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직 간부들에게 중형 선고한 법원 규탄한다
—
이들은 마녀사냥의 피해자들일 뿐이다
〈노동자 연대〉 구독
11월 6일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석권호 씨 등 3인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석권호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에게는 무려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김영수 전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에게는 징역 7년, 양기창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다. 터무니없는 중형이다. 함께 기소된 다른 1명만 혐의 입증이 안 됐다며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석 씨 등 3인이 민주노총을 이용해 이태원 참사 항의 운동, 윤석열 퇴진 운동 등 반(反) 정부 투쟁을 일으켜 사회 혼란을 조장하려 한 비밀조직이자 간첩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보안법 마녀사냥이며, 정부에 대한 급진적 비판과 저항을 북한의 사주로 몰아 운동을 분열·약화시키려는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은 정부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설을 기정사실화하며,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키려는 시도에도 일조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석 씨 등이 북한 공작원들을 만나고 ‘국가기밀’을 북한에 넘긴 간첩 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국가기밀’이라고 규정한 것은 민주노총 선거에 관한 내부 동향 같은 정보들이다.
그러나 국가가 이를 간첩으로 몰아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
민주노총 전직 간부들은 북한 국가의 관료가 아니다. 천대받는 남한 노동계급 운동의 활동가이며, 사실 그래서 그들이 마녀사냥 대상이 된 것이다.
게다가 석 씨 등이 단지 북한 관료의 입장을 고스란히 운동에 전달하는 구실을 한 것도 아니다.
사실 윤석열 퇴진, 한미일 군사 동맹 반대 같은 요구는 북한의 동향과 아무 상관없이 남한 내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나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순수한’ 바람을 ‘불순하게’ 이용한 자들로 매도했다. 결국 마녀사냥의 목적은 반정부 운동을 흠집내는 것이다.
누군가 정치적 신념에 따라 북한 정부 인사들과 교류했다면 이는 그의 사상을 비폭력적 방식으로 나름 일관되게 실천한 문제로 봐야 한다. 북한 사회를 사회주의로 본다면, 북한 관료와 연계를 맺는 것을 그 논리의 일관된 귀결로 여길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행동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 지배 관료는 남한의 좌파가 연대할 만한 세력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오류는 운동 내 토론·논쟁의 대상이자 실천으로 입증될 문제이지, 국가 탄압의 빌미가 돼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윤석열의 보안법 탄압 피해자가 이미 60명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내 개혁주의자들은 보안법 전체 폐지가 아니라 일부 조항 폐지(개정)을 주장해 왔다. 특히, 7조(이적단체 가입, 찬양·고무 등)만이라도 폐지하거나 개정하자고 말해 왔다.
그런데 요즘에 보안법 탄압 사건의 경향을 보면 7조 개폐만으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반미자주파 활동가들을 주로 국가보안법 8조 ‘회합·통신’ 혐의 등으로 탄압하고 있다. 북한과 접촉한 것을 주되게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청주 평화운동가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대표, 석 씨 등 민주노총 전직 간부들이 모두 그런 혐의를 받고 있다.
정부는 ‘간첩’이라는 무시무시한 굴레를 씌워, 이 활동가들을 가까이 다가가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들로 만들어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지지하기 꺼려지는 ‘이상한’ 사람들로 몰아야 마녀사냥이 용이해진다. 그럴수록 이간과 분열의 효과는 커진다.
안 그래도, 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보면서도 보안법상 ‘간첩’은 옹호할 수 없다는 개혁주의 인사들이 많다. 정부는 그런 사정을 파고들어 자신들과 지배계급에 맞선 운동을 위축, 분열시켜 궁극적으로 약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지배적 사상과는 다른, 소수의 ‘이상한’ 사상이 탄압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의 핵심이다.
6일 민주노총은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과 함께 재판을 앞두고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정부의 탄압을 규탄하고 무죄 선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김혜순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지금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있는 사람이 7명이고, 압수수색을 당하거나 재판을 받는 피해자만 5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어제 선고로 구속자는 3명 더 늘었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는 심화되는 지정학적 긴장과 정권 위기에 대응해 보안법을 휘둘러 속죄양을 잇따라 만들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며 정치적 반대파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보안법 탄압에 맞서야 한다. 이런 마녀사냥이 거듭된다면, 결국 탄압의 대상은 더 넓어질 수 있고 그만큼 표현의 자유도 제약될 것이다.
법정 구속된 석권호 씨 등 3인은 모두 석방돼야 한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마땅히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