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익히는 마르크스주의 6:
국제법 등 사법제도에 기대를 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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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형성된 국제 질서를 가리키는 ‘규칙 기반 국제 질서’는 가자지구 인종학살도, 수단의 참극도, 그밖에 수많은 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충돌도 막지 못했다.
그런데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국제법을 중시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법을 그저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사기극이라고 치부하지는 않는다.
카를 마르크스는 정치 활동 초기에 법철학을 공부했다. 당시 많은 급진주의자들은 법을 완벽하게 다듬는 것이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 길이라고 여겼다.
1842년 급진적 신문에 글을 쓰던 당시 마르크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땔나무를 모을 권리를 박탈하는 법이 제정된 것을 비판하는 기사를 여러 편 발표했다.
훗날 마르크스는 자신이 ‘땔나무 절도 단속법’을 다루면서 사회주의 정치를 발전시켰고, 그의 관심이 순수한 추상적 정치에서 경제적 조건으로 옮겨 갔다고 회고했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법률·법령들을 내세우며, 군주와 왕들이 제멋대로 지배하던 것과는 다른 합리적인 체제를 자처할 수 있었다.
19세기에 발전한 사법제도는 개인의 권리라는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 사법제도는 식민지 약탈과 노예 노동 등 부의 새로운 원천을 보호할 필요성에 따라 형성됐다.
마르크스가 땔나무 채집꾼들에 관한 기사를 쓴 바로 그해에 영국 정부는 중국 난징을 전함으로 위협해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영국은 홍콩을 합법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됐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법이 추상적 원칙이나 영원불변의 사상을 구현한다고 보지 않는다. 국제법은 국경을 넘나드는 시장 질서를 규율하는 법인 해사법(海事法)·상법으로부터 발전해 나왔다.
국가는 우리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개개인은 부와 권력 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지만 평등과 공정이라는 외피가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사법제도는 자본주의 국가의 통합적 일부다. 자본주의 국가는 계급 적대를 초월해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부유층·권력층을 수호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새로운 지배계급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당신들의 법이란 당신네 계급의 의지, 당신네 계급의 경제적 존재 조건에 의해 본질적 성격과 방향이 결정되는 그 의지를 만인을 위한 법인양 만든 것에 불과하다.”
국제적 차원에서 법은, 자신의 의지를 세계에 강제할 수 있는 경제력·군사력을 갖춘 주요 강대국들의 이익을 수호한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인권에 관한 국제 협약이 급격히 늘었다. 그런 협약들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강력한 문제의식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국제 협약·규칙의 이행 여부는 국민국가들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어느 독재자가 용인되고 심지어 지지받을 수 있는지, 어느 나라가 “불량 국가”가 될지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최강대국들이다.
국제법은 제국주의 세력에 결코 일관되게 맞설 수 없고, 오히려 그 세력을 정당화하는 데에 일조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법리 논쟁을 진지하게 여긴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 마르크스주의 법이론가 예브게니 파슈카니스는 《법의 일반이론과 마르크스주의》(1924)를 썼다. 그 책에서 파슈카니스는, 법이 사회적 관계와 분리돼 있다고 주장하는 “순수 법 이론”이란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파슈카니스는 법이 남용되는 개별 사례들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다. 법 자체가 계급적 이해관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법제도의 작동에 반대하는 것은 장막 뒤에 은폐된 계급 지배를 들춰 내는 작업의 일환이다.
기존의 법률적 권리를 확장하거나 사법제도를 완벽하게 다듬는 것으로는 사회를 탈바꿈시킬 수 없다. 사회주의는 지배계급을 혁명적으로 전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법은 중요하다. 법은 우리의 민주적 권리를 박탈할 수도 있고, 제국주의자들의 폭력을 폭로하는 데에 이용될 수도 있다. 부정의한 법에 맞선 저항은 체제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부정의한 법과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는 최상의 길은 법정을 통하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미국 미니애폴리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거리와 일터에서의 저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