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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플레이션’이 친환경 정책 후퇴의 명분이 돼선 안 된다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 정책으로 인해 물가가 오른다는 뜻의 용어이다.

탈탄소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석유 등 탄소 배출 원자재에 대한 규제가 증가해 공급이 감소하고,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관련 산업에 필요한 구리, 알루미늄 등의 수요가 증대하며 원자재 가격이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탄소세, 탄소국경세 등과 같은 세금 증대도 물가 인상의 요인일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흔히 기업 이윤을 우선하며 급격한 탄소 감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린플레이션을 과장하며 친환경 정책을 후퇴시켜야 하는 명분으로 삼는다. 또 핵발전처럼 환경에 재앙을 낳을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가 그러고 있듯이 말이다.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심각한 재앙을 키우는 것이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환경 규제를 후퇴시켰다. 핵발전 공장을 시찰 중인 윤석열 ⓒ출처 대통령실

그럼에도 실제로 지난 몇 년간 벌어진 각국 정부들의 ‘탈탄소 정책’은 (기후 재앙을 막는 데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세계적 물가 상승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재난의 시대 21세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2020~2022년의 물가 급등은 대체로 두 요인 때문이었다. 첫째는 팬데믹의 지속에 따른 노동시장과 공급 사슬의 교란인데, 봉쇄 조치로 소비 수요가 서비스에서 재화로 옮겨 간 것은 이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둘째 요인은 에너지 가격의 상승인데 (1) 그 원인은 각국 정부가 처음으로 ‘녹색 전환’을 향해 미미한 발걸음을 내딛고 석탄과 석유에 대한 의존을 탈피하도록 장려하면서 천연가스 공급 경쟁이 심화한 것이다. (2) 그리고 푸틴 정권이 에너지 공급자라는 러시아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한 것이 에너지 가격 상승을 격화시켰다.”

천연가스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었던 2019년에 비해 2022년에 거의 4배로 치솟았다. 천연가스는 여전히 상당량의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를 배출함에도 ‘그린 에너지’라고 규정한 각국 정부들의 과장으로 수요가 커진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며 천연가스 수급에 차질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세계적인 난방비 위기를 불렀고, 평범한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2022년에는 석유 가격도 팬데믹 전에 비해 두 배가량으로 올랐다. 팬데믹 초반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가 회복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공급 차질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이 겹쳤기 때문이다.

후퇴

물가가 상승하자 각국 정부들은 약속했던 화석연료 규제 조처들을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대표적이다. 바이든은 기후 위기 대처를 내세우던 말과 다르게 에너지 가격을 낮춰야 한다며 미국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크게 늘렸다. 환경 파괴로 악명 높은 셰일 석유·가스를 포함해서 말이다.

바이든이 에너지 가격 하락을 이토록 중시하는 이유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물가 인상으로 불만이 높은 민심을 달래야 한다는 국내 정치적 필요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경합하고 있는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다. 러시아는 재정 수입의 많은 부분을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을 떨어트리면 러시아에 타격을 가할 수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조처조차 부족하다며 당선하면 파리 기후협약에서 다시 탈퇴하고 셰일 석유·가스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유전 개발과 함께 석탄 채굴을 늘리고 있다.

이처럼 천연가스와 석유 등의 공급은 증가한 반면, 세계적으로 경기는 둔화해 최근 천연가스 가격은 팬데믹 이전보다 떨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향후에도 탄소 감축 정책이 물가 인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다.

예를 들어 태양광, 풍력이나 신재생에너지 설비, 배터리 생산을 위해 필요한 금속 등의 자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분야는 국제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이고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하다.

중요성이 커지는 자원을 국제적 패권 경쟁의 무기로 활용하는 자원 민족주의가 성장하면 사태가 더 크게 발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몇 년 전 중국이 요소 수출을 중단해 한국에서 요소수 대란이 벌어졌듯이 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와 국가 간 패권 경쟁이 기후 위기 대응을 후퇴시켜 기후 재앙을 키울 뿐 아니라 물가 인상을 초래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고통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친환경 정책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진정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서, 또 그 과정에서 물가 상승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통이 떠넘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시장의 이윤 논리와 국가 간 패권 경쟁에 기반한 사회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계획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후 재앙을 막고, 물가 인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취하라고 요구하는 운동이 커져야 한다.

한편, 진보 진영 일각에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탄소 배출 상품들의 물가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절약하며 감내해야 한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2022년에 유가 인상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클 때 정의당, 진보당은 유류세 인하 정책에 반대했던 바 있다.

선한 의도에서 나온 주장이지만, 그럼에도 이는 체제의 피해자들인 대중의 고통을 외면해 기후 운동의 대중적 지지 기반을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기후 재앙을 낳고 평범한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체제에 맞서려면 노동계급 등의 대중적 투쟁을 키워 가야 한다. 물가 인상에 반대하는 투쟁을 고무하며 그런 투쟁이 기후 위기에도 맞서게 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