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이스라엘 좌파는 해법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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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 퍼거슨이 변화를 향한 희망은 인종 분리 국가인 이스라엘 내부가 아니라 바깥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2021년 6월에 발표됐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리쿠드당의 총리 네타냐후가 야당 연합에 밀려 실각하고 노동당과 “시온주의 좌파”가 새 정부에 합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1년 6개월 후 극우 정당들과 손잡고 재집권에 성공한다.
[ ] 안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부가 넣은 것이다.
얼마 전 이스라엘의 자유주의 언론 〈하아레츠〉에 실린 사설에서 언론인 에탄 네힌은 미국의 유대인 좌파가 “미국 여론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네힌은 그들을 “고고한 이데올로기적 비평가들”이라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어떤 해법에서든 빼 놓고 얘기할 수 없는 집단, 즉 이스라엘 좌파에 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스라엘 좌파가 팔레스타인 문제의 정의로운 해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견해는 비단 〈하아레츠〉 사설에만 나오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견해는 좌파와 노동조합 운동 내에서 더 널리 퍼진 시각을 반영한다. 좌파 일각에서는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적 계급관을 내세우면서 이스라엘 유대인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단결하는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의 위험성은 실제 현실이 아니라 그저 희망 사항을 반영한다는 데 있다.
“단결 인티파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는 지극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네타냐후는 자신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제압하고 국제적으로 고립시켰다고 믿었다.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바레인과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했고, 이집트와의 동맹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공고히 했다. 그래서 네타냐후는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서 정착촌을 확장할 발판이 마련됐다고 믿었다.
그러나 2021년 팔레스타인인들의 고무적인 반란은 네타냐후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전역을 뒤흔들었다. 수십 년에 걸친 이간질·분리·고립 전략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역에 걸친 반란으로 단결했다.
이런 사건들이 이스라엘 지배 체제의 본질과 이를 극복할 잠재력에 관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의 인종 분리 체제
이스라엘 정치와 사회의 성격을 살펴보기 전에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인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관계를 보면 이스라엘 정당들이 표방하는 정책들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2021년 1월 이스라엘의 인권 단체 벳첼렘(B’Tselem)은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유대인 우월주의 지배 체제: 이것은 아파르트헤이트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벳첼렘의 보고서와 더불어 휴먼라이츠워치가 발표한 다른 보고서들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실상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곳은 군용 도로와 검문소, 유대인 정착촌, 분리 장벽으로 갈기갈기 찢겨 있다.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곳은 유대인 정착촌이 계속해서 침범해 들어오고 팔레스타인인의 주택이 철거되거나 압류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거주민 지위를 인정받았지만 이스라엘 국가는 마음대로 이를 박탈할 수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 명목상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비좁은 도시나 마을에 갇혀 지낸다. 또, 수많은 차별적인 법률이 그들을 옥죄고 있다. 주거용 건물은 금지돼 있으며,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주택 철거와 서안지구에서 유입된 유대인 정착자들의 위협에 시달린다.
가자지구에 사는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그중 150만 명은 난민이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지붕 없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그들의 다수가 국제 원조에 의존해 근근이 버티고 있다.
현실을 잘 드러내는 한 충격적인 여론 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82퍼센트가 다음 진술에 ‘그렇다’라고 답했다. “일상 생활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 가족이나 저를 해칠까 봐 걱정합니다.”
2021년의 반란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점령지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내부의 팔레스타인인들까지 가세하며] 이룬 단결의 기초는 그들이 공유하는 경험과 역사, 인종 분리 체제와 정착자 식민 지배에 따라 계속된 강탈이다.
2021년 선거의 교훈
〈하아레츠〉 사설에서 네힌은 이스라엘 노동당과 “시온주의 좌파” 메레츠가 새 연립정부에 합류한 것에서 희망을 본다. 네힌은 이스라엘 “좌파” 정부가 복지 국가를 창출했고, 이스라엘 좌파 운동이 2018년 민족국가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평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조직했다고 강조했다. 네힌은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 정치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갈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자신이 민주적임을 과시할 때 선거를 가장 큰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새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서방 언론의 보도는 정치적 흥정과 정치 지도자들의 반목, 네타냐후에 대한 반감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접근은 정치 상황의 근본적 성격을 간과한다.
