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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운동:
개혁주의 전략인가 사회주의 전략인가?

지난해 유엔 기후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성과 없이 끝난 지도 두 달이 지났다. 이대로 기후 위기가 재앙으로 치닫는 것을 막으려면 기후 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마틴 엠슨이 살펴본다.

마틴 엠슨은 영국의 환경 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로, 지난해 총회가 열린 영국 현지에서 항의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의 책 《기후변화: 왜 핵발전은 대안이 아닌가?》, 《마르크스와 반자본주의 생태학》, 《COP26  — 환경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후 위기, 불평등, 재앙: 마르크스주의적 대안》(공저)은 한국에서도 출간됐다.

극소수 갑부와 그들을 추종하는 정치인들을 제외하면, 지난해 유엔 기후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성과를 거뒀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활동가들 사이에서 기대가 거의 없었다는 것과는 별개로, 총회가 그토록 알맹이 없이 끝나면서 운동 안에서는 중요한 물음들이 제기된다. 기후 정의를 쟁취하고 환경 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이고 또 조직해야 하는가? 자본주의에 맞서는 것과 관련된 문제들이 이를 둘러싼 논쟁들을 관통하고 있기도 하다.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 지난해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 항의하는 회담장 앞 시위대 ⓒ출처 Andrew McGowan

활동가들만 이런 주제로 씨름 중인 것은 아니다. [1976년부터 발행되는 학술지] 《환경·자원 연간 리뷰》 최신호에서는 기후 과학자 23명이 30년간 이어진 유엔 당사국 총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세계 온실가스 배출은 줄지 않았는가”라는 문제를 다뤘다.

틴들 기후변화 연구소의 케빈 앤더슨을 포함한 이 과학자들이 도달한 결론은 아주 인상적이고, 활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 비슷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배적인 경제적·정치적 이해관계가 기존 질서를 유지하고 변화를 막으려고 적극 나서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또한 경제적·지정학적 분열이라는 더 커다란 맥락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고 식민주의, 제국주의 등 체계적 부정의의 역사도 그런 맥락의 일부다.”

그리고 이 연구가 제시하는 분석은 “‘[인류의] 진보’에 대한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는 질문들을 전면으로 끄집어낸다. 거의 무비판적인 경제 성장 추구, 임시방편의 정치, 편협하고 기술·경제주의적인 합리성이 이 패러다임의 본질적 특징이다.” 또한 “이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세계관과 관점은 여태껏 주변화되거나, 약화되거나,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을 반대하는 데에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은 흔히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화석연료 산업보다 훨씬 더 광범하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더 구조적인 데 있고, [이런 문제의 해결책들은] “기존 질서를 약간 손본 형태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과학자들은 또 다음과 같이 썼다. “진정한 의미에서 결정적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방향을 택하든, 미래는 현재와 급격하게 단절될 것이다.”

사회는 기존 질서와 “양립 불가능한 방식과 규모로 온실가스 배출을 급격히, 근본적으로 줄이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현 체제의 “안정성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능히 뛰어넘을 혼란과 충격이 기후변화로 초래”될 것이다.

이 논문이 의미심장한 것은, 환경 과학자들이 점점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방향의 결론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환경 운동은 이런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체제 변화” 전략인가?

지난 10년 동안 환경 운동 안에서 반(反)자본주의는 강력한 요소였고 그 영향력이 커져 왔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라는 구호가 널리 퍼진 것이 이를 반영한다. 이 구호는 2009년 COP 회담장 밖에서 처음 울려 퍼졌고 이후 세계 곳곳 기후 시위에서 현수막과 팻말로 꾸준히 등장했다.

하지만 체제 변화가 무슨 뜻이고 이를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물음이 많다. 현재 기후 운동에서 주되게 제시되는 전략은 여전히 “개혁주의”다. 여기서 개혁주의란,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하지 않고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한 체제로 고쳐 쓰려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전략하에서도 엄청난 수의 나무 심기, 방대한 지역의 재야생화, 재생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 등을 추구할 수 있다. 이런 구상들은 분명 좋은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상들은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갈수록 많이 배출하는 경제 체제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는 기업 간 경쟁 때문에 모든 것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종속된다. 그런데 개혁주의 전략들은 이런 자본 축적의 논리와 단절하지 않는다.

개혁주의 전략들의 또 다른 문제는 각종 생태 위기들과 사회적 불의를 초래한 식민주의 유산이나 오늘날의 제국주의 문제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유관을 폭파하는 방법”

운동 내 소수는 [체제를 바꾸는 문제에서] 이와는 다른 결론을 도출해 낸다. 안드레아스 말름은 널리 읽힌 도발적인 저서 《송유관을 폭파하는 방법》에서 화석연료 기반 시설을 겨냥한 대중적·전투적·폭력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을 단열하라’[단열 주택의 보급을 요구하는 운동 단체] 등의 다른 단체들은 소수 활동가의 비폭력 직접 행동으로 [도시의 일부나 기업 활동 등을] 마비시키려 한다. 예컨대, 도로 점거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두 운동 경향은 여러 방식으로 서로 맞닿아 있다.

