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노동자 재투쟁 정당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화물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구실을 했던 안전운임제가 2022년 말 종료된 이후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업황이 좋고 노조 조직력이 강한 일부에서는 노동조건 방어에 성공하는 곳들도 있지만, 건설 경기와 내수가 침체하고 대중국 수출도 둔화한 상황에서 안전망이 사라지니 많은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상욱 화물연대 대구경북지부 조합원은 이렇게 말한다.
“화물 노동자들이 많이 쓰는 ‘24시 콜’을 보면, 일감이 전보다 5분의 1로 줄었어요. 윤석열 정부하에서 중간 회사들이 시장 논리로 운송료도 대폭 삭감했습니다. 특히 1톤, 2.5톤, 5톤 같은 작은 차들의 단가가 많이 떨어졌어요.
“예를 들어, 부산에서 출발하는 5톤 기준 화물 운송 단가에 5만~6만 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도 등장합니다. 이것은 마치 지금 흔히 쓰지 않아 있는지도 모르는 10원짜리가 다시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올해 화물연대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안전운임제 종료 이후 화물 노동자들의 임금은 16.5퍼센트나 삭감됐다. 이에 따라 응답자의 80퍼센트가 “생계의 어려움으로 부채가 발생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장시간·고강도 노동, 안전 사고로 직결되고 있다. 화물 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67.9시간에 달한다. 노동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한국 노동자 평균보다 무려 월 113시간씩 더 일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만 화물차 사고로 847명이 사망했다.
윤창호 부산지역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한 달 사이에 우리 조합원(부산지역본부)만 10명이 돌아가셨습니다. 2500명의 조합원 중 한 달 사망자가 저 정도면 1년에 120명이 넘습니다. 쉬지 못하고 자지 못하고 일하다 심혈관 등 건강 이상으로 인한 사망과 과적·과로·과속으로 인한 사망 사고로 나온 결과입니다.”
이상욱 대경지부 조합원도 이렇게 말한다. “평소에 17시간을 운전합니다. 운전하다가 차 안에서 자기 때문에, 사실상 24시간 노동하는 거라 생각해요. 내 나이 63세인데, 이렇게 일하고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합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폐지한 안전운임제의 대안으로 표준운임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표준운임제는 사용자들에게만 유리한 제도다.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기준 운임이 정해질 뿐 아니라 그들은 적정 운송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화물연대는 정부가 추진하는 표준운임제를 반대하고 안전운임제를 전 차종, 전 품목으로 확대해 재도입하라고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려고 한다. 6월 15일 국회 앞에서 대규모 상경 집회로 포문을 열 예정이다. 본지와 인터뷰를 한 여러 활동가들은 현장 순회 홍보전을 하며 집회를 적극 조직하고 있다고 했다.
김성진 대경지부 조직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6월 15일 집회는 윤석열 정부에 맞서 반격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하고 정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은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는 데에 좋은 조건이 되고 있다.
운송료를 삭감하는 정부와 사용자들에 맞서 이번 투쟁이 전진하길 응원한다.
화물 노동자를 뒤통수쳐 온 민주당
2022년 화물연대 파업 과정은 민주당을 믿고 기대는 것이 투쟁에 크게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2022년 6월 파업 이후, 민주당은 화물연대 지도부와 협의해 안전운임제의 차종과 품목을 일부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를 민생 개혁 22대 입법 과제의 하나로 약속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해 11월 말 시작한 화물연대 파업에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강경하게 탄압하고 사용자와 친기업 언론들은 거짓말을 해댔다. 그때 민주당은 이에 맞서기는커녕 되레 노동자들이 자제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했다.
이재명 대표는 화물연대를 향해 노골적으로 “강대강 대치를 고집 말라”며 압박했다.
파업 15일 차에 민주당은 안전운임제 차종과 품목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애초 정부가 제시한 기존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안전운임제 확대를 위해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을 뒤통수치며 압박한 것이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민주당을 비판하기는커녕 후퇴안을 추수했다. (계급투쟁에서 누구 편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태도가 이러니까 정의당이 총선에 직면해 거의 말기적 위기에 봉착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파업 종료 이후 민주당은 기존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조차 통과시키지 않았다.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지고도 말이다.
이 과정은 민주당이 진정 어느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인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민주당은 개혁 염원 지지자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지만 본질적으로 친자본주의 정당으로 자본가 계급의 낙점을 받아 집권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야당일 때는 개혁을 약속했다가 노동자들을 뒤통수치고, 여당일 때는 스스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구실을 반복해 왔다.
이 때문에 이제는 많은 화물 노동자들도 “민주당을 믿어서는 안 된다” 하고 다짐한다.
안전운임제 재도입 투쟁을 시작하는 지금, 당시의 교훈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과 국회 일정에 기대 걸지 말고(참고 사항일 뿐이다) 현장의 자력 투쟁과 연대 투쟁을 중시해야 한다.
지난 파업에서도 산업 운송을 마비시킬 수 있는 화물 노동자들의 잠재력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한국경제연구원은 두 차례 파업으로 인한 직접·간접 손해가 10조 4000억 원이라고 계산했다. 화물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해 왔는지와 함께,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이윤의 흐름을 중단시킬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연대를 확대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비록 양경수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연대 건설의 책임을 형식적으로 수행했지만 말이다. 건설노조 일부가 용기 있게 동조 파업에 나섰지만,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체면치레 수준의 하루 행동에 그쳤다. 화물연대의 상급 단체인 공공운수노조 지도부는 그 집회조차 열의 있게 동원하지 않았다.
이는 계급투쟁을 전진시키려 하기보다는 협상 중재자 구실을 중시하며 소심한 태도를 취하는 개혁주의 지도부의 약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화물연대 파업은 당시 매주 수만 명이 모이던 촛불행동 주최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도 커다란 지지를 받았다.
물가 상승과 실질임금 감소로 인한 생계비 위기를 많은 노동자들도 겪고 있는 만큼 화물연대 투쟁은 더 광범한 노동계급 연대를 끌어모을 잠재력이 있(었)다.
화물연대 지도부가 국회 논의와 민주당에 기대지 않고 폭넓은 연대를 호소하며 기층의 투쟁을 강화하는 것에 주력한다면 이번 투쟁은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