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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은 무엇이고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는가

파시스트 운동을 박살 내려면 그들의 뿌리와 현대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마크 L 토머스가 설명한다. 이 기사는 그가 2024년 7월 했던 강연을 편집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1930년대와 어느 때보다 더 비슷한 시대에 있다. 그러나 나는 절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1930년대는 그저 파시즘과 전쟁, 인종학살로 거침없이 진군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 시기는 또한 거대한 노동계급 저항의 순간들로 점철된 시기이기도 했다.

다시금 오늘날 우리는 극심한 양극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반동과 저항, 혁명과 반혁명이 공존하고 있다.

극우의 준동을 막으려면 국가에 기대는 게 아니라 노동계급의 단결된 운동으로 맞서야 한다. 8월 10일 영국의 극우·인종차별 반대 행진 ⓒ출처 Steve Eason (플리커)

다시 말해 우리의 운명은 역사의 재앙을 그저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지 말지는 전혀 결정돼 있지 않다.

그렇다면 파시즘은 무엇일까? 이 주제를 둘러싸고 엄청난 혼란이 있다.

파시즘의 가장 발달된 형태이자 파시즘이 가장 야만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독일 나치즘이었다.

그런데 나치당과 관련해 가장 흔한 오해 하나는 단순히 그 당을 독일 지배계급의 직접적 창조물로 보는 것이다. 나치당은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정당이었는데, 바로 대중운동을 통해서 성장한 당이었기 때문이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그 국가는 단지 전통적인 군사독재나 경찰 국가가 아니었다. 나치에게는, 자신의 적들을 겨눈 “공성 망치”라고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묘사한 거대한 대중운동이 있었다.

파시즘은 노동계급 조직과 노동조합, 좌파를 깡그리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아래로부터의 반(反)혁명적 대중운동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파시스트는 어떠한가?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파시스트 정당들은 선거적 돌파구를 열었다. 나치 분파가 핵심에 있고, 성장하고 있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15~16퍼센트를 득표했다. 이는 1930년 히틀러의 득표율과 별반 다르지 않다.

프랑스에서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RN)이 몇 주 전 총선 1차 투표에서 얻은 33퍼센트는 1932년 히틀러의 득표율과 아주 비슷하다.

영국에서는 파시스트들이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렇지만 파시스트들에게 이런 성공에 이르는 길을 닦아 준 것은 바로 중도, 권력 핵심부, 자유주의 세력들, 보수주의 세력들이었다. 솔직히 말해 때때로 사회민주주의 세력도 그랬다.

그들은 극렬한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고, 난민 유입을 차단하려고 국경을 요새화했다. 지금 보다시피 그들은 권위주의적 경향을 강화시키고, 경찰의 권한을 키우고, 시위 탄압을 강화하고, 경찰 폭력을 키웠다. 이 모든 것이 파시스트들이 번성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 파시스트들은 이슬람 혐오를 이용한다. 7월 영국 극우·파시스트의 폭동 사태도 이슬람 혐오가 주 요인이었다 ⓒ출처 Gavin Lynn (플리커)

예컨대, 2018년 독일에서는 기독교사회연합(CSU) 출신의 내무장관 호르스트 제호퍼가 “이슬람은 독일에 발붙일 곳 없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독일을 위한 대안’의 슬로건이 됐다. 그러나 그 전에 공론의 장에서 이슬람 혐오를 대대적으로 부추긴 것은 기성 보수 세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극우는 “우리도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에 진지한 것은 바로 우리다” 하고 주장한 것이다.

프랑스의 파시스트들은 대통령 마크롱이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고, 이슬람 혐오에 저항하는 무슬림 단체들을 불법화하고, 경찰의 실탄 사용을 고무하는 등의 상황을 이용해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파시스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두 가면을 쓴다. 첫 번째는 정상성이라는 가면이다.

히틀러의 운동이 특정 시점에 그랬던 것처럼, 파시스트들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용인될 만한 정상적인 세력인 양 행세하며 자신들의 반(反)민주적 의제를 감추는 데 능하다. 그들은 선거에 출마하는 등의 방식으로 가면을 쓰고 자신들의 목표를 숨긴다.

마린 르펜과 국민연합이 하는 말을 보라. 그들은 “탈악마화”를 논한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용인될 만한 정상적 세력으로 비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종적 혐오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어느 정도 감추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국가의 이슬람 혐오 정책은 그들에게 신이 준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르펜은 홀로코스트를 대놓고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프랑스 국가가 홀로코스트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거짓이다. 프랑스 국가는 프랑스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는 데 철저히 공모했다. 르펜의 주장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물타기한 버전일 뿐이다.

