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국제사법재판소 (ICJ) 의 결정은 이스라엘과 서방의 이데올로기적 패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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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뉴레프트 리뷰》에는 그 간행물의 가장 중요한 필자인 페리 앤더슨이 쓴 매우 시의적절한 글이 실렸다. 그 글은 국제법이 그것의 역사 내내 서방 제국주의의 도구였다고 비판했다.
앤더슨은 19세기의 법철학자 존 오스틴을 우호적으로 인용한다. 오스틴은 “모든 법은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라 오스틴은 이렇게 주장했다. “국가들의 법
다시 말해, 국가가 만든 법은 그 국가가 그 법을 집행하고 위반자를 처벌할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명령”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국가들의 법”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국제 정부는 없으므로 “국제법은 의견이며 ⋯ 오늘날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국제법은 패권국
그래서 앤더슨은 이렇게 꼬집는다. “체제를 지배하는 자유주의적 열강이 벌이는 전쟁은 국제법을 수호하는 이타적인 치안 활동이 되는 반면, 그 외의 세력이 벌이는 전쟁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범죄 행위가 된다.”
지난주 이런 일반적인 패턴을 벗어나는 일이 벌어졌다.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이 결정에서도 오스틴과 앤더슨이 지적한 두 측면을 볼 수 있다. 즉, 누가 그것을 집행할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고, “특정할 수도” 없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에 휴전을 명령해 달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청에는 당연히 응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이를 무시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미국과 다른 주요 서방 강대국들은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을 사실상 거부했다. 일제히 그 국가들은 주의를 딴 데로 돌릴 책략을 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물자를 지원하는 유엔 기구인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
그럼에도 지난주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이 “의견” 수준에서 갖는 중요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결정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방 제국주의가 겪은 더할 나위 없이 큰 이데올로기적 패배다. 인종 학살을 연구하는 이스라엘인 학자 라즈 세갈은
“인종 학살 개념은 국제법 체계에서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의 예외적 지위를 보호하는 구실을 해 왔다. ⋯ 이번 결정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인종 학살로 볼 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인정됐다. 그에 따라 전 세계 모든 대학과 기업, 국가들은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 기관들과 관계를 맺을 때 매우 신중해야 하게 됐다. 이제부터는 그런 관계가 인종 학살에 대한 공모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이스라엘의 존재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위권 행사라는 명분으로 자행해 온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이스라엘과 그 동맹자들의 오랜 노력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소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스라엘군이 워낙 뻔뻔하게 가자지구에서 참극을 벌이고 이스라엘 장관들과 군인들이 워낙 노골적으로 인종 학살 의도를 드러낸 탓인 듯하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특히 개발도상국·빈국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청에 응하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하다. 국제법이 이데올로기로서 제구실을 하려면 최소한의 일관성은 유지해야 하는 법이다.
네타냐후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이스라엘 극우는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할 계획을 토론하는 지난 주말 행사에 참가해 자신들의 인종 학살 의도를 다시금 분명히 했다. 오직 전 세계적 투쟁만이 그들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런데 그 투쟁은 지난주 헤이그에서 자극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