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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대란이 된 윤석열의 의료 ‘개혁’

의료 대란이 현실이 되고 있다. 특히 응급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고열에도 진료를 받지 못하고 뺑뺑이를 돌다 의식불명에 빠진 아기, 추락 사고 후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노동자 등의 사연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있다. 서울 시내 일부 대학병원들은 응급 분만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표시되는 응급실 진료제한 메시지는 올해 2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3퍼센트 늘어난 데 이어 5월엔 28퍼센트, 8월엔 52.2퍼센트 늘어났다(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

추석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이 기간에 진료를 대부분 떠맡아야 하는 응급실 기능이 마비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응급실 대란은 2월에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일곱 달째 돌아오지 않은 데 따른 효과가 누적되며 벌어진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반년 넘도록 전공의 복귀를 압박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부와 병원 사용자들의 무능과 무책임 탓이 더 크다.

윤석열은 의료 ‘개혁’을 명분으로 의대 증원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제로는 의료 시스템을 더 시장화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관련 기사: ‘윤석열의 의대 증원: 팬데믹 이후 새로운 이윤 축적 기회를 잡기 위한 시도’)

그래서 응급실 기능이 악화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응급실 인력과 환자 배정을 통제하기는커녕 고집스럽게 각 대학병원에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내맡겨 왔다.

빅5를 포함한 대학병원들은 응급실은 물론이고 응급처치 후 수술과 입원 등을 전공의에게 크게 의존해 왔는데, 전공의 이탈 후에도 전공의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임시방편을 이어왔을 뿐 근본적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동원된 다른 병원 노동자들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부담은 물론이고 불의의 사고 시 법적 책임도 져야 하는 위태로운 현실에 내몰렸다.

의료 공백의 폭탄을 짊어진 것은 소방서 구급대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3개월 동안 환자가 사고 현장에서 병원으로 이송되기까지 1시간 넘게 걸린 사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40퍼센트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한겨레〉). 병원들은 의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처치가 늦어져 사고가 날 수 있다며 환자 수용을 거부했다.

〈시사인〉에 편지를 보낸 한 구급대원은 손가락이 잘린 환자가 응급실 앞에서 119에 전화를 건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직접 응급실을 찾았다가 진료를 받지 못하자 응급실 문 앞에서 전화로 구급대에 구조 요청을 한 것이다.

응급실 대란이 예고된 지 일곱 달이 지나도록 정부는 전공의들을 욕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잘린 손가락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은 사회 전체의 필요를 조율해야 할 중앙집중적 결정이 없다시피 한 시장 의료 현실을 보여 준다. 사실 이런 현실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확인된 바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민간병원들은 병실을 내놓지 않았고, 정부는 이를 충분히 강제하지 않았다.

119 구급대는 환자가 발생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아니라 (협력을 명분으로) 해당 환자를 받겠다는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한다.

재난 상황이 아닌데도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응급 환자를 수용할 능력이 안 될 정도로 응급의료기관이 부실하거나, 수익에 비해 부담이 크다며 치료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응급의료의 질 관리나 사고 책임 등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정부의 태도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켜 왔다.

의사와 환자, 다른 병원 노동자, 구급대 사이의 불신은 나날이 커져 왔다.

반세기가 넘도록 대부분의 병원이 민간 소유로 성장해 온 한국에서는 이런 구조를 크게 바꾸려면 거대한 대중 투쟁에 의한 사회적 격변이 필요할 것이다.(관련 기사: ‘공공의료 체계로의 전환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럼에도 이번 응급실 대란을 앞두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팬데믹 시기에 일부 병원과 병실을 징발했듯이, 정부가 주요 대학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만이라도 직접 관리·통제했다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의사 수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조처가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겠지만, 위기 상황에서도 병원들이 각자 제 입맛에 맞게 인력을 배치하도록 방치하지 않고 정부가 책임지고 인력과 자원을 통제했다면 환자와 119 구급대가 뺑뺑이를 돌다가 비극을 맞이하는 일은 상당수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껏해야 군의관을 동원했지만, 낯선 병원 응급실에서 사실상 모든 책임을 감수하라는 명령은 거부당했다. 정부는 이들을 징계하겠다고 했다가 더 큰 반발이 예상되자 없던 일로 했다.

윤석열 정부가 고집스럽게 시장 의료 체계를 지키려 한다는 사실은 시종일관 응급실 진료 수가 인상을 대안으로 제시한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경증 환자의 응급실 진료비를 대폭 인상하겠다는 대책은 사람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돈이 없으면 응급실에 오지 말라는 계급 차별적 대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환자 스스로 경증인지 중증인지 판단하라는 보건복지부 차관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이 정부가 얼마나 현실에 둔감한지 보여 준다. 응급실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환자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증과 중증을 구분하는 것이다. 응급실이 전공의 수련의 첫 관문인 이유이자 모든 환자에게 개방돼야 하는 이유다.

봉합

응급실 대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공의 복귀를 위해 의대 증원을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도 증원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은 2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뉴스핌·미디어리서치 정례 여론조사, 9월 2~3일) 대다수 전공의가 일관되게 “의대 증원 백지화”를 복귀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해 왔음에도 그렇다. 그만큼 의사 부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크다는 뜻이다.

어처구니없게도 대한의사협회는 응급실 대란 상황에서 정부가 물러설 조짐을 보이자 이미 입시가 시작된 2025년 의대 정원도 원점으로 되돌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신들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는 이기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보면, “의대 증원 전면 재검토”를 정부에 종용하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진보 염원 대중의 의사를 거스르고 있는 셈이다. 야당이라는 지위를 십분 활용해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갈등 조정자로서 부각되고자 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이다.

좌파 측의 입장은 모호하다. 진보당은 의대 증원 백지화를 반대했지만, “합의점을 찾으면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에 강조를 둬 사실상 증원 규모와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의당은 최근 응급실 대란 국면에서 어떤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응급실 대란에도 전공의들은 요지부동이고, 윤석열 정부는 전전긍긍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상황은 더 악화될 공산이 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