이스라엘의 새 연립정부는 세속 ‘좌파’로 분류되는 노동당과 메레츠, 종교적인 극우 정착자 시온주의자들의 당인 야미나에 이르는 다양한 정당으로 구성돼 있다. 노동당과 메레츠는 “두 국가 방안”과 점령 종식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야미나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수립될 가능성을 일절 거부하고, 유대인 정착촌 확장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팔레스타인 땅을 계속 합병하는 것을 지지한다.
주류적 설명은 이들이 네타냐후에 대한 공통된 증오를 바탕으로 동맹을 맺었다는 것이다. 이는 불충분한 설명일뿐더러 설득력도 없다. 새 연립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모두 어떤 직책으로든 네타냐후 정부에서 일한 적이 있다. 새 연립정부의 정책과 네타냐후 정부의 정책 사이에는 실질적 차이가 없으며, 건국 이래 모든 이스라엘 정부는 연립정부였다.
연립정부의 무게 중심은 극우에 있다. 총리인 나프탈리 베네트는 극우 정착자 지도자이자 종교적 시온주의자이며, 2018년 “아랍인들에게 1센티미터도 더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내무부 장관은 또 다른 야미나 인사인 아옐레트 샤케드이며, 그는 한때 팔레스타인인 “순교자들의 어미들”이 “더는 뱀 새끼”를 키워 내지 못하도록 그들의 집을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중도파’ 법무부 장관 기드온 사아르는 정착자들과 영토 병합의 열렬한 지지자다. 또 다른 ‘중도파’인 국방부 장관 베니 간츠는 선거 운동에서 자기가 가자지구를 폭격해 석기시대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자다. 정보부 장관 엘라자르 스턴은 가자지구의 전력을 완전히 차단해야 하고 그러다 “어린아이의 투석기 전원이 꺼지더라도” 개의치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임 재무장관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오랫동안 평화협정에 반대해 왔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서안지구로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연립정부의 설계자 야이드 라피드는 동예루살렘에 대한 통제권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전의 모든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라피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국가를 건설하기보다 우리를 파괴하기를 더 원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두 국가 방안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스라엘 정치 담론에서 “평화”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굴복을 뜻하는 완곡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두 국가 방안” 지지와 가장 밀접하게 결부되는 메레츠는 5퍼센트 미만을 득표해 이스라엘 의회 전체 의석 120석 중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메레츠는 유대인 정착자 친화적인 극우 지도자들에 빌붙어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메레츠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우호적 언사를 하고 정의로운 평화를 목표로 내세우지만, 그 당은 여전히 시온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이 점에서 메레츠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모든 정당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근본적 설립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론
이스라엘 정치 엘리트의 견해는 진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정치는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퍼진, 갈수록 공공연해지는 인종차별적 우익 시온주의적 태도를 반영한다. 2021년 네타냐후가 가자지구 휴전에 합의한 날에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는 이스라엘인 거의 4분의 3이 ‘폭격이 계속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난해의 또 다른 여론 조사에서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62퍼센트가 “아랍인은 무력밖에 모른다”에 동의했다. 2015년 여론 조사에서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67퍼센트가 서안지구의 유대인 불법 정착촌이 이스라엘 영토로 남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이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라는 발상을 완전히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인의 65퍼센트는 ‘[팔레스타인] 점령이 이스라엘의 안보에 기여한다’고 답했다. ‘전혀 기여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11퍼센트에 그쳤다. 이스라엘 유대인의 79퍼센트는 유대인 “우대”(이것은 비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를 지지한다.
이런 우경화는 장기적인 추세의 일부다. 이 추세는 1977년 리쿠드당의 선거 승리와 수정주의적 시온주의의 부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2000년 제2차 인티파다 이후 정착자 운동 내에서 민족주의적 종교적 시온주의가 부상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이스라엘 정치 스펙트럼 전반이 확고하게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1970년대까지 이스라엘 정치를 지배했던 노동당은 현재 120석인 이스라엘 의회에서 겨우 7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좌파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황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됐는지 평가를 제시해야 한다.
식민 정착자 국가
이스라엘 정치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이스라엘 사회와 국가의 물질적 토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엄연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모든 이스라엘 유대인 시민이 팔레스타인인에게서 강탈한 땅 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마을의 폐허 위에 세워진 집과 1948년 나크바 때 쫓겨난 사람들의 집에 살고 있다.
