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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여전히 먹히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인플레 대책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인플레이션 “해법”이 먹히지 않는다고 실토했다.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덧붙인 것이다.

지난 18개월 동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정책을 지배해 온 쟁점은 급격한 물가 상승을 어떻게 잡느냐였다. 그동안 중앙은행들은 신자유주의 정설에 따른 처방을 엄격하게 실행했다. 금리를 올려서 경기를 둔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처방은 “필립스 곡선”이라는 것으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이 곡선에 따르면 물가와 실업률은 길항 관계다.

이것이 참말이라면 물가 상승률을 낮추려면 실업률을 높여야 한다. 금리가 오르면 더 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일자리를 잃지 않은 노동자도 실질 임금을 지킬 자신이 없어지고, 그 결과 물가 상승이 둔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현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중앙은행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의 의장 제롬 파월은 지난달 이렇게 시인했다. “임금은 물가 상승의 주원인이 아닌 것 같다.”

지난주 연준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 유럽중앙은행은 올렸다. 영국 중앙은행도 다가오는 목요일에 금리를 올릴 공산이 크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언헤지드’ 칼럼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러한 태도 변화에는 자명한 경험적 이유가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절반으로 줄었는데도 실업은 낮게 유지됐다. 필립스 곡선은 ⋯ 최근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 누군가 트위터에서 “들어맞은 적이 있기나 한가요?” 하고 묻자 그 칼럼의 공저자 로버트 암스트롱은 “대체로 말하면, 없습니다” 하고 답했다.

이는 1980년대 이래 지배적이었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위기에 빠져 있음을 보여 주는 징후다. 그 위기의 또 다른 징후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독일 출신의 젊은 경제학자인 이자벨라 베버의 주장이 불러일으킨 관심이다. 그 관심은 대부분 적대적이었다.

일전에 그녀가 물가 상승에 대응하는 더 나은 방법이 제2차세계대전 말에 도입된 물가 통제 같은 조처라고 주장하는 글을 〈가디언〉에 기고했을 때 베버는 “멍청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최근 〈뉴요커〉에 베버의 또 다른 글이 실리자 비난이 다시 봇물 터지듯 나왔다. 베버가 누리는 명성에 대한 시기와 성차별이 명백히 비난의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베버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베버와 에번 와이스너는 “판매자 인플레이션”에 관한 설득력 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특이한 마르크스주의자인 미하우 칼레츠키와, 니컬러스 칼도르 등의 포스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과 경험적 데이터를 근거로 삼았다.

그들의 주장인즉, 대기업들이 지배하는 경제에서는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 대기업들이 집단으로 이윤을 지키고 물가 상승 부담을 떠넘기는 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경제는 팬데믹이 낳은 공급 사슬 병목, 가스·석유 확보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차질을 겪었다. 이런 형태의 차질은 대기업들이 쉽게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게 한다. 공급 부족 사태 때문에 어느 대기업도 가격 인하 경쟁에 쉽게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공무원노조 대기업들은 공급 차질 속에서도 가격을 올려 이윤을 지켰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파업은 물가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출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파업은 물가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물가를 따라잡으려는 절박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베버와 와이스너는 지금의 물가 고공행진이 정점을 찍었다는 징후들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은 경고한다. “우리는 비상사태가 겹겹이 터지는 시기에 살고 있다. 팬데믹은 끝나지 않았고, 기후 변화는 현실이며, 지정학적 긴장이 쌓이고 있다. 앞으로도 여러 쇼크가 찾아올 공산이 크다.”

물론 기후 변화는 “쇼크”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에 가깝다. 폭염이 흉작을 낳고 흉작이 식량 가격을 끌어올리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어떤 경제는 다른 경제보다 취약하다. 영국 국채 금리는 200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융 시장은 영국 중앙은행이 한동안 금리를 계속 올린다는 데에 베팅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 총재 앤드류 베일리는 여전히 필립스 곡선을 신봉한다. 그래서, 지난 2~4월의 전년 대비 평균 임금 인상률이 7.2퍼센트에 이르자 그는 임금을 공격하려 하고 있다.

베일리의 공격[금리 인상]은 내년 경기후퇴 가능성을 키울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 하거나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 납부기간이 끝나 상환조건을 재협상하려는 사람들에게 금리 인상은 매우 안 좋은 소식일 것이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졸루션 재단의 추산에 따르면, 다음 해에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갱신하는 영국 가구들은 한 해 이자 비용이 평균 2900파운드[약 476만 원] 늘어난다. [현 영국 총리] 리시 수낙은 보리스 존슨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보리스 존슨 정부는 영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자금 공급 정책에 기대어 재정 확대 정책을 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세계적인 금리 인상 때문에 리즈 트러스 정부의 야심 찬 재정 확대 계획은 실패했다. 새로 들어선 수낙 정부에게는 인기 없는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 말고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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