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악 후폭풍:
소득대체율 ‘찔끔’ 인상을 능가하는 보험료 대폭 인상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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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된 이후로도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국회 통과를 주도한 여야 모두와 청년과 중장년층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세대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3월 20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는 40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43명이 기권했다.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의원들도 모두 반대했고 심지어 합의한 민주당과 국힘에서도 반대표가 적지 않게 나왔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8퍼센트가 찬성, 41퍼센트가 반대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각각 39퍼센트, 46퍼센트로 반대가 더 많았다.
대다수 언론들이 ‘더 내고 더 받는 개혁’이라고 떠들지만 이런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월 300만 원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보험료는 내년부터 8년에 걸쳐 0.5퍼센트포인트씩 오른다. 현재 27만 원인 보험료는 (임금이 그대로라고 가정하면) 8년 뒤 39만 원으로 12만 원이나 오른다. 생계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보험료가 월 12만 원이나 오르는 것은 매우 큰 부담이다.
노동자들의 경우 사용자가 보험료 절반을 부담하지만, 사실 사용자의 보험료 부담은 마땅히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의 일부를 적립하는 것일 뿐이다. 사용자들은 보험료 인상을 핑계로 추가 임금 상승도 억제하려 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자영업자이거나, 고용 관계가 불명확한 임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들의 경우 보험료를 전액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반면, ‘더 받는’ 금액은 생색내기 수준도 안 된다. 2026년에 입사해 40년 동안 보험료를 내도 고작 월 9만 원을 더 받게 될 뿐이다. 앞으로 40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는 데다 실제로 가입기간 40년을 채우는 경우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로는 가입기간이 25년을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실제 인상액은 3만~4만 원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보험료 인상에 입꾹닫
보수파 가운데 국힘의 일부 의원들과 개혁신당 등은 이런 보험료 인상을 두고 왜 청년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느냐고 따진다.
그러나 보험료와 연금의 비율이 얼마가 되든 사회 전체로 보면 현 경제활동 인구가 노인 등 비경제활동 인구를 부양해야 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개인으로 보자면 오롯이 자기 임금(과 소득)만으로 부모와 자식을 부양하든지, 아니면 보험료나 세금으로 노인들에게 생계비를 제공하든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자의 경우 부유층에 유리하고, 후자의 경우 저소득층에 유리하다. 보험료나 세금으로 지급하는 연금 제도의 경우 재분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쟁점은 세대 간 부담 비율이 아니라 계급 간 부담 비율이다.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는 공적 연금 제도가 운영되는 나라들 중 기업주 부담이 유난히 낮다. 정부의 재정 지원도 없다. 세금의 경우 보험료에 비해 재분배 효과가 큰 편이므로, 보험료로만 운영되는 한국의 국민연금은 기업주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더 크다.

그런데 진보 단체들과 ‘진보’ 언론은 보험료 인상에 관해서는 ‘입꾹닫’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보험료가 아니라 소득대체율이 문제다”라는 성명을 냈다(강조는 필자). 진보당도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은 문제삼지만 보험료 인상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보험료가 대폭 오른 반면 소득대체율이 “찔끔” 올랐다고 비판했지만, 보험료율을 13퍼센트로 인상하는 것에는 찬성해 왔다.
이는 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려면 노동자들의 보험료 인상도 불가피하다는 관점의 반영으로, 현재 한국 연금제도에 내재된 근본적인 불평등을 못 본 체하거나 용인해 주는 효과를 낸다. 그러면, 노동자 등 서민층과 저소득 자영업자 등이 보험료 인상에 대해 갖는 불만에도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공장 정규직 등의 이익만 지키려 한다는 우파의 비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에 좌파가 이런 입장을 취한다면 취약계층을 우익의 먹잇감으로 내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서구에서도 극우 정당과 트럼프 같은 자들은 이처럼 중도 좌파가 방어하기를 거부한 노동계급 내 취약계층의 소외감을 파고들었다.
한편, 민주노총은 얼마 전 정년 연장 요구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는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로 미뤄진 반면, 정년은 여전히 60세인 현실에서 소득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나 저소득 자영업자들, 무엇보다 노쇠한 몸과 정신으로 버텨 내기 어려운 일자리에 있는 광범한 노동자들을 고려하면 정년 연장이 아니라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낮추는 것이 진정한 대안이다. 당연히 만만찮은 투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노동계급 운동이 연금 개악에 반대하며 정년 단축을 주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정년 연장 요구가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조건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본말이 전도된 ‘개혁’
사실 연금 ‘개혁’에 관한 주류 정당과 기성 언론의 태도를 보면 본말전도의 끝판왕을 보는 듯하다. 곧, 기금을 지킬 목적으로 연금을 개악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OECD 내 압도적 1위다. 2009년 통계를 발표한 이래로 내내 그랬다. 평균치의 3곱절을 웃돈다.
노인자살률도 OECD 내 압도적 1위이고 한 번도 그 자리를 다른 나라에 내준 적이 없다. 노인빈곤은 노인자살의 제1원인이다.
2023년 말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중 절반은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이지만, 2025년 기초연금의 최대 금액은 단독가구 기준 월 34만 2510원으로 최저생계비(기준 중위소득의 60퍼센트) 143만 5208원의 4분의 1도 안 된다.
국민연금을 받아도 생계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2023년 12월 기준 국민연금 노령연금 평균급여액은 월 62만 원으로 노후최소생활비 136만 원의 45.6퍼센트 수준이다(국민연금연구원).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도 빈곤선 156만 5000원과 비교해도 39.6퍼센트밖에 안 된다.
이런 노인들을 빈곤과 죽음의 구렁텅이에 방치한 채, 1200조 원 넘게 쌓여 있는 연금이 수십 년 뒤에 고갈된다며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을 보면, 자본주의가 얼마나 탐욕스런 체제인지 알 수 있다.
연금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지금 노인들에게 충분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초연금을 대폭 인상하고 지급 대상도 확대해야 한다. 기업주·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연금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