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김영화 지음):
“우리 이제 식구네요” 아프가니스탄인 난민 울산 정착 1년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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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해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하자, 한국 정부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인 390여 명을 구출해 한국으로 데려왔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파병한 군부대, 한국 대사관, 한국이 운영한 병원 등에서 근무했던 사람들과 그 가족이다.
그중 정부의 알선으로 현대중공업 하청업체에 취업한 이들과 그 가족 157명이 이듬해 2월 울산에 정착해 큰 화제가 됐다.
신간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김영화 지음)는 울산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인 난민들의 1년을 다룬 책이다. 저자는 시사주간지 〈시사IN〉 기자로, 공항 난민 루렌도 가족의 사연을 심도 있게 취재하는 등 이주민·난민에 대한 기사를 꾸준히 써 왔다.
처음에는 무슬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일부 주민들이 아프가니스탄인 난민의 정착에 반대했다. 그러자 난민 환영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도 있었다. 울산 지역 단체 53개가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고, 노동자연대 울산지회와 현대중공업모임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일하는 공장 안팎에 환영 현수막을 걸었다.
저자는 학교·교육청·현대중공업·다문화가족지원센터·작은도서관 등에서 아프가니스탄인 지원에 나섰던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인과 주민들이 점차 교류를 넓혀 가며 편견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대박 반전”
학교 관계자들의 부단한 노력 끝에 한국인-아프가니스탄인 학생 어머니들의 만남 자리가 마련된다. 그 자리에서 난민인 사지아 씨는 직접 장만한 아프가니스탄 음식을 나누며, 느리지만 또렷한 한국어로 준비해 간 얘기를 했다.
“이슬람은 여자와 남자가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할 수 있다고 말해요. … 우리는 탈레반이 아닙니다. … 제 딸 파르니안은 한국 덕분에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그 결과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모두가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직접 만나니 풀리는 오해도 있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보다는 서로 대안을 찾아보자는 데 뜻이 모였다.”
주민 김혜진 씨는 처음에 아프가니스탄인 정착에 반대했다. 그러나 다문화센터에서 일하는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프가니스탄인 가정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특히 파힘 씨의 막내가 꽤 장난꾸러기였는데 혜진 씨 첫째 딸을 ‘나연, 나연!’ 하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고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혜진 씨는 일대일 한국어 멘토링 수업에 참여하면서 보람을 얻기도 한다.
“이것만으로도 아프간 어머니들이 덜 고립될 것이다. … 스승의 날에는 감사 문자도 받았다. … 자기 존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의 만족감을 새삼 깨닫고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것도 편견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프간 여학생은 ‘여성스러운’ 활동만 할 줄 알았던 다온이에게는 주할이 체육 수행평가 타격 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사실이 ‘대박 반전’이었다. 예상외로 주할은 축구와 야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다온이는 할랄 급식이 제공되지 않아 밥과 김치만 먹는 주할에게 집에서 김을 챙겨 주며 친구가 됐다.
다온이의 어머니 이송희 씨는 히잡 착용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서슴없이 친해진 아이들을 보며 … 안타까워하는 시선도, 그저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잠시 접어 두었다. 이게 맞으니 이렇게 하라고 강요할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아프가니스탄인들도 변했다. “1년 전만 해도 집 밖에 나오지 않던 어머니들이 요즘엔 운전면허를 따거나 경제활동을 하고 싶어 할 정도로 바뀌었다.”
이처럼 문화적 차이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문제를 둘러싼 상호 협상과 타협, 고민들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인 난민들이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인적·물적 지원이 뒷받침된 덕분이기도 했다. “한국어 교사부터 장애인 돌봄교사, 여건 개선 교사, 통역사 등 지원 인력만 90명에 이르렀다. 울산시교육청 예산으로 25억 7600만 원이 쓰였고, 나중에 교육부가 특별교부금 18억 7000만 원을 지원했다.”
다른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도 이런 지원 확대의 ‘덕’을 봤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교조 해직 교사 출신인 고(故)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역할이 컸다. 노 교육감이 첫 등굣길에 직접 아프가니스탄인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행하는 모습은 전국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표’를 잃는 빌미가 될지도 모를 첨예한 갈등 앞에 선 정치인이 무슬림 난민 편에서 환대를 보여 준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원 확대
사실 난민에게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는 일은 예외적이다. 정부가 ‘인권 선진국’이라는 선전에 이용하려고 소수의 난민만 수용·지원하고 대다수 난민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울산의 경험을 통해 그런 지원이 확대돼야 함을 보여 준다.
이런 변화에도 아프가니스탄인 난민들의 삶이 여전히 녹록지 않다는 점도 책에 담겼다. “아프간 아버지들은 조금씩 지쳐 갔다. 조선소의 고강도 노동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다. … 월급은 170~250만 원 정도인데 … 한국에서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엔 늘 부족한 돈이다.” 이 때문에 인천이나 수원 등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사하는 가족도 생겼다.
현대중공업 사측이 노동력 부족 때문에 이들을 채용하고 울산 정착을 지원했지만(지원을 맡은 직원들은 난민들을 진심으로 대했다), 동시에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착취했음을 보여 준다.
아프가니스탄은 일부다처제가 인정되는 나라인데, 한국 정부가 배우자 한 명과 미성년 자녀만 데려올 수 있도록 해 생이별을 당한 가족들도 있다. 그러나 여권이 없어 여러 나라로 흩어진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도, 본국에 남은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도 없다. 또, “울산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왜 한국 ‘시민권’(국적)이 나오지 않는지” 답답해 한다.
정부는 저출생 문제와 노동력 부족에 대응해 이주민 유입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이미 많은 이주민이 정착해 한국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지역도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인 난민의 울산 정착 사례처럼 단시간에 이주민이 늘어나는 지역도 종종 생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더욱 읽어 볼 가치가 있다. 이주민·난민과 연대하려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