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펙 정상회의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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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펙(APEC) 정상회의의 성과를 찬양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성과라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이로운 것인가?
이재명 정부는 아펙 정상회의 중에 열린 한·미 양자 협상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적극 협력하는 한편, 미·중, 한·중 양자 협상으로 중재자 구실을 각인시키며 아시아에서 나름의 주도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
 
 그러나 한국은 더 첨예한 경쟁의 장이 됐을 뿐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받아 핵무기 보유로 나아가는 길의 빗장을 풀자, 중국은 “한미 양측이 핵 비확산 의무를 이행하라”며 곧바로 견제에 나섰다.
이번 아펙 정상회의 의제의 하나인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는 근래에 무역 전쟁으로 강화된 보호무역주의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이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의장국 한국의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와 시진핑은 이번에 잠시 숨만 고르는 합의를 했을 뿐 미·중 패권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회의의 또 다른 주요 의제 자체가 그런 경쟁과 밀접하게 관련있다. 바로 AI다. AI는 아펙 정상회의와 함께 진행된 ‘아펙 CEO 서밋’의 핵심 의제이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을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만든다는 이재명 정부의 야심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에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는 ‘아펙 CEO 서밋’에는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핵심 인사들과 각국 관리들이 모여 SK, 삼성 등 한국의 기업주들과 교류하고 투자를 약속했다.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유치하는 장이었던 것이다.
또, 이재명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와의 협력을 통해 그 경쟁에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이재명 정부가 이번 아펙 정상회의 기간 동안 미국과 AI 수출 통제 협정을 맺은 것도 그 일환이다.
AI는 현재 국가와 자본의 융합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분야다. AI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과, 막대한 기반 시설을 필요로 하는 산업 자체의 특성 때문이다. 그리고 투자가 막대할수록 국가와 자본은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면 싸움의 방식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AI 경쟁이 제국주의 경쟁의 일부로서 파괴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는 이유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의 편에서 그런 경쟁에 적극 뛰어들고자 하는 것이다. AI 경쟁력 강화는 세계 군비 경쟁을 부채질하는 무기 산업을 북돋는 것과도 직접 관련있다.
AI 경쟁은 기후 혼돈 또한 심화시킬 것이다. 세계에너지기구는 데이터센터의 소비 전력량이 2030년에 이르면 945테라와트시를 넘을 것이라고 추산한다.(이는 일본 전체의 사용량과 맞먹는 양이다.)
그러나 아펙 정상회의의 또 다른 의제인 “기후 변화 대응”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아펙 회원국 에너지 장관들이 발표한 선언문에는 화석연료의 “화”도 나오지 않는다. 이들은 기후 위기를 이용해 이윤을 획득하는 방안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한편, 미래 성장의 견인차로 여겨지는 AI 산업은 어마어마한 버블 붕괴로 이어질 조짐도 커지고 있다.
요컨대 이번 아펙 정상회의는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제국주의 경쟁과 기후 재앙에 불을 지피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