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카스 무데, 위즈덤하우스):
극우에 대한 통찰은 괜찮지만 대중 동원의 구실을 경시한다
〈노동자 연대〉 구독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 시위대와 1월 19일 극우 청년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는 한국도 극우 부상의 무풍지대가 아님을 선명하게 보여 줬다.
네덜란드 출신 미국 조지아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인 카스 무데는 30년 가까이 극우와 포퓰리즘을 연구해 온 저명한 학자다. 무데는 올해 1월 초에 방영된 EBS 〈위대한 수업〉에서 ‘혐오와 차별의 정치학’이란 주제로 4차례 강의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무데의 저서 중 두 권이 출간됐는데 그중 하나가 2021년에 출간된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원서는 《오늘날의 극우》, 2019년 출간)이다.
이 책에서 무데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주되게는 서구 극우의 역사와 오늘날 극우 부상의 양상을 두루 살펴보고,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극우의 주류화
무데는 극우 세계관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민배척주의(국가는 소위 동질적인 국민을 복구하기 위해 사람이든 사상이든 간에 “이질적”이고 외래적인 요소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개념), 사회 문제를 법과 질서 문제로 축소하여 가혹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권위주의, 부패한 엘리트에 맞서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포퓰리즘의 조합.
이는 (특히 미국에서) ‘문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국가와 국민, 가족 등 전통적 가치 보호를 내세워 이주민과 성소수자 등을 공격하는 극우의 이데올로기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무데는 극우가 오늘날 공식정치의 주류로 진입했다고 지적한다.
무데는 이것이 근본적으로는 주류 정당들(중도우파와 중도좌파)이 이민·다문화주의·범죄 등의 쟁점에서 극우의 주장을 수용해 우경화하고 그들의 언어를 채택함으로써 극우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극우의 쟁점과 정책은 현재 주류 정당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극우의 영향력은 크다.”
나아가 주류 좌우 정당 모두가 급진우익 정당과 정치인들을 연립 대상으로 여기고, 이들의 정책을 약간 더 온건한 형태로 채택한다고 개탄한다.
무데는 그러한 행태들의 결과로, 한때 고립되어 있던 극우와 주류 보수주의를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해졌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공화당의 전통적 우파와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의 공식 강령이 갈수록 겹치는 것이 그런 사례다.
그리고 무데는 서구의 주류 정당들이 극우의 주장들을 수용해 난민과 이주민 유입에 권위주의적이고 배척적으로 대응한 것이 무슬림 혐오(테러 증가, 여성 차별 등)를 부추겼다는 점도 폭로한다.
그 과정에서 극우들이 교활하게도 “페미니즘적 주제들(여성 인권과 반성폭력)을 반이슬람 캠페인과 반이민 캠페인에 이용”해, “이슬람 혐오증을 지지하는 데 사용한다”고 옳게 지적한다.
파시즘은 주변적 세력?
하지만 무데의 설명에는 약점도 있다.
무데는 파시즘의 구실을 과소 평가한다. 무데는 극우를 “급진우익”과 “극단우익”으로 구분하고, 후자인 파시스트들의 영향력은 아직 주변적임을 강조한다.
무데가 말하는 극단우익이란 민주주의를 전면 거부하고(암묵적으로 민주주의를 전복하려는), 역사적 파시즘과 어느 정도 연속성을 공유하는 정당과 운동이다.
반면, 급진우익은 “비자유주의적” 버전이더라도 민주주의(핵심으론 선거) 자체는 수용하는 세력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역사적 파시즘과 공통점을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개념상 옳은 구별이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의 정치세력들을 규정하는 문제다.
무데는 그리스의 황금새벽당은 극단우익으로, 프랑스의 국민연합은 급진우익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런 분류는 지나치게 형식적이다. 국민연합의 중심에는 파시스트 간부층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데는 급진우익과 전통적 주류 우익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과 둘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해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파시스트가 아닌 극우와 파시스트 사이에도 그런 관계가 형성돼 있음을 봐야 한다. 무데는 이 점을 놓쳐서 파시스트의 위험성을 간과한다.
정당 자체는 순수한 파시스트 정당이 아니지만, 그 중심에는 단단한 파시스트 중핵이 있는 극우 정당들이 많다. 르펜의 국민연합이 바로 그런 사례다.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마찬가지다.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 EU 회의론자들의 연합으로 창당한 AfD는 이후 내부 쟁투를 통해 파시스트들이 당을 장악했다.
파시스트들은 전통적으로 이중 전략(거리와 의회를 모두 활용)을 사용해 왔다.
히틀러와 나치도 선거와 바이마르 헌법 등 합법적 방법을 준수하겠다고 사회 상층에 맹세하면서도 준군사적 거리 운동을 벌이며 민주주의를 박살 냈다.
요컨대 오늘날 파시즘은 무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다.
대중 동원
무데의 두 번째 약점은 극우에 맞서는 데서 대중 동원의 역할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대규모 반인종차별주의 시위는 적어도 인구의 대부분이 극우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일부 표적이 된 집단들에게 위로와 지지를 보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시위가 우익포퓰리즘의 득세를 멈추지는 못했다.”
무데는 그런 시위가 극우의 인지도를 높여 부작용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리에서 맞대결을 피할수록 극우는 자신감을 얻고 지지층 결집과 주류화에 이를 더 활용한다. 대규모 맞불 집회로 극우 반대 운동 측의 기세를 높이고 극우의 사기를 꺾어 놓는 게 중요하다.
무데는 극우를 약화시킬 대안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강화”를 제시한다. “극우단체와 개인을 대응할 때에도 자유민주주의의 한계 내에서만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중도파가 강화돼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무데도 지적했듯, 극우의 부상에 길을 터준 것은 바로 중도 정당들이었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는 진정으로 민중의 통치(민주주의)를 구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체제의 진정한 지배자들인 대(大)기업주들과 그들과 연결된 국가 권력자들이 노동계급 등 국민 다수의 의사를 거스르는 것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데가 제시하는 대안으로는 결코 극우와 파시스트들을 물리칠 수 없다. 그와는 반대되는 방법이 필요하다.
우선 극우에 맞서 거리에서의 대중 행동 건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스에서 황금새벽당을 패퇴시킨 진정한 힘은 거리의 대중 행동이었다. 또한 지난해 여름 영국에서 일어난 폭동에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거리 동원으로 맞서 극우에 타격을 줬다.
반면, 급진좌파부터 마크롱의 신자유주의 집권당까지 포괄하는 반파시즘 선거연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강화 전술을 사용한 프랑스에서 국민연합은 집권에는 실패했지만, 세력은 약화되지 않았다. 미국 민주당을 지지한 전술도 트럼프 저지에 실패했다.
지금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속에서 극우가 부상하고 있다. 이는 더 근본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실패와 집권한 중도좌파의 배신 행각에서 왼쪽의 대안이 떠오르지 못하고 극우가 반사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와 파시스트와 직접 대결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런 세력을 배양하는 자본주의 체제 분쇄를 위해 싸우는 정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