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르크스주의자의 눈으로 돌아본 문재인 정부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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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월 13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발제자의 정리 부분은 내용을 일부 보강했다.
1. 촛불의 기억
지난해 말 문재인이 박근혜를 특별사면하자,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하는 자조 섞인 불만이 터져 나왔다. 촛불 정부를 자임해 놓고 개혁 배신을 일삼아 왔기에 박근혜 사면은 그런 배신의 정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주류 양당의 대선 후보들은 박근혜 사면에 찬성했다. 이재명은 2016년 촛불집회 첫날부터 박근혜 퇴진 연설로 뜬 인물이고, 윤석열은 박근혜를 구속시킨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이었다. 변화를 바랐던 대중에게는 정치가 촛불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환멸감을 줬을 것이다.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은 광범한 대중의 반부패 민주주의 운동이었다. 그 운동의 등장에는 ① 총선 참패로 박근혜 정부의 권위 실추 ②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한진해운 퇴출 등) 산업 구조조정이 촉발한 지배계급의 분열 ③ 그런 분열이 초래한 박근혜 부패의 폭로 ④ 박근혜가 추진한 노동 개악(해고는 쉽게, 임금은 낮게 만들려던 성과연봉제/성과퇴출제로 불렸던)에 반대하는 노동자 투쟁이 작용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경제 회복의 부진과 노동조건 악화, 세월호, 한일 위안부 합의 같은 대중의 누적된 불만이 있었다.
노동자 투쟁 중에서도 특히 철도노조 파업이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의 방아쇠 구실을 했다. 10월 29일 첫 촛불집회의 중심 대열이 철도노조 조합원들이었다. 당시 노동자연대 단체는 10월 29일 집회를 열어 박근혜 퇴진 투쟁을 개시하자고 한 첫 제안자였다. 또한 우리는 그 국면에서 철도 파업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에 철도노조의 전투적 활동가들과 협력해 파업이 지속되도록 애썼다.
촛불 운동은 2주 만에 서울 도심의 100만 명 집회로 도약했다.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그 견인차였다. 운동이 확대되자 검찰은 최순실을 기소하면서 현직 대통령을 사실상의 공범으로 명시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분열해 소속 의원 3분의 1이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에 찬성하고 탈당해 버렸다.
그러는 동안 촛불 운동 내 개혁주의자들과 민주당은 3차례 시도 끝에 철도 파업을 중단시켰다. 운동의 헤게모니를 공식 정치 쪽으로 가져가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를 통해 개혁 염원을 실현시키려는 온건한, 위로부터의 개혁주의가 운동의 헤게모니를 쥐게 됐다.
촛불 운동은 박근혜를 쫓아내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운동은 더한층의 급진화로 나아가기보다는 민주당 집권으로 수렴됐다. 이와 함께, 운동 내 개혁주의 세력도 지지 기반을 넓혔다. 정의당과 민주노총(한국노총도)은 선거 득표 증가와 노조 가입 증가를 이뤘다. 진보당도 박근혜가 해산시킨 조직을 문재인 정부 들어서 재건할 수 있었다.
2. 문재인 정부의 등장과 ‘개혁’의 성격
문재인은 촛불 운동 초기에 박근혜 퇴진 요구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야 촛불 운동에 올라타 운동의 성과를 가로채고 집권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임무는 대중의 불만을 달래고 정치적 양극화를 억제해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자본 축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노동계급에게는 작은 양보를 하면서 더 큰 노동 개악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한국 경제의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바이오헬스, 수소차,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들에 투자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 여기에 노동 유연화도 포함된다. 문재인 정부는 법무부 규정까지 바꿔 이재용을 사면해 줬고, 신산업 지원을 위해 대일 민족주의 정서도 활용했다.
이런 친기업 환경 조성은 지정학적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지배계급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왔다. 박근혜 정부도 오락가락하다가, 임기 말에 한일 위안부 합의와 사드 배치 등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길로 나아갔다.
문재인은 이런 박근혜 정부 후반기 기조를 계승했다. 임기 첫날부터 사드 배치 공사를 강행했다. 그리고 심지어 박근혜보다 더 노골적으로 군사력 강화에 매진했다. 국제 질서 불안정과 세계적 경쟁 격화 속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해제했고, F-35 같은 첨단 무기를 대량 구입했다. 역대 최대 국방비를 기록하며 군비를 대폭 강화해 한국은 동아시아 군비 경쟁의 한 주역으로 발돋움했다.
