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파키스탄, 카슈미르 두고 전쟁 일촉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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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단된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전쟁 일촉즉발에 있다. 카슈미르 지역은 세계에서 군대가 가장 밀집해 있는 곳 중 하나다.
인구 다수가 무슬림인 이곳의 통제권을 두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네 차례 전쟁을 벌인 역사가 있다.

이 두 핵무장 국가들이 카슈미르 안에 그어진 “실질 통제선”을 사이에 두고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4월 24일 목요일에 서로를 향해 발포했고, 현재 양국 정부는 긴장을 고조시키려 하는 듯 보인다.
인도 정부는 교전 소식을 빌미 삼아, 파키스탄으로 흐르는 인더스강과 그 지류 두 개의 흐름을 차단할 수 있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 파키스탄의 농업과 전력 생산에 중대한 차질을 빚을 것이다.
그런 만큼 파키스탄 정부가 이를 “전쟁 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대응한 것은 놀랍지 않다.
이번 충돌의 계기는, 4월 22일 화요일에 인도령 카슈미르의 휴양지 파할감에서 벌어진 테러 공격으로 최소 26명의 관광객이 살해당한 일이었다.
스스로를 ‘저항 전선’이라고 밝힌 어느 신생 단체가 이 공격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파키스탄에 기반한 이슬람주의 단체이자 폭탄과 총을 동원한 공격으로 유명한 ‘라쉬카르 에 타이바’의 일파라고 알려졌다.
‘라쉬카르 에 타이바’는 2008년 뭄바이 테러 공격으로 175명을 살해했다.
인도 정부는 이번 공격의 배후에 다름 아닌 파키스탄 국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도 역시 지난 수십 년 동안 카슈미르 지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테러를 자행해 왔다. 인도는 카슈미르에서 대(對)인도 독립 투쟁을 분쇄하려 기를 쓰며 표적 살해, 고문, 강간을 일삼았다.
인도는 최대 70만 명의 보안군을 투입해, 인구가 1400만 명이 채 안 되고 그중 70퍼센트 가까이가 무슬림인 인도령 카슈미르를 통제한다.
2019년에 인도는 인도령 카슈미르의 “특별 자치 지위”(무슬림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부여했다)를 박탈하는 것으로 탄압을 더한층 강화했다.
인도는 전화와 인터넷을 차단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모든 주요 도로에 경찰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이 지역을 사실상 봉쇄했다.
이런 조치로 카슈미르인들의 분노를 억누를 수 있을지 몰라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카슈미르의 많은 무슬림들은 인도에 속하기를 거부한다. 힌두교 우월주의 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카슈미르가 파키스탄에 속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이는 수십 년에 걸친 반란의 기반이 됐다.
그러나 카슈미르 좌파 다수를 비롯한 많은 카슈미르 사람들은 파키스탄과 인도 모두에게서 독립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독립 문제를 놓고 주민 투표를 실시하기를 바란다. 유엔은 1948년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직후 주민 투표 시행을 약속한 바 있다.
카슈미르에 대한 통제권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의 기원은, 인도아대륙 전체가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영국의 분열 지배 수법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영국이 인도 아대륙을 분할해 파키스탄을 건국한 1947년 당시, 잠무·카슈미르주(州)는 인구 다수가 무슬림이었지만 그 지배자는 힌두교도였다. 그가 카슈미르가 인도·파키스탄 중 어느 쪽에 속할지를 두고 우유부단하게 굴자, 파키스탄 게릴라들은 국경을 넘어 왔다. 인도군은 그들을 쫓아낸다는 명분으로 카슈미르를 침공했다.
이후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의해 분할됐고, 그 둘보다 적지만 중국도 일부 지역을 차지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인들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경계선을 그었다. 가족들이 생이별당했고 분쟁이 고착화됐다.
오늘날 카슈미르에 필요한 해법은 이 경계선 일체를 없애 버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들 간 경쟁이 이토록 첨예한 상황에서, 그런 해법은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에서 벌어지는 혁명적 운동을 통해서만 실현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