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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군사 동맹 때문에 한미일의 아시아판 나토 결성을 지지하지 말라

6월 19일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으로 양국은 상대방이 다른 국가에게 침공당하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김정은은 북한과 러시아가 “동맹 관계”라고 선언했다.

북-러 조약 체결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제국주의간 쟁투가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를 악화시키고 있음을 보여 준 사건이다.

6월 19일 평양에서 만난 푸틴과 김정은. 이들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며 유착을 강화했다 ⓒ출처 kremlin.ru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밀접해져 왔다. 북한은 러시아의 전쟁을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덕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선에 필요한 무기를 북한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도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제공했다. 그래서 남·북한 무기들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대결하는 꼴이 됐다.

러시아는 북한과 손잡아 동북아시아 지역에 관여할 여지를 키우고, 한·미·일 협력 등 미국의 동맹 강화를 견제할 필요를 느낀 듯하다. 콘스탄틴 아스몰로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선임연구원은 한·미·일 삼각 협력이 아시아판 나토로 변모되고 있어 러시아가 북한과의 협력을 그 대응책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타스 통신〉 6월 18일 자)

6월 20일 푸틴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에서] 블록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 나토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를 포함한 모든 역내 국가들에 분명 위협이다. 우리는 이에 대응해야 하고, 그리할 것이다.”

푸틴의 이번 순방 일정을 봐도 그의 의도가 보인다. 푸틴은 북한에 이어 베트남도 방문해 관계 강화를 꾀했다. 베트남은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지역 내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고 공들여 온 국가다.

최근 미국은 우크라이나, 인도-태평양, 중동(팔레스타인)에서 동시다발적인 위기에 직면해 공세에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북한·러시아의 동맹과 같은 반작용들을 낳고 있는 것이다.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세계 체제에 양극화 압력을 가해 왔다. 한반도도 이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최근 전황이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자신들이 제공한 무기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푸틴은 이렇게 위협했다. “내가 이미 말해 왔듯이, 우리도 우리 무기를 세계 다른 지역에 공급할 권리가 있다. 나는 북한과의 조약에서도 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정학 체스 게임 속에서 러시아가 서방을 향해 내민 한 수다.


김정은, 어제는 트럼프와, 오늘은 푸틴과

김정은은 미국·중국·러시아 등의 제국주의적 상호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을 보며 대외 정책의 방향을 바꿔 왔다. 앞서 북한은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에 (헛되이) 기대를 걸었고, 김정은은 (메스껍게도) 트럼프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며 구애했다.

그러나 이 외교적 시도에서 낭패를 본 후 김정은은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 정권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북한의 무기 제공에 화답해 러시아는 경제·문화 등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다방면으로 늘려 왔다. 또한 지난 3월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는 유엔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에 반대해, 국제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해 온 해당 기구가 문을 닫게 했다.

이번에 러시아와 북한은 경제 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고, 러시아는 자국이 주도하는 “국제 및 지역 기구”에 북한이 가입하는 것에 협조하겠다고도 했다. 북한이 브릭스(BRICS)나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기구에 가입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이제 북한의 처지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주도의 봉쇄로 일방적으로 고립됐던 때와 다르다. 무엇보다 핵무기 전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6월 16일에 낸 보고서에서 북한이 핵탄두 50기를 보유하고 있고 그 수를 90기까지 늘릴 수 있는 핵분열 물질을 갖고 있다고 추산했다. 그리고 이제 북한은 제국주의적 갈등의 한 축(러시아)에 적극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도 제국주의적 갈등의 한 축이다

국내 좌파 일각에서는 북한과 러시아의 이런 유착을 “반제·자주의 새로운 이정표”라며 반긴다. 그러나 푸틴을 제국주의와 신식민주의에 맞선 기수로 찬양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체첸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다진 소수민족 억압자이다.

비록 미국과의 경제적 격차는 크지만 러시아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다. 푸틴은 에너지 수출에서 나온 수익으로 러시아의 군사 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조지아·우크라이나 등 자국 주변에서 서방 제국주의를 밀어내고 패권을 재천명하려고 전쟁을 벌여 왔다. 나아가 중동·아프리카 개입도 강화해 시리아에서 수많은 자국민을 살해한 독재 정권을 비호하고,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서방과 경쟁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러시아의 이런 지정학적 진출에는 진보적인 성격이 없다. 동북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미국에 맞서 기성 국제 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하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시리아 난민들의 사례처럼 수많은 민중의 고통과 죽음이 따르더라도 러시아 지배자들은 미국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이 러시아와 손잡는 것을 “자주 외교”라고 포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고 거기에 무기를 대는 게 “반제”와 “자주”에 어울리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미·일 동맹뿐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도 또 다른 제국주의적 군사 동맹일 뿐이다. 이는 어떤 진보적 구실을 하기는커녕 동북아시아 정세도 더 불안정하게 할 것이다.

지금 제국주의간 쟁투 격화를 배경으로 남북 두 정권이 상대방을 향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각자 경쟁하는 제국주의 열강 중 한쪽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로 예기치 못한 위험이 우리 앞에 닥칠 공산도 커지고 있다.

6월 25일에 대폭 증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