이스라엘 참모 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모셰 다얀은 이렇게 시인했다. “유대인 마을은 아랍인 마을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지도책이 더는 없기 때문에 … 아랍 마을 또한 없는 것이 됐다. 마흘룰이 있던 자리에는 나할랄이, 지브타가 있던 자리에는 키부츠 그바트가, 후네이피스가 있던 자리에는 키부츠 사리드가, 탈 알슈만이 있던 자리에는 크파르 예호슈아가 들어섰다. 이 나라에 아랍인이 거주하지 않았던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는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유대인 국가의 시민권의 기초는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의 돌아올 권리를 부정하는 것과,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을 배척·강탈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민족 자결을 행사할 권리”가 “유대 민족만의 권리”라고 명시한 2018년 민족국가법은 이스라엘 정착자 식민주의의 논리적 표현인 것이다. 나크바는 단지 지나간 역사 속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고 강화되고 있는 수탈 과정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모든 저항은 그것이 시위든, 돌팔매질이든, 로켓을 쏘는 것이든, 인티파다든, 심지어 라마단 기간의 집단 기도든 이스라엘에 위협이다.
정착자 식민의 역사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정착자 유입 물결에 의존해 왔다. 각 물결은 저마다 그 기원과 역사적·정치적 맥락이 다르다. 중동 지역에 유대인 국가의 토대를 놓은 것은 1920년대와 1930년대 유럽 유대인들의 대규모 팔레스타인 이주였다.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대부분 유대인 혐오와 파시즘, 홀로코스트의 공포와 그 여파를 피해 왔다. 미국과 영국 등 주요 강대국들이 유대인 난민에게 문을 걸어 잠근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은 유일한 선택지로 보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는 냉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에 이주한 많은 유대인들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시온주의적 정착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한 배척과 강탈에 기반을 두는 것이었다. 시온주의 프로젝트는 오로지 식민 정착자 국가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노동당식 시온주의는 이스라엘의 형성기에 이스라엘 국가의 세 가지 핵심 기반을 닦았다. 시온주의 준군사조직인 하가나, 시온주의 ‘노동조합’인 히스타드루트, 농업 ‘공동체’와 토지에 정착하기 위한 협동 조합인 키부츠와 모샤브가 그것이다.
하가나는 영국을 도와 1936~1938년 아랍인들의 반란을 진압했고, 나크바 때 팔레스타인인 인종 청소를 주도했으며, 1948년 이스라엘방위군(IDF)의 중심을 이뤘다. 히스타드루트는 아랍 노동력과 아랍 생산물에 대한 이중 보이콧을 조직했고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을 경제에서 배제하는 데서 핵심 구실을 했다. 히스타드루트 건설 회사의 한 중역은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우리 노동조합인 히스타드루트에 아랍인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과수원을 지키며 아랍 노동자가 일자리를 얻지 못하도록 했고 … 아랍인이 재배한 토마토에 등유를 부었고 … 아랍 시장에 온 유대인 주부들을 공격하고 그들이 산, 아랍인이 생산한 계란을 부숴 버렸다.”
키부츠와 모샤브는 젊은 시온주의자들을 동원해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하고 미래 국가의 영토로 옹호할 기초를 놓도록 했다. 대부분의 유대인 이민자들은 도시에서 살다 오고 많은 경우 나이 든 유럽 출신이어서 농업 노동에 동원하거나 군사화된 전초 기지에 투입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현실에서 사실관계 세우기”이다. 이 용어는 점령과 인종 청소라는 이스라엘의 필수 전략을 가리키고, 키부츠 시절부터 오늘날 서안지구의 불법 정착촌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1948년 당시 키부츠 인구는 이스라엘 유대인 인구의 7퍼센트에 불과했지만 그 구성원들은 하가나 수뇌부와 초기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중추 구실을 했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키부츠가 없었다면 “현 이스라엘 국가가 어떻게 존립하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히스타드루트는 한때 “시온주의 운동의 집행부”라고 불렸으며 최초의 시온주의 정착촌들인 이슈브의 중앙 조직 구실을 했다. 히스타드루트는 이민자를 흡수해 농업에 정착시키고, 방위를 조직하고, 새로운 생산 분야를 개척하는 일을 담당했다. 1948년 이후 경제의 80퍼센트가 히스타드루트의 소유였다.
이러한 정착자 식민 프로젝트의 핵심 기구들이 노동당식 시오니즘의 세 기둥이었다. 이 “사회주의적 시온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이전과 직후에 이주해 온 정착자들 사이의 주요 정치 경향 중 하나를 반영했다. 그러나 일단 팔레스타인에 이식되자, 팔레스타인 강탈을 추진하는 데서 핵심 구실을 한 것도 이들, 바로 노동당식 시온주의자들이었다.