프랑스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과 그 지도자 마린 르펜(가운데 여성) ⓒ출처 Marine Le Pen (플리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총리 조르자 멜로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홀로코스트를 범죄라고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멜로니는 이탈리아 국가가 거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거짓이다. 이런 주장으로 멜로니는 파시즘 지지자들에게 은밀하게 본색을 드러낸다.

파시스트들이 쓰는 더 본질적인 두 번째 가면은 자신들의 반혁명적 운동을 혁명적 운동으로 가장하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은 강령과 일부 언사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재벌, 대기업, 심지어 거대 금융 자본 등에 대한 반대를 말한다.

이렇게 체제와 권력자들을 향한 분노를 내세우기 때문에 파시스트들은 전통적 보수 세력이 접근하지 못하는 집단에 접근할 수 있다. 기성 보수는 체제를 더 유능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하는 반면, 파시스트들은 체제를 박살 내겠다고 말한다.

파시스트들은 체제에 대한 분노와 자본주의 사회의 긴장을 ‘국제적 위협’을 겨냥하도록 비튼다.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건전한 자국 자본가들이 아니라 ‘국제 세력’들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수순은 ‘국제 세력’을 유대인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렇듯 파시스트들은 체제에 반대하는 듯한 언사를 하고 심지어는 반자본주의적인 듯한 용어를 쓰는데, 특히 “세계화”를 비난할 때 그렇다.

좌파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세계화에 반대한다. 반면 파시스트들은 자본 대 노동, 노동자 대 사용자의 대립이 아니라 국민 대 ‘국제 세력’의 대립에 관심을 집중시키려 한다.

파시스트들은 몇몇 빅테크 기업이나 금융 자본을 비난하면서 그것을 유대인 혐오적 음모론으로 쉽게 연결할 수 있다. 헝가리계 유대인이자 금융 거물인 조지 소로스는 거의 모든 파시스트들이 거론하는 대상이다.

르펜은 드러내 놓고 유대인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당이 반대한다고 르펜이 열거하는 사람들은 항상 유대인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식으로 파시스트들은 이중성과, 그럴싸한 부인의 여지를 남겨 두는 전략을 취한다. 즉, 발뺌할 여지를 남겨 두면서도 지지자들에게 은밀하게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치 거리 폭력배들은 비록 1930년대 독일의 나치 폭력배들에 비하면 훨씬 약하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분명 있다. 그들은 르펜 같은 자들의 극우적 언사에서 더 자신감을 얻고 있고,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이런 지적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극우가 파시스트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여전히 돌격대나 거리 깡패를 필요로 할까? 경찰 같은 국가의 물리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조르당 바르델라나 르펜 같은 자가 경찰을 거느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조금도 안이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파시즘의 목표는 노동계급 조직들을 파괴하고 민주적 권리들을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 노동자 계급을 패배시켜서 완전히 원자화시키고 어떠한 저항의 가능성도 차단하려면, 파시스트들에게는 여전히 이념적으로 투철한 거리 돌격대의 집단적 폭력이 필요할 것이다.

국가를 활용하는 것으로 이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시스트들이 국가를 활용하는 것의 위험성은 이를 통해 파시스트들이 기반을 훨씬 더 넓힐 수 있다는 데 있다. 단지 총리를 배출한, 사회에서 용인될 만한 정상적 세력으로 인정받아서가 아니라 국가를 더 권위주의적인 노선에 따라 개조하면서 파시스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의 득표가 아주 작은 강성 파시스트 중핵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중핵은 우려스럽게 커지긴 했지만 아직 1930년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래서 그들은 지속적인 파시스트 반대 압력에 취약하다.

따라서 우리가 주력해야 할 여섯 가지 중요한 전략적 과제 내지 필수적 고려 사항들이 있다.

먼저, 파시스트들이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 가면을 벗겨 내야 한다.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전선(NF)의 지도자 존 틴들이 설칠 때에는, 그가 히틀러 시절 제복을 입고 있는 1960년대 사진을 찾아내 그의 가면을 벗겨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파시스트들은 그때보다 더 영리하다. 그들은 파시즘과의 연관성을 추적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들의 언어를 해독해야 한다.

멜로니의 이탈리아형제당 청년 그룹 내부에서는 노골적인 파시즘과 나치 찬양 언사가 쏟아져 나온다. 이런 폭로들을 이용해 이들이 정상적인 당이 아님을 주장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총리 조르자 멜로니 ⓒ출처 Giorgia Meloni (페이스북)

둘째, 그들이 정상적인 정당이 아니라면 공적 영역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파시스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는 안 된다. 그들이 33퍼센트를 득표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들의 출연을 막는 것은 꽤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언론 출연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는 것에서 출발해 볼 수 있다.

또, 파시스트들이 우리가 사는 지역의 관공서를 대관해 선거 집회를 벌인다면, 단지 항의 시위를 벌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 행사를 실제로 저지하려 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또 다른 사항은 자유주의적 중도와 연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중도가 차악이라는 믿음하에 그들과 선거 연합을 맺어서는 안 된다. 자유주의적 중도는 파시스트들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자주 주도적 구실을 했다.

