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시빌 워: 분열의 시대〉:
극우의 위협을 실감나게 경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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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는 제목 그대로 제2의 미국 내전을 가정한 영화다(첫 번째 미국 내전은 남북전쟁).
가상의 미국 내전 중 함락되기 직전인 수도 워싱턴의 대통령 관저(백악관)를 향해 가는 기자들의 위험한 여정을 그린다.
인터넷 데이터 분석업체 유고브에 따르면, 미국인의 59퍼센트는 지금이 ‘1960년대보다 정치적 분열이 더 심하다’고 본다.(2024년 7월)
미국에서 ‘앞으로 10년 이내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 미국인도 전체의 43퍼센트, 강성 공화당원의 54퍼센트나 된다.(유고브, 2022년 8월)
트럼프를 따르는 극우들이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을 습격한 다음 날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는 공화당원의 무려 45퍼센트가 국회의사당 습격을 지지했다.(유고브, 2021년 1월)
이 사건 전에 이미 마이크 데이비스는 2020년 미국 대선 결과 분석 글을 다음과 같이 끝맺었다. “내전이 다시 일어날까? 어느 정도 유추가 불가피하며, 쉽게 무시해선 안 된다.”
마이크 데이비스(1946~2022)는 가장 저명한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다.
내전
미국에는 총기와 무장 민병대가 넘쳐 난다. 둘 다 헌법이 보장한다.
22개 주는 주 단위 민병대가 합법인데 팬데믹 기간 그들은 정부 명령에 반대해 공장과 가게 문을 계속 열겠다는 소상공인들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EBS 〈위대한 수업〉(2023)에서 총 5강을 강의한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그의 책 《재난의 시대 21세기》(2023)에서 미국의 극우가 그들에게 가장 유력한 내전 수행 방식인 게릴라전을 벌인다면 “십중팔구 집단 학살과 대규모 추방 사태도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많은 유색인과 [극우파에게] ‘극좌파’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겨냥한 전면적 ‘인종 청소’ 작전이 벌어질 것이다.”
“[미] 연방 정부가 이런 종류의 분열을 막으려고 할 것이라는 점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연방 정부의 강제력은 한계가 있다.” “미국의 일부 군사 사상가들은 미군이 국내에서 이런 종류의 전쟁을 수행하기는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꽤나 솔직하게 인정했다.”
영화 〈시빌 워〉(2024)는 이러한 분석을 거울 파편에 비친 이미지처럼 보여 준다. 부분은 완전히 선명하지만 전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런 종류의 폭력적 내파가 유럽에서 일어날 개연성은 훨씬 더 낮다”고 후술했지만, “기후변화가 가져올 혼란”의 가능성을 덧붙였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사회·경제 구조의 분열은 극우파 집단들이 적어도 지역이나 지방 수준에서 권력을 장악해서 … 훨씬 더 극단적인 강령을 시행하려고 시도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국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는데, 친서방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정치 현상은 최근 한국에서 벌어졌다. 세계적이고 국내적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극우파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한국은 이제 80년 전의 ‘내전’ 전야, 즉 1945~1950년 해방 정국 다음으로 가장 양극화된 정치 투쟁의 장이 되고 있다.
장기 침체와 지정학적 불안정, 반대파에 대한 대응으로 윤석열 정부는 노골적인 친미·친일 노선과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 극우의 전진 배치를 추진해 왔다. 이는 대중적 반감을 키워 왔고 결국 쿠데타를 계기로 저항이 비등했다. 정치 양극화가 확산됐다. 우파는 급진화해서 극우파가 우파를 끌어당겨 우파가 극우파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함께 트럼프주의자를 모방하고 내란죄 피의자가 된 대통령을 좌파 척결 염원의 구심으로 삼고 반동의 정치 진지 구축을 꾀한다.
한국
따라서 2024년 4월 미국에서 처음 공개된 영화 〈시빌 워〉는 2025년 1월 한국에서도 실감나게 보일 것이다.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일수록 많은 걸 바랄 수 없는 노릇이나, (K팝은 물론) 할리우드 영화 역시 원래 의도보다 급진적인 의미를 전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수단, 시리아, 아이티, 미얀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제국주의가 내파시킨 수많은 가난한 나라들에서의 내전 양상과 이미지를 제국주의 국가 미국 한복판으로 끌어온다.
그러나 미국 개봉 당시 비판을 많이 받았다. 내전이 일어난 이유, 여러 세력들의 정치를 영화가 명확히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가 너무 빈약하게 제공되지만 영화 속 대통령은 거의 트럼프를 떠올리게 한다. 반헌법적 3연임, 국민을 향한 공습, 기자는 발견 즉시 사살한다는 소문, FBI 해체, 자기도취 등. 그런데 대통령과 싸우는 분리주의 동맹은 현실에서 서로가 반대 진영의 대명사인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어느 한쪽 편을 들게” 될까 봐,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길까 봐 걱정에 빠진 듯하다.
그러나 정치적 양극화는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니 뿌리는 놔두고 정치적 양극화만 별도로 봉합되길 바라는 건 허망하다.
미국 역사에 관한 불후의 명저 《미국 민중사》의 저자 하워드 진이 강조했듯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누군가 기차를 나쁜 곳으로 몰고 있다면 싫든 좋든 중립을 지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승객들은 기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권위주의화 경향, 지배계급 내 합의의 가망 없음, 극우의 주류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고조되고 있다.
현실에서 나이브한 전망과 태도는 금물이다. 상대편은 필사적이다. 계엄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더니 지금도 내전처럼 임하고 있다. 우리도 거리와 일터에서 집단적 힘을 보여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