문재인은 박근혜와 달리 남북한 간 평화를 강조했다. 해외투자 유치에 한반도 긴장이 리스크 요인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평화운동가들은 박근혜 때와 마찬가지로 탄압받았다.
이런 모순된 임무를 띠는 중도 정부는 좌우 모두에게 공격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돼야 마땅하다. 이 점에서 운동 내 개혁주의자들이 정권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전반부 기간 동안 그들의 태도는 결정적으로 문제적이었다.(이 점은 뒤에서 살펴보겠다.)
3. 문재인 ‘촛불 개혁’ 놀음의 실상
문재인의 줄타기가 성공하려면 개혁주의자들을 포섭해야 했다. 그래서 문재인은 운동의 개혁 의제를 수용해 사기극을 펼치고 노동운동 지도자들과의 사회적 대화를 활용하려고 했다.
지금 이것들 중 지켜진 약속은 거의 없다. 유형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줬다 뺏기: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대표적인 줬다 뺏기 공약이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경제 성장과 ‘노동존중’을 결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률 지표가 악화되자 소득주도성장은 립서비스에서도 사라졌다.
② 줄 듯하며 약 올리다가 안 주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나 탈핵, 여성 차별 해소, 세월호 진상 규명 문제 등이 대표적으로 줄 듯, 줄 듯하다가 끝내 배신한 문제들이다. 가령 사법부가 낙태죄 폐지를 결정했는데도 그에 따른 조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돌봄에 대한 투자도 크게 미흡했고, 주로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시간제 일자리의 개선은 전혀 없었다. 최근의 안티페미니즘 백래시는 우파가 문재인의 개혁 배신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이용해 반사이익을 얻으려고 펼치는 캠페인인데, 이것이 다소 반향을 얻은 이유다.
③ 대국민 사기극: 개혁이 아닌 것을 개혁인 것처럼 대중을 속인 것도 있다. 부동산 정책과 검찰 개혁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가장 환멸을 느낀 것도 이 문제들이었다. 부동산 정책은 빚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박근혜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을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투자 시장화를 가속시켰다. 최근엔 부동산 과열을 억제한다며 아예 노동자·서민층의 대출을 막아 버렸다.
문재인은 위기에 처할 때 반우파 정서를 자극하려고 ‘민주개혁’ 의제들을 꺼내들었다. 양승태 재판 거래, 기무사의 촛불 운동 무력 진압 검토 문건 폭로 등이 그런 사례였다. 그러나 전 기무사령관 자살 등 반발이 거세자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이 흐지부지된 수사의 총책임자가 윤석열이었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그러다 그와 사이가 틀어지자 이번엔 윤석열을 겨냥해 “역적 검찰을 때려잡자”며 검찰개혁을 강행했다. 이처럼 검찰개혁은 처음부터 사이비 민주개혁이었다. 남은 것은 ‘검찰2’ 공수처와 경찰 권한 강화뿐이다.
④ 민주개혁 빙자한 개악 시도: 문재인 정부는 민주개혁을 빙자해 개악도 시도했다. 역사왜곡금지법, 언론중재법 등은 언론·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개악인데, 다행히 이 법들은 통과되지 않았다.
4. 우파의 회복
결국 문재인 정부는 개혁 배신으로 지지율이 추락하고 위기를 겪고 있다.
두 번의 심각한 지지율 위기는 공교롭게도 선거 압승 후 찾아왔다. 그런 위기 때 문재인과 민주당은 우파의 재기를 경고하며 노동운동 지도자들과의 사회적 대화를 꺼내 놨다. 2018년 하반기 경사노위 출범, 2020년 코로나 극복 노사정 잠정합의와 중대재해법 제정(협상) 등이 그런 경우였다.
그런 방법은 거듭될수록 실체가 드러나 힘을 잃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두 번이나 지도부의 사회적 대화 추진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것이 광범한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도리어 정치적으로는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고, 그에 반해 좌파 진영은 존재감을 점차 잃어 갔다.
