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 세대론의 정치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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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삶이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청년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청년에 대한 얘기가 쏟아진다. 특히 선거철에는 청년 표를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2021년 이후 청년층이 선거의 캐스팅보트가 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따른 실망과 환멸 속에서 무당층 청년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선거 때마다 청년을 꺼내 들었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 시절 MZ세대 표를 얻겠다며 ‘민지(MZ)야 부탁해’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그 영상에서 윤석열은 볼썽사나운 연기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MZ 세대가 이런 거 때문에 힘들다는데 이거 우리가 좀 나서야 되는 거 아니야? 채용 공고 나는 곳이 이렇게 없어서 어떡하나? 결혼하고 싶어도 살 곳이 없다는데 애 낳고 싶어도 이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거야. 야, 민지가 해달라는데 한번 좀 해보자!”
말 그대로 연기였다.
총선을 앞둔 3월에 윤석열은 청년 지원 대책을 55개나 발표했다.
극심한 청년 실업, 고립·은둔 청년의 증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청년 자살률 등 청년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유연 노동 확대 방안도 있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윤석열의 청년 운운은 단지 선거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윤석열이 열을 내며 청년을 소환한 때는 주로 노동자 운동을 공격할 때였다.
지난해 건설노조 탄압 국면에서 윤석열은 이렇게 말했다. “노조 기득권은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하는 약탈 행위다.”
노동조합 회계 공시를 압박하면서는 이렇게 말했다. “기득권 강성 노조의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 “MZ세대가 공정과 투명과 이런 것들을 강력히 강조하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 하청 노조, 화물연대 등이 싸울 때도 윤석열은 민주노총을 비난하면서 ‘MZ노조’에 추파를 던졌다. 그러나 69시간 노동제 도입을 강행하려다가 MZ노조로부터도 반발을 샀다.
윤석열 정부가 ‘MZ 노동자’와 ‘노조 기득권’을 대립시킨 것은 노동계급을 이간질시켜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고립시키려는 이데올로기 공격이었다.
MZ 신화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한국의 세대론을 면밀하게 연구한 자신의 책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세대론의 정치적 맥락, 즉 누가 왜 세대론을 얘기하는지 봐야 함을 강조했다.
신진욱 교수의 연구는 불평등의 원인을 계급 착취 시스템이 아니라 계층 세습으로 본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는 차이가 있지만, 세대 간 불평등론의 약점을 파악하는 데서 유용한 통찰을 보여 줬다.
신진욱 교수는 MZ세대론이 등장한 정치적 맥락을 이렇게 설명했다.
“‘20+30’ ‘M+Z’라는 이 묶음은 2021년 4월 보궐선거[서울시장·부산시장이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감 - 인용자]의 유권자 표심에 대한 세대론적 독해 또는 오독에서 생겨난 결과일 뿐이다.
“그 이전까지는 1980년대생부터 1990년대생까지 20년에 걸친 연령대 인구가 삶의 상황과 경험, 인식, 가치 등 어떤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 집단이라는 인식이 전혀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높은 여권 지지율을 유지한 30대와 40대 유권자 중에서 30대가 2021년 상반기의 전반적인 여권 지지율 하락 추세 속에서 40대보다 더 많이 이탈하자 ‘3040’에서 떼어내어 ‘2030’으로 묶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MZ세대론이 기업과 문화 분야로 확산됐다는 것이 신진욱 교수의 설명이다.
MZ세대론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 진보 진영 일각에서 청년들이 보수화했다는 아전인수식 분석이 나온 것이 우연은 아닌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우파가 1980년대 운동권 출신 민주당 정치인들의 위선을 공격하며 ‘586세대론’을 들먹였다.
이를 이어받아 윤석열과 한동훈이 지난 총선에서 ‘586 운동권 청산론’을 내세웠다.
이렇듯 세대론은 권력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용될 수 있다.
물론 세대라는 개념이 그저 허상인 것만은 아니다. 공통의 시대적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가 존재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IMF 경제 공황, 한국전쟁, 광주항쟁과 반독재 투쟁,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 등 강렬한 역사적·정치적 경험을 공유한 세대의 특징을 따져 보는 것은 당대의 시대상을 파악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세대론은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어 있고 같은 세대라고 해도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흐린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여러 차이점들과 이질성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계급적·정치적 분화가 일어난다. 청년들의 경우 중장년 세대보다 그 변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세대론은 청년 노동자들과 기성세대 노동자들을 이간질해 노동계급의 단결을 깨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윤석열이 청년과 노동조합을 이간질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청년과 기성세대 노동자의 이해관계는 대립되지 않는다. 예컨대 청년 실업이 심각한 이유는 기성세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독차지해서가 아니라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업주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고 기존 인력을 쥐어짜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물가가 치솟은 상황에서 임금 인상은 청년과 기성세대 노동자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기업주들이 가져갈 몫을 줄이지 않으려고 세대간 몫 경쟁을 시키는 것이다.
취업난과 고용 불안 심화로 고통받는 청년들과 인력 부족으로 과로에 시달리는 기성세대 노동자 모두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착취당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해 저항할 객관적 이해관계가 있다. 노동자들이 임금 등 노동조건을 지킬 힘을 발휘하려면 권력자들의 이간질에 맞서 세대, 성별, 인종, 국적을 가로질러 단결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청년 세대가 부각된 맥락을 짚는 신진욱 교수의 설명은 시사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 간의 격차 등 임금근로자 내의 분열 이슈가 부각되고, 나아가 이것이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세대갈등 문제로 전치되어 담론화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담론은 박근혜 정부가 2014년부터 추진한 이른바 ‘노동개혁’의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이후 한국사회 청년담론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세대갈등 문제로 담론화하여 정부정책에 대한 청년들의 지지를 동원하려는 시도가 이 시기부터 본격화된 것이다.”
청년이 정치적 주체로 주목받았던 때
청년들이 그저 권력자들의 책략에 이용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년들이 사회 변화의 당당한 주역으로 활약한 때도 많았다.
신진욱 교수는 한국에서 청년 담론이 폭증한 또 다른 시기로 무상급식 운동과 반값등록금 운동이 벌어진 2011년을 제시했다.
“2011년에 청년 담론의 급증은 보다 장기적으로 청년층의 고용, 교육, 복지, 그리고 미래에 관한 사회적 관심과 운동이 고조되고 있던 맥락과 직결[된다.]”
실제로 2011년은 희망의 해였다.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투쟁이 승리했고, 무상급식 운동이 승리해 오세훈이 서울시장에서 물러났다. 연말에는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운동이 승리했다.
그해 한국의 운동들은 국제적 저항 물결의 일부였다.
미국·그리스·스페인에서는 광장 점거 운동이 분출했다.
특히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2011년 1~2월 이집트에서 절정에 오른 뒤 다른 중동 나라들로 확산된 아랍 혁명이 그해 국제 저항의 최고봉이었다.
2010년대 초반 세계적 저항의 주요 배경 중 하나는 청년층의 실업과 빈곤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청년·학생이 캠퍼스와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을까?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계기로 분출한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의 라파흐 공세를 앞두고 미국 심장부에서 폭발한 대학생들의 캠퍼스 점거는 세계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내외국인 학생들이 캠퍼스와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건설하고 있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소수의 단호한 행동들은 2010년대 초반 국제적 반란 물결이 못다 이뤄낸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