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민주노총 & 비상행동 집회:
윤석열 체포 불발에 분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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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 민주노총 확대간부 결의대회
1월 3일 오후 3시 한강진역 앞에서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 민주노총 확대간부 결의대회’가 열렸다. 전국에서 4000명(주최 측 발표)이 모였다. 이 집회는 1박 2일 철야 투쟁으로 진행됐다.
이날 공수처는 윤석열 체포·수색영장을 집행하겠다며, 관저에 진입했다가 5시간 30분 만에 영장 집행을 중지하고 철수했다. 무장한 경호처 요원과 군부대가 체포영장 집행을 막을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공수처와 경찰은 턱없이 안일하게 나섰다. 처음부터 집행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는 체포를 거부하고 버티는 윤석열뿐 아니라 공수처의 ‘체포 쇼’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금속노조 옵티칼하이테크지회 최현환 지회장은 이렇게 말하며 울분을 토했다. “대한민국 공권력이 언제부터 이렇게 관대했습니까? 노동자 투쟁은 몽둥이와 가스총까지 동원하면서 짓밟는데, 내란범 앞에서는 맥도 못 추고 철수했습니다.” 옵티칼지회 여성 노동자 2명이 구미 공장 옥상에서 350일 넘게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쌍용자동차 강제 진압은 어떠했습니까? 백남기 농민에겐 물대포를 쏘았습니다. 그랬던 공권력이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결의대회 후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까지 행진을 했다. 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박수와 지지를 보냈다. 한 여성 노동자는 연신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행진 후 대통령 관저 앞 도로를 점거하고 항의 시위를 이어갔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이 주최하는 저녁 집회까지 자유 발언이 이어졌다.
오후 7시 윤석열 즉각 체포 촉구 긴급행동
오후 7시가 되자 한강진역 앞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비상행동은 1월 2~6일까지 매일 ‘윤석열 즉각 체포 촉구 긴급행동’을 진행 중이다.
한강진역에서 출발한 행진 대열은 윤석열 관저 앞으로 향했다.
2030 여성이 다수를 이룬 행진 참가자들은 윤석열과 경호처에 대한 부글부글 끓는 분노와 (동시에) 윤석열을 반드시 끌어내리겠다는 기세를 드높였다.
행진 대열이 순천향대병원 쪽 길을 지날 때 주변 상가의 거의 모든 카페와 식당에서 손님들이 창문에 붙어서 박수를 치고 응원했다.
행진 대열과 민주노총 대열이 조우하게 되자 서로를 향해 응원봉과 팻말을 흔들며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오후 8시가 넘어 시작한 비상행동 집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참가자가 더 늘었다. 민주노총의 1박 2일 철야 투쟁에 동참하려고 방한 물품을 단단히 준비해 온 청년 참가자가 많았다. 주최 측은 연인원 3만 명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관저를 향해 “윤석열을 체포하자” 구호를 연신 외쳤다. 참가자들이 손수 만들어 온 팻말 중엔 “사형하라,” “참수” 등도 있었다. 수사는 거부하며 극우 지지층을 선동하는 윤석열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연단에서는 윤석열 체포 시늉만 낸 공수처와 경찰에 대해서도 강력 성토했다.
트랙터 시위를 이끈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2주 전 남태령과 1월 3일 윤석열 관저를 비교하며 경찰과 공수처를 비판했다.
“[남태령에서] 트랙터를 경찰들이 막아 세우고 트랙터 유리창을 깨고 사람들을 끌어내렸습니다. 그러나 [1월 3일 윤석열 관저에선] 아무것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남태령에서는 농민들을 48시간을 가둬 놓았는데, 오늘 공수처는 5시간 만에 철수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집회 중간 눈발이 세차게 내렸지만, 참가자들은 자유 발언에서 지치지 말고 계속해서 싸워 나가자며 서로를 북돋았다.
사회자가 민주노총이 1박 2일 투쟁에 나섰다고 소개하자 참가자들은 커다란 박수로 응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을 체포할 때까지 함께하자며 연대를 호소했다.
밤 10시가 넘어 비상행동 집회가 끝나고, 민주노총의 철야 농성 집회가 이어졌다. 청년 여성들은 이때에도 계속 집회장으로 들어왔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매우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며 철야 자유 발언 집회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