던 경찰은 시위자들을 선제적으로 체포해 그에게 똥물을 튀겼다. 물론 경찰이 제멋대로 움직인 것은 아니다. 1829년 보수당 정부의 내무장관 로버트 필 준남작이 창설한 이래 런던 경찰은 언제나 중앙 정부의 핵심 억압 기구 구실을 했다.

현 내무장관이자 극우 데마고그[이민 정책에 매우 강경하다 — 역자]인 수엘라 브래버먼은 시위할 권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명했다. 이렇게 탄압이 강화되는 것은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경찰이 휘두르는 야만적인 폭력을 보라. 처음에는 2018~2019년 ‘노란 조끼 운동’이, 그후에는 연금 개악 반대 시위대와 환경 파괴 반대 시위대가 두들겨 맞았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장악한 주의회들이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대응해 시위대를 더 옥죄는 법들을 도입했다. 얼마 전에는 테네시주 의회의 두 아프리카계 의원이 총기 폭력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잃었다. 현재 분위기를 잘 보여 주는 징후다.

미국 상황을 다룬 중요한 연구서인 《저항을 단속하기》(2021)에서 저자 폴 패서번트는 그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의 발전 과정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런 발전에 따라 경찰이 불균형한 무력을 동원하거나 과시하고, 갈수록 고급 군사 장비에 의존하고, 용의자 감시를 위해 통계 모델과 인종차별적 프로파일링을 채택한 과정을 보여 준다.

이런 탄압 수단들은 금융 자본주의와 대량 소비에 필요한 도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고 패서번트는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의 탄압 물결은 패서번트가 묘사한 과정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와 금융의 불안정, 기후 변화, 제국주의적 경쟁 때문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조차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객관적 조건들에 직면하고 있다.

시장이 자기조절 능력을 가졌다는 신자유주의 교리가 도그마에 불과하다는 오랜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국가 권력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다. 위태로운 경제를 관리하고, 파상공세처럼 닥쳐오는 비상사태들로 들끓는 대중의 불만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국가들이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맛보기로 보여 줬다고 나의 신간 《새로운 재난 시대》에서 강조한 바 있다. 팬데믹에 대응해 정부들은 막대한 차입으로 록다운 기간의 소득 붕괴를 막고 이동을 크게 제한했다. 팬데믹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조처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들은 안전 조처와 감염 데이터 추적을 금세 거둬들였다. 이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아마도 우리는 비슷한 조처에 직면할 것임을 뜻한다. 국가들은 또한 억압 능력을 한껏 더 키우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공중 소란”을 일으키는 시위를 겨냥한 새로운 집회·시위법에 이어, “혼란”을 예방할 권한을 경찰에 얹어 주는 공공질서법이 서둘러 의회에서 통과됐다. 지난 대관식 때 경찰이 그토록 대담했던 이유다.

주류 정치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방과 중국·러시아의 지정학적 경쟁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포장하기가 훨씬 어려워지고 있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50년대와 마찬가지로 어느 블록도 내부 불만과 저항을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걸린 판돈은 매우 크다. 현 체제가 새로운 재난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가 낳은 고통과 핵전쟁의 위험 앞에서 우리는 저항할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1980년대 초, 흔히 말하는 ‘신냉전’이 일어나 미국과 소련이 핵 전쟁을 벌일 위험이 어쩌면 어느 때보다도 컸던 적이 있었다.

당시 탁월한 급진적 역사가 에드워드 톰슨은 《반핵의 논리》[일월서각, 1985]라는 책을 발행하고, 핵무기 철폐를 위한 대중 운동을 유럽 전역에서 일으켜 서로 경쟁하는 강대국들을 압박하자고 했다. 바로 이런 것이 지금 필요하다. [그 책의 영어 원제목처럼 — 역자] 저항해서 생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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