노동당식 시온주의가 유럽에서 온 유대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영향력 있는 정치 조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노동당식 시온주의는 정착자 식민주의를 확립하고 새 국가의 군사 기구와 경제 기구를 형성하는 데서 독특한 이념적, 조직적 응집력을 제공했다.
노동당식 시온주의는 경제 발전의 필요에도 부합했다. 히스타드루트와 ‘유대인 민족 기금’은 국가가 산업, 토지, 재산, 노동 분배를 통제하는 수단이 됐다. 노동당식 시온주의는 정착자 식민주의에 물질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모두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정착자 식민주의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키부츠 인구는 전체 인구의 1.5퍼센트를 차지한다. 오늘날 이스라엘방위군(IDF)은 나프탈리 베넷과 같은 민족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시온주의자들이 대체로 우세하다. 히스타드루트를 시온주의의 “집행부”라고 부를 만한 시기는 오래전에 지났다.
유럽에서 유대인이 대거 이주해 온 후 최초의 대규모 이주 물결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온 “미즈라힘”계, 또는 세파르딤계 유대인들의 유입이었다. 2005년에 이스라엘 유대인의 61퍼센트가 전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미즈라힘-세파르딤 혈통이었다. 미즈라힘계 유대인들은 아슈케나짐계 유대인[유럽, 특히 동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들 — 역자] 엘리트에게 경멸의 대상이 됐고, 미즈라힘계의 아랍 문화와 아랍 정체성은 대부분 말살됐다. 미즈라힘-세파르딤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오자마자 수용소에 갇혀 지냈고 — 길게는 수년 동안 갇혀 지냈다 — 그 후에는 가장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하고 가장 열악한 주거 시설에 살았다. 그 결과 많은 수가 아슈케나짐계 노동당식 시오니즘에 깊은 분노를 갖게 됐다.
미즈라힘-세파르딤계의 뿌리는 제2차세계대전 이전에 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많은 수는 하레디파 유대교를 받아들였다. 이스라엘 정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초(超)보수주의 정당 샤스당은 더 가난한 미즈라힘계 유대인들에게 복지와 지역 사회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지지 기반을 다졌다.
이후의 유대인 이주 물결은 규모가 더 작았지만 여전히 중요했다. 1950년대 이후 소련 블록에서 온 정착자들, 1980년대의 에티오피아 유대인들, 그 외에 미국·호주·유럽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가장 큰 물결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유입이었다.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압도 다수가 세속적이었고, 많게는 3분의 1이 비유대인 가족과 함께 왔으며 종교 당국에 의해 혈통이 문제시됐다.
새 연립정부의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초(超)민족주의자 아비그도르 리버만은 몰도바 출신이고, 소련 출신 이민자들을 결집한 이스라엘 베이테이누[‘이스라엘은 우리 집’이라는 뜻이다 — 역자]를 창당했다. 그 당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양보”에 일절 반대하고, 유대교로 개종하는 데서 종교 당국이 가하는 제약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고, 예시바[유대교 교육 기관 — 역자] 학생에 대한 병역 의무 면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각각의 정착자 집단은 이스라엘이라는 식민 정착자 사회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상충하는 주장들을 내놓았다. 그 결과 다양한 정당들이 생겨나고 각 정당은 특정한 이익을 관철시켜 양보와 특권을 얻어 내려고 애썼다. 이것은 그저 정치적 기회주의가 아니라 식민 정착자 사회인 이스라엘 사회의 구조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스라엘 내 유대교의 차별화된 특징도 정착자 식민주의라는 틀 속에서 나타났다. 나프탈리 베네트와 야미나당의 민족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시온주의는 유대인 정착자 운동의 동원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정통파와 초정통파 전통도 때때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많은 경우 국가의 이익을 반영하고 갈수록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하레디파는 유대교 경전인 토라를 공부하는 예시바 학생들에 대한 병역 의무 면제를 고집해 세속적 정당들과 자주 날카롭게 충돌한다. 이스라엘 유대인 인구의 약 40퍼센트가 세속적이지만, 유대인 부부가 부부로 공식 인정받으려면 정통파 랍비가 주관하는 결혼을 해야 한다. 세속 대 종교의 대립은 상당한 긴장을 낳지만, 이스라엘 사회가 유대교와 긴밀하게 얽힌 상황은 이스라엘이 유대인들의 태곳적 고향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공개적으로 정통파의 “특권”을 비판하는 것은 그런 주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노동당식 시온주의는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세속적인 운동이었지만, 성서적 주장과 유대교적 정체성에 기대어 지지를 얻으려 했다. 이스라엘의 어떤 정부도 초정통파의 주장을 거스르려는 시도를 진지하게 감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정치적·종교적 갈등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의 국가를 세울 권리, 쫓겨난 땅으로 돌아올 권리에 대한 공통의 적개심 앞에서 전적으로 부차화 된다. 이런 적개심이야 말로 모든 차이와 분열을 넘어서 이스라엘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해주는 힘이다.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견이 있다면 주로 그것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게 서안지구 일부를 단속하는 일을 맡기는 전략을 채택할 것인지, 아니면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직접 지배할 것인지를 둘러싼 것이다. 이 방면에서도 이스라엘의 모든 진영은 각자가 내세우는 말과 달리 두 전략을 혼합한 전략을 편다. 어떤 정당도 유대인 불법 정착촌의 해체나 팔레스타인인들의 돌아올 권리를 옹호하지 않는다.