사실 우파는 문재인 임기 초반에는 분열과 신뢰 실추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결국 문재인의 개혁 배신이 누적되면서 회복의 계기를 잡았다. 우파는 개혁 배신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개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혁 약속은 위선이었다. 그러므로 촛불에 참여했거나 지지한 것은 괜한 짓이었다(이용만 당한 것이다).’ 그렇게 사기가 저하된 대중의 일부를 공략해 반사이익을 얻었다. 조국 논란이나 부동산 가격 폭등은 그렇게 하기에 아주 유리한 소재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안티페미니즘 공세도 일부에게 먹힌다.
현재 지배계급 다수는 지연된 개악의 속도를 높이길 기대하며 국민의힘으로 정권이 교체되길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충분히 단결을 회복하지 못했음도 거듭 드러나고 있다. 자본가들은 윤석열이 문재인 실망층에게 맵시 있게 다가가 자기들의 어젠다를 설득하며 지지를 다지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 정권 교체 여론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실한 정권 교체를 위해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지배계급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지배계급의 지지를 놓고 보수 세력의 눈치를 더욱 보게 만든다. 그래서 문재인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민주노총 집회 탄압,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 이재용·박근혜 사면 등의 우파와 보수적 경쟁을 하는 데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민주당 주류와 기반이 다소 달라서 개혁 염원층의 지지를 받았던 이재명도 당선을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좌우 줄타기,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비토 정서를 극복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선거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지지층을 배신하거나 혼란스럽게 해서 결국에는 우파를 유리하게 만드는 해로운 일이다.
5. 개혁주의의 부진
문재인 정부가 개혁에 실패한 것에 더해 팬데믹, 경제 침체, 국제질서 불안정, 기후 등 복합 위기는 정치적 양극화를 좀 더 심화시킬 것이다.
이런 그림의 한 측면은 지배계급이 오른쪽으로 결집하는 것이다. 아직 충분치 않아도 말이다. 문제는 왼쪽이다. 결집의 구심이 강하지 않다. 오히려 민주노총, 진보당, 정의당 등 주요 좌파 스스로 이런 상황에 일조했다.
첫째, 포퓰리즘(계급 간 협력) 전략 문제. 민주노총, 정의당, 진보당 등은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로 규정하고, 대략 2020년까지 협력 노선을 유지했다. 그 결과, 개혁을 얻는 데도 실패했고, 그들 자신은 점점 주변화됐다. 우파의 귀환을 막겠다며 번번이 정부 편을 들었다가 개혁 위선의 일부나 동조자(“민주당 2중대”)로 비쳐져 손해를 봤다. 조국과 윤미향 두둔 또는 침묵이 대표적 사례다. 또한 정의당이 민주당의 도움으로 선거법 개혁을 이뤄 2020년 총선에서 도약하겠다고 계산했던 것도 민주당의 위성정당 설립으로 무산됐다.
둘째, 온건한 개혁주의 문제. 경제와 안보가 모두 불안정한 복합 위기 국면에서 민주노총 관료를 비롯한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좌파적 대안보다는 오히려 양극화를 봉합하고 체제를 구하고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큰 듯하다. 특히 2018년의 구조조정 국면, 2020년 코로나19 위기 초반에 이런 점이 두드러졌다.
셋째, 뒤늦고 부족한 차별화. 민주노총, 정의당, 진보당은 2021년부터는 문재인 정부 비판과 차별화를 늘려 오긴 했다. 그러나 대중투쟁을 지지하고 건설한다는 면에서의 차별화가 진정으로 중요한데, 이 점이 부족하다. 또 뒤늦었다. 진작에 그런 실천을 했어야 대선에서 좌파의 존재감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문재인의 개혁을 기대하며 기다리거나 개악에 맞선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 탓에 대중의 사기는 떨어지고 수동화됐다. 위로부터 제공되는 개혁을 중시할수록 상식과 여론, 당선 가능성 같은 실용주의적 가치가 중시되고, 반면 기층 노동자들의 자체 행동과 좌파는 주변화된다.
복합 위기의 심도가 깊은 데다, 주류 정치인들도 지도력을 보여 주지 못하며 오락가락하므로, 정치의 불안정성은 더욱 커졌다. 최근 몇 달 새 이재명과 윤석열 사이 선두 뒤바뀜이 몇 차례나 일어났다. 청년층으로 가면 이런 변동성이 더 심하다. 대선 전망도 불투명하다.