명심해야 할 점은 지배계급과 그들의 정치적 대표자들에게도 차악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계급에게는 좌파가 진정한 적이기에 파시스트들이 차악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결국에는 파시스트들과 거래하려 할 것이다.

1932년 독일 대선에서 사회민주당은 자당 후보를 사퇴시키고 힌덴부르크에게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힌덴부르크는 제1차세계대전 동안 독일을 지배한 과두의 한 명이었다.

사회민주당은 히틀러를 막기 위해 힌덴부르크에게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힌덴부르크는 7개월 뒤 히틀러를 수상으로 지명했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파시스트들에 맞서려면 국가나 자유주의적 중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대중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파시스트 정당 황금새벽당은 경제 위기를 이용해 부상했으나, 혁명가들이 광범한 세력과 함께하는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으로 크게 위축됐다 ⓒ출처 그리스 〈노동자 연대〉

파시스트들이 선거에서 수백만 표를 얻었다 해도, 거리에서는 우리가 다수임을 이해해야 한다. 최근 영국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 ‘기후 파업’,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프랑스에서 일어난 연금 개악 반대 파업을 떠올려 보라. 많은 나라에서 좌파는 우파보다 훨씬 큰 규모의 대중을 여러 번 동원할 수 있었다.

전략적 과제는 그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단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것을 넘어 파시즘을 직접 겨냥한 운동을 건설할 필요성을 설득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은 당연히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파시스트 조직을 직접 겨냥하여 단단한 파시스트 중핵을 더 폭넓은 연성 지지자들로부터 분리시켜 내야 함을 설득하는 것이 사활적이다. 오직 이런 식으로만 파시스트 조직을 깨부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가들은 선거나 의회에 활동의 초점을 두지 말아야 할 책무가 크다.

우리의 전문 분야는 아래로부터 운동과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다섯 번째 고려 사항은 ‘경제주의적’ 접근으로는 파시즘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의 정책이 우파적이고 그들이 실은 신자유주의자들이라고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파시즘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경제적 조건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식으로는 파시즘을 물리칠 수 없다.

인종차별이 하는 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인종차별은 파시스트들을 묶어 주는 핵심 기제의 하나다. 우리가 말뿐 아니라 실천에서 일관되고 단호하게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다면, 우리는 공동체들의 신뢰를 얻어 더 강력한 저항을 건설할 수 있다.

예컨대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은 대중적인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를 건설했다. 그 운동의 인상적인 점은 매번 새로운 파키스탄계 공동체가 참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반자본주의 좌파, 특히 SEK 활동가들이 파키스탄 공동체들을 향한 인종차별적 공격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속한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영국의 많은 도시에서 일부 무슬림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우리가 그들 편에서 행동한 덕분이다. 그들에게 파시스트에 맞선 집회에 오라고 하는 것은 호랑이 굴에 함께 들어가자는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그들을 방어하는 운동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 좌파가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파시즘을 저지하기 위한 혁명가들의 핵심 전술인 공동전선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혁명가들만으로는 파시즘에 맞선 운동을 건설할 수 없다. 일관된 반자본주의 강령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운동에 참여하는 데서 어떠한 장벽도 있어서는 안 된다. 더 폭넓은 좌파와 노동조합 운동과 동맹을 맺으려 부단히 시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공동전선이 필요하다. 공동전선은 단순한 연합이 아니라, 행동에서의 단결이다. 즉, 파시스트들의 본색을 폭로하고, 공론의 장에서 파시스트들을 몰아내고, 파시스트 조직을 압박하여 분쇄하기 위한 대중행동을 함께 건설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영국에서는 파시스트들과 맞서 싸운 매우 풍부한 경험이 있다. 1970년대에 영국의 국민전선은 제3당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1990년대에는 영국 국민당(BNP)이 약 50명의 시의원을 배출하고 100만 표를 받았다. 2010년대에는 잉글랜드 수호 동맹(EDL)이 거리에서 활개쳤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포함해 매우 다양한 파시스트 조직들을 물리쳤다.

어떻게 그랬을까? 혁명가들, 바로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공동전선의 전통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전략과 관련해 좌파와 더 광범한 노동조합 운동과의 논쟁에서 거듭 승리를 거뒀다.

그 결과 우리는 거듭 파시스트들을 박살 냈다. 왜냐하면 파시스트들이 결코 세력을 규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극적이게도 프랑스에서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연합과 그 전신인 국민전선이 40년 동안 프랑스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아주 위험한 상황이 됐다.

우리는 이런 점을 전략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이러한 전통에 기반하여 이전에도 그들을 격파해 냈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번에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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