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지상전으로 가자 학살을 재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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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인종 학살을 재개했다. 3월 18일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한 지 불과 72시간 만에 적어도 592명이 사망하고 1042명이 부상당했다(가자 보건 당국).
이스라엘군은 이제 지상전을 전개하고 있다.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넷자림 회랑을 장악해 남북 간 이동을 통제하고,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가자 남부의 라파흐를 침공했다.
이스라엘군은 라파흐에서 “테러 시설”을 파괴하고, 가자 북부 해안에서도 “하마스 지휘 본부”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지난 17개월 동안 숱한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면서 댔던 구실이다.
트럼프 정부는 즉각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의 공습 직후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은 “적대 행위 재개는 오로지 하마스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하마스가 인질을 석방하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폭격을 벌이기 며칠 전인 3월 14일 하마스는, 이스라엘-미국 이중 국적자 포로 1명을 석방하고 4명의 시신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하마스는 영구 휴전 협상을 위한 “분명한 계획”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이 학살을 재개한 것은 그런 계획에 합의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들은 네타냐후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전쟁을 재개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물론 네타냐후는 전쟁이 끝나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허를 찔린 책임을 추궁당할 처지에 있었다. 게다가 네타냐후는 이번 달 말까지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자동으로 정부가 해산되고 총선이 열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가자 학살을 재개함으로써 네타냐후는 지난 1월 휴전 합의에 반발해 연정을 탈퇴한 극우 벤그비르를 다시 끌어들여 연정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타냐후가 전쟁으로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그 전쟁을 지지하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따로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지난 1월 16일 합의된 단계적 휴전안은 애초에 온전히 실행될 가망이 별로 없었다. 네타냐후는 “하마스도, 팔레스타인 당국(PA)도” 향후 가자지구에서 아무런 구실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500일이 넘는 잔혹한 전쟁에도 하마스는 여전히 건재한데 말이다.
그럼에도 당시 트럼프는 네타냐후를 압박해 휴전을 성사시킨 뒤, 가자 주민들을 주변 아랍 국가들로 강제 이주시키는 구상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정리’하고 미국의 중동 지배를 강화하려는 시도다.
미국의 아랍 우방들은 그 구상을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국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에 협조해 온 것만으로도 자국 대중의 커다란 분노를 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시도는 모순에 부딪히면서도 일정한 효과를 냈다. 트럼프의 구상은 이스라엘의 인종청소에 힘을 실어 줬고, 아랍 정권들은 자신들의 ‘방안’을 부랴부랴 내놓아야 했다. 가자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지 않고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 당국에게 가자지구를 맡기는 안이었다.
한편, 아랍에미리트(UAE)는 뒤에서 강제 이주 구상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그 구상을 받아들이도록 이집트를 더 압박해 달라고 트럼프 정부에 로비를 한 것이다.
주변국들의 이런 요지경 속에서 하마스는 합의된 휴전 단계를 실현하는 데 매달렸다. 심지어 종전 협상을 위해, 가자지구 통치권을 팔레스타인 당국에 넘기라는 아랍 정권들의 방안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단지 통치권뿐 아니라 무기까지 내려놓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마스는 저항을 포기할 수 없다.
트럼프 정부는 자신이 중재한 휴전이 더는 유지될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이 가자 학살을 재개하는 것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
더 나아가 트럼프는 더 공세적이 된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기를 바란다. 이스라엘이 공습을 시작하기 전 미국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를 겨냥해 공습을 벌였다. 후티는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항의해 군사 행동을 벌인 세력이기도 하다.
국가안보 장관으로 연정에 복귀한 벤그비르 등 이스라엘 극우는 트럼프의 전폭 지지 속에서 인종청소 완수라는 그들의 꿈이 한발 더 가까워졌다고 여긴다.
그들은 가자지구에서 좀 더 과감한 작전을 벌이면 하마스를 와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개전 이래 드러난 이스라엘의 지상전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하마스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스라엘이 무지막지하게 학살을 재개했음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에게 투항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하마스의 굴복이 본격적인 인종청소로 이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들은 네타냐후의 전쟁 재개에 반발하는 이스라엘 내 시위대를 집중 조명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회 전체의 합의된 견해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궤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난관에 부딪힐수록 그 방식과 우선순위를 두고 갈등이 첨예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희망은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그에 연대하는 아랍과 세계의 반시온주의 운동에 있다.
가자 학살 재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정리’하고 이란에 맞서 이스라엘과 아랍 우방들을 결집시킨다는 애초 트럼프의 구상도 더욱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모순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저항의 기회를 열 수 있다. 이스라엘이 폭격을 재개한 바로 다음 날 모로코에서는 2023년 10월 이래 가장 큰 집회가 열려 이스라엘과의 단교를 요구했다.(모로코는 트럼프 1기 때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중동 국가의 하나다.)
국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다시 중요해졌다. 이스라엘이 공습을 벌이기 전 트럼프가 미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캠퍼스 점거 운동 리더 마무드 칼릴을 탄압한 것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국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반대의 예봉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연대자들은 굳건히 연대 운동을 유지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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