6. 결론
5년 전 촛불 운동을 떠올리면 현재 대선 판도와 좌파 세력의 약화된 존재감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며 노동운동은 미래를 위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노동조합주의를 극복해, 폭넓은 대중이 참여하는 급진적인 운동과 계급투쟁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운동의 정치적 표현체가 등장해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에 기대어 노동자 대중이 정치적으로 수동적 상태로 머문다면, 개혁을 쟁취할 수 없다. 지금 같은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는 오직 노동계급 자신의 좌파적이고 급진적인 대중 행동만이 개혁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경제나 안보 상태를 보면, 진보적 포퓰리즘 전략(민중주의)으로는 개혁을 이룰 수 없다. 계급 모순을 얼버무리고 흐리려 하다가는 모순을 겪고 실패할 뿐이다. 조합주의(경제주의와 부문주의)를 극복하고 전 계급적인 정치적 투쟁이 전개돼야 노동조합 관료들의 민중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 그러려면 혁명가들이 혁명적 조직을 확장해야 한다.
발제자의 정리
박근혜 사면에 관한 민주당 측의 책략적 계산은 부차적이다. 문재인은 박근혜 사면을 “국민 통합”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박근혜의 계속된 구속은 국민 분열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 분열은 나쁜 분열인가? 아니다. 박근혜 사면은 국민의힘과는 경쟁하는 목적의 것이지만, 지배계급 전반을 향해서는 화해 제스처다.
촛불 운동은 무용했는가? 촛불 운동은 수십 년 만에 대중운동이 부패한 정권을 바꾼 승리한 운동이다. 운동의 성과와 운동이 미친 긍정적 영향과 함께,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 또 이전으로 도로 돌아간 것 등을 종합해서 봐야 한다. 가령 박근혜가 사면됐지만, 그가 대통령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대체로 운동의 성과는 노동계급 대중의 의식과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 노동계급의 자체 조직화와 행동 수준이 사회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득표 성장, 민주노총(한국노총도) 노조로의 가입 증가는 계속됐다. 지난해 노조 가입률은 25년 만에 최고치였다. 진보당도 (노조 안팎에서) 성장했다. 정의당은 최근 위기이지만, 전반적 추세가 그렇진 않은 듯하다. 최근에는 스타벅스처럼 노조 바깥에서도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행동이 있다. ‘불편한 용기’가 이끈 불법촬영 항의 운동도 기존의 조직된 운동 바깥에서 벌어져, 서민층 청년 여성이 많이 참가한 대중투쟁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진은 문재인 정부와 협력해 개혁을 얻겠다는 온건한 개혁주의 노동조합 관료들의 주도성 아래 이뤄졌다. 정당 득표나 노조 가입 증가에 비하면, 의식과 행동 면에서의 급진화는 더뎠다. 운동에서 드러난 변화 염원과 운동의 결과물이 같지 않았다. 이것이 촛불의 모순된 성과였다.
노동운동의 대표적 조직들(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등장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회복과 등치시켰다. 탄핵당한 우파로부터 문재인을 방어하고 그와 협력해 위로부터 개혁을 얻겠다는 온건·실용 노선이 판을 쳤다.
운동을 보편화하려는 노력, 즉 각 부문 투쟁들을 서로 연결시켜 정치화하는 게 중요했지만, 개혁주의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사회적 대화”, 입법 로비, 의석 늘리기(선거제 개혁이나 위성정당 참여) 등 의회적 수단에 몰두했다.
노조 지도자들과 다수 좌파가 그 방향을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문재인과 기꺼이 협력하려고 그런 전략에 반대한 혁명적 좌파를 배척했고, 급진좌파 일부도 민주노총 관료들을 추수했다.
개방적이고 연대 확대 지향적으로 운동을 건설해도 모자랄 판에 좌파가 급진 페미니즘의 분열적 행태를 이용하며 경쟁심을 고무해 문제를 악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점점 주변화되고 있는 상황을 탈피하려는 조급함에 급진좌파의 다수가 선거주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대중 행동이 있어야 상황이 바뀌는데, 그런 운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당장은 그저 대중적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 수준이어도 그런 노력들이 꾸준히 누적된 효과와 어떤 객관적 계기가 만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혁명적 좌파는 올바른 분석을 내놓으려고 노력하며 인내심을 갖고 개입해야 한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촛불 초기에 박근혜 퇴진 운동을 개시하자는 제안과 촛불 운동의 초기 견인차였던 철도노조 파업 사이에 매개체로서 노동자연대가 있었다. 우리는 이런 경험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