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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내란 청산과 극우 팔레스타인·중동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사법부 독립 또는 견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과 사법의 기능: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법원이 군사 쿠데타 세력을 비호하면서 사법부의 권위가 크게 불신받고 있다. 지난 5월 한겨레와 정당학회가 실시한 ‘2025~26 유권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국가기관 신뢰도에서 법원의 신뢰도는 검찰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반면, 지난해 12월 조사에서 법원 신뢰도는 헌법재판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었다(〈한겨레〉 5월 15일 자).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 기도는 정치 시스템 전반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재명 정부는 내란 청산을 내걸고 당선됐지만, 국가기관 내 우익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 핵심에 사법부가 있다. 법원은 노골적으로 내란 청산에 제동을 걸고 있다.

내란 청산에 제동을 거는 사법부의 반동적 태도를 비판하며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일부 사법개혁안, 가령 대법관 증원은 피해자이든 피의자이든 신속한 재판을 받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일부 개혁안들이 보통 사람들에게 얼마간 이롭다 해도 법치주의에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윤석열은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했음에도, 그것이 “반국가 세력”의 헌정 질서 “유린”이라는 존재론적 위협으로부터 법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권한이 헌법에 명시돼 있다는 사실을 내세운 것이다. 법치의 경계를 넘어 행동할 권한이 역설적으로 법에 명문화돼 있는 것이다.

독일 나치 정권도 집권 동안 자유주의적인 바이마르 헌법을 폐지하지 않고 “유예”하거나 효력을 정지시키기만 했다. 나치는 헌법을 유지해 합법성의 외관을 띠고 권력 이양의 근거로 활용했다. 1933년 3월 제정된 수권법(전권위임법)은 바이마르 헌법에 근거해 통과됐다. 법률적으로 말하자면, 나치의 “무법성”은 사실 자유주의적 헌정 국가였던 바이마르 공화국에 근거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카를 마르크스도 1848년에 제정된 프랑스의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헌법에 예외 조항이 명시돼 있는 모순을 지적한 바 있다. “프랑스 헌법은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법으로 정해졌거나 앞으로 정해질 예외를 단서로 단다!“(강조는 마르크스 자신의 것)

한국의 헌법에도 예외조항(가령 제37조 제2항)이 있다. 이 조항에 근거해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헌법의 상위법 노릇을 해 온 것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발터 벤야민은 “비상사태”에 “진정한 비상사태”로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 폭력을 상대할 때 법치의 틀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 폭력이 법적 형식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부와 정의

먼저 지적할 점은 사법부와 정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되면 운동의 슬로건인 정의가 국가 권력과 동일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행정부·입법부와 함께 (실제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국가 권력의 일부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권력 분립은 허상이다(관련 기사: 최일붕, ‘삼권분립은 환상이다’). 자본주의 국가 권력은 복합적 통일체다.

2017년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 농단으로 드러난 권력 3부 간 삼각 거래는 국가 권력이 복합적 통일체임을 잘 보여 준다. 법원은 박근혜의 청와대가 여당을 움직여 법원의 요구(대법원의 위상을 최고 사법기관으로 확고히 하는 것)를 들어주기를 원했고,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의 안정적 통치를 뒷받침하는 식으로 사법권을 행사했다. 그 거래의 희생자들은 보통 사람들이었다. 일제 강제 징용·동원의 피해자들, 유신 독재 피해자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쌍용차 노동자들, KTX 노동자들 등. 사법부가 국가 권력의 억압적 기관임이 드러나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급증했다.

윤석열의 군사 쿠데타는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형태를 권위주의적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였다. 개혁주의자들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복원·강화해 이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위기는 지배자들에게 막다른 골목이다. 러시아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법학자 예브게니 파슈카니스(1891~1937)는 1924년에 출판된 《법의 일반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서 비상사태 시기에 “법치 국가는 더욱더 실체 없는 환영”이 된다고 썼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격렬해지면] 부르주아가 법치 국가라는 가면을 완전히 버리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가하는 조직된 물리력이라는 권위의 본질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이 번역한 이 글의 국역본이 인터넷상에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사회의 개혁을 위해 자본주의 국가를 점진적으로 민주화하려고 애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자본주의의 정상화를 추구하지만, 시스템의 심각한 위기는 이 목표를 점점 더 실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다시금 정치 위기, 극우의 부상, 국가의 권위주의 경향을 촉진할 공산이 크다.

법적 상부구조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정한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 단계에 상응하는 생산관계다. 이 생산관계 전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이룬다. 이 경제구조야말로 진정한 토대이고, 그 위에 법률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사회적 의식의 일정한 형태도 그 토대에 상응한다.”