물론, 매우 용감하고 원칙 있는 개별 이스라엘인과 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점령 반대 운동을 벌이고, 팔레스타인인 주택 철거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과수원을 지키고, 토지 강탈에 항의한다. 비판적인 이스라엘 예비군 단체인 ‘침묵을 깨다’와 벳첼렘과 같은 원칙 있는 인권 단체도 있다. 이 활동가들은 개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이스라엘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활동가들은 정착자 식민주의의 구조에 도전하거나 이스라엘 유대인들 사이에서 운동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비중이나 사회적 기반이 없다.(그것이 그 활동가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말이다.)
피스나우 운동은 이미 1990년대를 거치며 쇠퇴했고, 제2차 인티파다 이후 영향력을 모두 잃었다. 민족국가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는 했으나, 1982년 레바논 전쟁에 맞서 피스나우가 동원한 수십만 명 규모의 시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상당한 규모의 파업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해 사회복지사들과 간호사들의 파업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이런 파업들은 팔레스타인인의 권리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고, ‘무기가 아닌 복지에 지출하라’처럼 영국에서는 흔히 나오는 종류의 요구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시온주의에 반대하는 개별 이스라엘인들 — 그중 일부는 혁명가이기도 하다 — 은 도덕적·정치적으로 원칙 있는 태도를 취하며 시온주의 프로젝트와 결별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종종 지적하듯이, 그들은 법칙의 존재를 입증하는 예외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저항에 나서면 언제나 이스라엘 국가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1차 인티파다 당시, 무장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어린이 시위대의 뼈를 부러뜨리고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을 불구로 만들라고 이스라엘 군대에 명령한 자는 바로 노동당 소속 국방부 장관 이츠하크 라빈이었다. 바로 그 라빈이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피스메이커”로 칭송받았다. 2000년에 제2차 인티파다가 분출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에 동의할 것처럼 굴었던 것이 사기임이 폭로되자,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걸쳐 인종차별적이고 우익적인 반동이 일었다. 정착자 친화적인 정당들과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양보에 일체 반대하는 정당들이 그때부터 줄곧 세를 키웠다. 2018년에 실시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겨우 18퍼센트가 “평화”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답했다.
이는 이스라엘 국가의 근본적 성격이 식민 정착자 국가임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누가 대신 억눌러 주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우익 시온주의의 입장은 일탈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통제에서 벗어난 채 이스라엘 국경을 마주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나란히 존재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수립은 오슬로 평화 협상에서 논의된 적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노동당식 시온주의와 이스라엘 ‘좌파’의 쇠락은 이스라엘이 식민 정착자 국가로서 발전해 온 과정의 정치적 표현이다. 그 과정은 노동당식 시온주의를 벗어난 지 오래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정착자 식민주의적 성격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시적으로 예속시키고, 이스라엘의 유대인들도 자신들이 적들에게 포위돼 있다는 정착자 식민주의적 세계관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인종 분리 체제와 정착자 식민주의 구조를 해체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돌아올 권리를 인정해야만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단일 국가에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시온주의 국가의 해체는 정착자 식민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에 공조하는 ‘좌파’들에 의해 성취될 수 없음은 물론, 이스라엘 내부로부터도 성취될 수 없다. 이 사슬을 끊을 주체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중동 대중과 국제적 연대 운동이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강탈을 유지하는 데에 물질적 이해관계가 없는 미국과 그 외 지역의 유대인 좌파들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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