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집단학살 일기 ― 가자에서 보낸 85일》: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 전쟁 한복판에서 쓴 생생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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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 전쟁이 9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의한 사망자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4만 명에 육박하고, 가자지구는 심각하게 유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전쟁의 한복판에서 가자의 참상을 직접 겪고 85일간의 일기로 기록한 책 《집단학살 일기 ― 가자에서 보낸 85일》(이하 《집단학살 일기》)이 나왔다.
책을 읽는 내내 폭발음과 비명을 계속 마주하게 된다. 그만큼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다.
이 책이 증언하는 아비규환은 끔찍하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살아남으려고 사투를 벌이고, 서로를 돕고 위로하려 애쓴다.
저자인 아테프 아부 사이프는 가자지구 자발리아 난민촌이 고향인 저명한 작가다. 그는 2019년 서안지구로 이주해 ‘팔레스타인 당국(PA)’의 문화부 장관과 파타 대변인을 지내 왔다.
아테프는 국제 문화유산의 날 행사에 참가하고자 아들 야세르와 함께 2023년 10월 고향에 갔다가 예고 없이 찾아온 전쟁에 휘말리게 됐다.
그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전쟁을 맞았다. “갑자기 아무런 경고도 없이 로켓 소리와 폭발음이 사방에서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로켓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장식처럼 남긴 연기 줄기를 보았다.”(첫날 일기)
매일 미사일과 포탄이 곳곳에 떨어져 언제 자기 머리 위를 덮칠지 알 수 없고, 매일매일 먹을 빵과 마실 물을 찾아 헤매거나 길게 줄을 서야 했다.
“[폭격으로] 모든 게 사라졌다. 거리 양쪽은 납작해졌고 슈퍼마켓, 환전소, 펠라펠 가게, 과일 가판대, 향수 상점, 과자 가게, 장난감 가게까지, 모두 불타 버렸다.
“폐허 위를 거니는 일은 압도적이다. 피가 사방을 덮는다. 거기에 발을 내딛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공격이 있었을 때 내가 앗-티란스를 걸어다니고 있었다면? 밟지 않으려던 그 피가 내 피일 수도 있었다.”(셋째 날 일기)
비극은 아테프의 가족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처제의 가족이 폭격으로 몰살되고, 유일하게 생존한 조카 위쌈은 두 다리와 한쪽 팔을 잃었다. 희생자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여러 날 동안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쳐 봤지만, 끝내 모두 수습하지 못했다.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장례도 치르지 못하자, “어떤 아이들은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맞아 자신들이 조각난 뒤에도 이야기를 전하거나 최소한 녹화라도 할 수 있는 새롭고 영리한 방법을 고안했다. 자기 시체가 확실히 확인될 수 있도록 손발에 마커로 자기 이름을 써둔 것이다. 이걸 SNS에서 공유하고 있었다.”(열세번째 날 일기)
마커
전쟁이 46일째에 접어드는 날, 아테프는 아들과 함께 자발리아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이스라엘군이 가까이 다가오고 창문 밖에서 포탄이 날아가는 걸 보고 나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이틀 전 아테프의 동료이자 기자인 빌랄은 가자시티에서 나가는 길을 찾다 살해당했다. 아테프는 자신의 아버지 등 가족과 생이별하며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
피란길에 마주친 이스라엘군의 행태는 말 그대로 잔인무도하다.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병사는 피란민들에게 정면만 보고 움직이라는 명령만 반복했다. 그리고 임의로 사람들을 골라 체포했다.
검문소에서 2킬로미터를 더 걸을 때쯤 저자는 아들에게 주변을 보지 말라고 엄하게 말했다. “수십 구, 또 수십 구의 시체가 길 양쪽에 아무런 질서도 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썩어 있었고 땅에 녹아 늘어붙은 것 같았다. … 거기에는 목이 없는 시체들이, 잘린 손들이 있었다. … 다시 야세르에게 말했다. ‘보지 마. 아들, 그냥 계속 걸어.’”(마흔여섯번째 날 일기)
아테프는 칸 유니스를 거쳐 라파흐로 가 천막에서 지냈다. 식량과 담요 등 모든 게 부족한 피란민들에게 사막의 겨울은 매섭다. “겨울밤에는 추위가 극심했다. 모래는 추위를 삼켜 밤새 뿜어냈다.”(예순여덟번째 날 일기)
지은이의 일기는 85일째인 12월 30일 자로 끝났다. 그날 그와 아들 야세르는 우여곡절 끝에 라파흐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 이집트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가족들을 가자에 남겨 둬야 했다.
아테프 아부 사이프는 전쟁 한복판에서 악착같이 일기를 쓴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다른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고, 내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 사건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매일 이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이 일기 한 줄 한 줄에는 슬픔과 고통이 가득 배어 있다.
《집단학살 일기》는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 전쟁에 직면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절한 생존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 전쟁에 절망과 희생만 있는 건 아니다. 저항과 연대라는 희망도 있다.
이스라엘군이 ‘평정’했다고 했던 가자지구 중·북부에서는 다시 저항이 일어나 지금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저자의 고향인, 완전히 파괴됐다는 자발리아 난민촌도 그중 한 곳이다. 지난 5월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 다니엘 하가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몇 주간 하마스가 자발리아에서 군사력을 부활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이스라엘군의 만행에 맞선 저항도 악착같이 되살아나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식민 지배의 희생자이지만, 그 지배를 뒤흔드는 저항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저항을 보며, 세계 곳곳에서 팔레스타인 연대가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