법은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토대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 토대 위에서 제정되고 변천하며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형식적 평등 원칙은 자본주의 법의 근간이다. 그러나 그 원칙은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착취적 본질을 은폐하며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한다. 따라서 자본의 지배는 법의 지배(법치)로 나타난다.

형식적 평등 원칙은 또한 시장경제가 기능하기 위한 필수 전제이기도 하다. 시장경제는 두 상품(노동력을 포함해) 소유자가 상품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조건을 필요로 한다.

파슈카니스는 이런 교환 행위(계약)가 경제뿐 아니라 자본주의 법의 중심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법 이론에 적용해 “법형태(법적 관계)는 상품관계의 반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계약이 이행될 것임을 보증하는 장치가 바로 국가의 입법·사법·행정 기능이라고 한다. 이는 계약이 이뤄지는 개인들의 관계뿐 아니라 형법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처벌(형벌 선고)은 “지불” 형태로 나타난다. 파슈카니스는 이렇게 썼다.

“자유의 박탈(법원의 판결에서 지시한 한정된 기간)은 현대, 즉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형법이 등가 응보의 기초로서 실행하는 특유한 형태다. 이러한 방법은 추상적 인간, 추상적 인간 노동시간이라는 개념과 깊숙하게,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연결된다. 19세기에, 즉 부르주아 사회가 완전히 발전되고 그 모든 특징이 굳건해졌을 때, 이러한 처벌 형태가 강력히 성장하고, 결국 자연스럽고 예상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론 고대에나 중세에도 감옥이나 성 안의 지하감옥이 다른 물리적 강압 수단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수감자가 보통 죽을 때까지 또는 몸값을 지불할 때까지 갇혀 있었다.”

이렇듯 자본주의 법률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상응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법률은 역사적으로 규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법적 상부구조(또는 상부구조 전체)가 노동계급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노동자들은 법적 영역에서 투쟁하고 있다. 권리와 자유를 쟁취·확립·수호하는 것은 향후 투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확보해 준다. 경제적 토대가 결정적이고 상부구조는 그것의 수동적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관계 없는 기계적 유물론일 뿐이다.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에는 상호 작용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경제 상황이 토대입니다. 그러나 상부구조의 다양한 요인들(계급투쟁의 정치적 형태와 그 결과, 더 정확히 말하면 전투에서 승리한 계급이 만든 헌법 등의 법률 형태, 심지어 이 모든 실제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머릿속에 반영된 것들, 즉 정치적·법률적·철학적 이론, 종교관 그리고 이것이 더 발전한 교리 체계)도 역사적 투쟁의 전개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많은 경우 역사적 투쟁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블로흐에게 보낸 1890년 9월 21~22일자 편지)

착취와 차별을 합리화하는 법률과 법원(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다. 이때 진정으로 중요한 쟁점은 이런 상황을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증상으로 여기고 그 위기를 가속시킬 계급투쟁을 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개혁주의가 그렇듯) 사법부의 독립을 추구하며 체제를 정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인지 하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서 법은 중립적·자율적인가?

개혁주의자들의 전반적 접근법은 법을 경제적 토대와 (얼마간) 분리된 중립적·자율적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이 ‘토대’와 ‘상부구조’를 기껏해야 은유로 보는 이유다. 경제가 법의 적용과 집행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이 허용하는 틀 내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사법 중립성 착각 때문에 일부 좌파는 입법권에 의해 법이 임의로 개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가령 입법을 통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어긋난다며 반대한다.

이것은 국가 권력을 지배계급에 유리하게 작동하지 않는 중립적·자율적 권력으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하는 견해다. 이로부터 운동의 요구를 “사법부 견제”에 맞춰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다.

사법부 견제든 사법부 독립이든, 판사들이 적용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제정한 법률이다. 그래서 이들의 ‘독립 보장’은 (법의 계급적 본질을 가린 채)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의 실재하는 지배-종속 관계를 은폐하는 구실을 한다. 판사의 개인적·기능적 독립성이나 사법 절차의 추상적 자율성만으로는 공정한 판결을 보장하지 못한다.

대중 투쟁의 중요성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 과정에서 확보된 자유주의적·법적 성취와 그 뒤 노동계급이 이룩한 성취가 심각한 자본주의 위기의 시기에는 도전받는다. 피지배 대중의 전진을 막기 위해서다.

이것은 노동계급의 저항 능력을 위협하고 공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배 계급의 취약성과 모순을 드러내 저항 운동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에 초점을 맞추고 일부 우익적인 판사들을 제거하는 것으로 투쟁의 목표를 맞춘다면, 운동의 전망을 협소하게 제약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위기 탈출에 여지를 주는 것이다.

민주주의 투쟁을 사회의 위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각종 저항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럴 때 억압과 착취와 차별의 문제를 법이라는 협소한 틀에 욱여넣으려는 기성 질서에 맞서는 투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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