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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팔레스타인인 초청 강연회를 조직한 경험
100명이 참가해 깊은 관심을 보이다

나는 인천에 있는 한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다.

5월 17일에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 함께 운영하는 난민 연대 동아리 주최로 팔레스타인인 유학생 초청 강연회를 열었다. 100여 명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참가했다. 전교생이 1000명 정도 되니 그중 10퍼센트 가까이 참가한 셈이다.

교실을 채운 학생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었다 ⓒ김샘

그동안 나는 서울과 인천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집회에 참가하면서, 이스라엘의 학살이 문제라고 여기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있는 학교에서도 뭔가 해 보고 싶었다.

강연회는 그중 하나였다. 강연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곧바로 집회 참가 같은 실천에 나서진 않더라도, 막연하게 관심만 있던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생각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도 시작점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참가자들이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기보다는 준비 과정부터 함께할 수 있다면 이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확산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강연 한 달 전부터 나는 우리 동아리 학생들을 먼저 설득했다. 이 학생들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고 있는 억압을 설명하고 이들의 저항에 연대하는 게 왜 중요한지 토론했다.

그런 토론 덕에 중요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한 학생이 내게 팔레스타인인들을 도와주는 나라들이 없는지 질문해, 2011년 아랍 혁명 때 이집트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독재자를 몰아내고 팔레스타인을 도왔던 사례를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그러면 다른 아랍 국가들도 2011년 이집트처럼 돼야겠네요?” 하고 반응해 나를 놀라게 했다.

토론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의 정당성에도 공감했다. 내가 ‘하마스 때문에 전쟁이 난 것 아닌가요’ 하는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학생들에게 묻자, 한 학생이 큰 소리로 ‘맨날 두들겨 맞다가 한 대 때렸다고 뭐라고 하면 안 되지~’ 하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런 토론 덕에 학생들은 강연회의 의의에 공감해 강연 포스터도 직접 만들고, 학교 곳곳에 대자보도 부착하고, 행사 당일에도 강연장 앞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홍보 부스를 직접 운영했다.

학생들이 운영한 강연장 앞 부스 ⓒ김샘

강연 홍보를 시작한 지 불과 반나절 만에 80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학생들뿐 아니라 선생님들의 관심도 느껴졌다. 팔레스타인인을 어떻게 연사로 섭외했는지, 내가 이 문제에 왜 이렇게 열심인지, 팔레스타인과 개인적 관계가 있는지, 심지어 내가 무슬림인지 물어 보는 선생님도 있었다. 이런 대화들 속에서 나는 그들과 작은 것부터 대화를 시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학교에 더 큰 교실이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학생과 선생님들이 참가했을 것이다. 하루 만에 참가 신청자가 강연장 수용 인원을 채웠다. 뒤늦게 내게 찾아온 한 선생님은 ‘내 동아리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활동하게 두고 나만 가서 들어도 괜찮냐’고 묻기도 했다.(나중에 들어 보니 이 선생님은 자기 동아리 학생들도 데리고 왔다.)

이 선생님들은 강연 당일에도 좋은 강연을 앉아서 듣기만 하는 것이 미안하다며 도울 것이 없는지 묻기도 했다.

준비

팔레스타인인이자 이날 강연의 발표자였던 나리만 씨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고 있는 점령의 현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나리만 씨는 어린 시절 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에 ‘학교가 폭격으로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철없이 생각한 일화를 소개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이 얼마나 비극으로 점철돼 있는지 전하기도 했다.

또 나리만은 ‘만약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천막을 치고 교육을 이어갔을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인들의 굳은 의지를 보여 줬다.

학생들은 질문지에 솔직하고 진심어린 물음들을 적어냈다.

“이스라엘의 많은 박해를 받으셨을 텐데, 그럼에도 맞서 싸울 용기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크바’ 같은 힘들고 아픈 사건들을 겪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러한 상황 속에 매일매일 무슨 마음으로 일어나고 잠에 드나요?”

강연이 끝나고 학생들이 적어 낸 소감문은 나리만 씨의 강연이 청소년들의 마음에도 가 닿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도와줘야 한다.”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라도 이스라엘에 주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어린아이들까지 테러리스트라며 잡아 가두는 이스라엘이 너무하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학살을 옹호한다는 것을 듣고 미국은 전쟁으로 돈을 버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독립할 수 있을지,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들도 있었는데, 사회를 보던 나도 이런 물음에 답해 보려 했다.

“미국과 유럽 대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하려 대학을 점거하고 있다. 수십 년 전 베트남 전쟁 때도 미국 대학생들은 반전 운동을 하며 대학을 점거했고 그것이 결국 미국이 철수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뿌듯하게도, 이 질문을 한 선생님은 집에 가서 베트남 전쟁사를 찾아 봤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진지한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명함을 주고, 선생님들에게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교사들’을 소개했다. 후원도 호소할 수 있었다.

나에게 지난 7개월은 ‘대규모의 끔찍한 인종 학살이 벌어지는데 내가 집회를 조직하고 참가하는 일은 어떤 의미와 영향력이 있는 걸까’ 곱씹는 시간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은 내게 한국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 장면을 담은 ‘틱톡’ 영상을 보여 준 적이 있다. 그 영상에는 아랍어 댓글이 잔뜩 달려 있었다.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 서 있었다,’ ‘아랍인들은 무얼 하는가?” 하는 내용들이었다.

전쟁에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사기 저하는 참을 수 없다고 한다. 그녀가 내게 보여 준 영상은 팔레스타인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이 나라에서 우리가 하는 실천 하나하나가 국제적 운동의 일부이며 서로를 고무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줬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내가 평소에 하는 ‘일’과는 달랐다. 학교에서 하는 노동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거의 없고, 지루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의 연속이다. 나는 비정규직의 차별과 설움도 느꼈고, 한 번은 아동 학대 고소 위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소박하지만 학교 안에서도 내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팔레스타인 문제가 궁금하면 나에게 물으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한 선생님은 기회가 되면 아들을 데리고 인천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가해 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과제

이런 일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꼭 강연회를 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사실 일터에서 정치적인 주제로 강연회를 여는 것은 쉽지 않다. 관리자와의 갈등은 예정돼 있고, 동료들의 시선도 두려울 수 있다. 사실 집회에 나가는 것은 일터에서 작은 일 하나라도 조직하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

특히 학교는 ‘교육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압력이 큰 곳이다. ‘우리 아이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마라, 난 내 아이가 정의롭다가 손해 보게 키우고 싶지 않다’ 하는 학부모의 항의 전화를 받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선생님들에게 수업 자료만 쥐어 준다고 이런 게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감을 갖고 차분히 준비해 보면 각자의 공간에서 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난민 연대 동아리에서 학생들에게 다가가 토론한 것이 큰 디딤돌이 됐다. 그런 토론 과정을 거쳐 100명짜리 강연회 준비를 같이 할 든든한 친구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내게는 강연을 계기로 관심을 보인 사람들과 앞으로 어떻게 지속적으로 토론을 이어 나갈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이런 활동은 생각보다 지난하고 실패도 겪겠지만, 이런 시도로 내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확산시키는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