말름은 기후변화 대응의 진전을 막아 온 정부들과 기업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또 자본주의가 생태 재앙을 일으키고 그 핵심부에서 화석연료 산업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이 체제의 본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렇듯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와 기존의 운동이 COP26 등의 회담에서 충분한 조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더 전투적 행동의 필요성을 느낀다. ‘멸종 반란’의 대규모 동원도 그랬고, 규모는 훨씬 작지만 최근 ‘영국을 단열하라’의 행동도 그런 사례다.

운동이 비폭력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말름은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는 ‘멸종 반란’ 지도부 등 운동 내 일부가 비폭력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든다고 비판하는데, 옳은 지적이다. 그런 사람들은 과거에 사회 운동들이 어떻게 변화를 쟁취했는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노예제 폐지 투쟁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분리 체제에 맞선 투쟁, 시민권과 보통 선거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 등에서는 비폭력 대중 행동뿐 아니라 사유재산에 대한 폭력적 공격도 함께 벌어질 때가 많았다고 말름은 지적한다. 변화를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 폭력을 거리낌없이 휘두르는 세력들과 대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말름은, 이 체제의 화석연료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유재산을 겨냥한 공격을 늘려 화석연료 산업의 수지 타산이 맞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그는 《송유관을 폭파하는 방법》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수백만 명이 참가하는 운동이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화석연료 ― 엠슨] 전면 금지를 천명하고 강제 집행하는 것이다. 신규 이산화탄소 배출 장치들을 망가뜨리고 파괴하라.

“그것들을 못 쓰게 만들고, 산산조각 내고, 파괴하고, 불사르고, 폭파시켜야 한다. 지구를 계속 불태우는 일에 투자하는 자본가들에게 자신의 재산이 휴지조각이 될 것임을 알게 하라 … 설령 정부의 금지 명령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해도, 우리의 몸과 다른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실질적으로 금지시킬 수 있다.”

성과를 거둔 운동들의 공통점

화석연료 산업을 겨냥한 행동으로 화석연료 확장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전에 벌어졌던 가장 강력한 운동들은 몇몇 개인이나 단체들이 화석연료 시설 타격 공작에 나서는 운동이 아니라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운동이었다. 송유관이나 셰일 유전 등의 설비에 반대하는 운동들(급진적 저술가 나오미 클라인이 “블록카디아”라고 부르는)은 대규모 행동과 직접 행동을 결합했을 때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석유 기업] 셸은 [영국 북해] 캄보 유전 사업을 포기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경제적 근거가 현재로서는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고 “잠재적으로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 때문이라고 관련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2015년 독일의 화석연료 시설에서 점거 농성 중인 시민불복종 단체 ‘엔데 겔렌데’ 활동가들 ⓒ출처 Paul Wagner/350.org

이 발표가 나온 것은 COP26 기간 중 스코틀랜드에서 최소 10만 명 이상이 시위에 나선 직후였다. 셸이 “잠재적 사업 지연”을 우려한 이유는 환경단체들이 COP26 이후 캄보 유전 반대 시위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잉글랜드 지역에서는 2019년 보수당 정부가 셰일 개발 중단을 선언했는데, 이것도 대중운동의 성과였다. 당시 셰일 유전 거점 투쟁과 차량 저지 투쟁이 대규모 시위와 결합됐다. 대다수 노동조합 운동이 셰일 개발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활동가들은 더러운 화석연료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대안이 있다는 점을 성공적으로 납득시켰다.

미국 스탠딩록에서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에 반대했던 투쟁도 대규모 시위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운동은 선주민들이 이끌었고 환경 운동가, 노동자들은 물론 재향군인들의 지지도 받았다.

스탠딩록 농성장에는 최고 1만 5000명까지 결집했다. 키스톤XL 송유관 건설을 저지한 운동에서도, 백악관으로 수만 명이 행진하는 등의 대규모 시위가 직접 행동과 결합됐다. 그런 거대한 압력이 있었기에 당시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송유관 건설을 중지시켰다. 트럼프는 사업을 다시 허가했지만, 조 바이든이 임기 첫날 사업 허가를 취소했다. 키스톤XL 송유관 건설을 맡았던 TC에너지는 결국 사업을 포기했다.

규모, 대안, 연대

이 사례들은 화석연료 신규 개발을 막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러려면 특정 대상을 향한 전투적 전술(봉쇄와 차단)과, 기업과 정치권을 겨냥한 대규모 시위를 결합하는 대중 운동이 필요하다.

운동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 광범한 사회 세력들을 화석연료 기업에 반대하는 데로 끌어들일 가능성도 커진다. 노동조합 운동을 셰일 개발 반대 입장으로 끌어들이려면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위와 행동을 기초로 거대한 항의 운동을 건설해야 했다.

동시에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사회를 지킬 대안도 제시해야 했다. 노동조합들의 참여는 다시 환경 운동에 자신감과 연대를 제공했다. 또, 노동자들이 체제에 도전할 잠재력에 관한 논의도 제기됐다.(노동자들이 이윤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투쟁적인 소수 활동가의 행동만으로는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에게서 고립되기 쉽다. 예컨대, 1990년대에 ‘지구 먼저!’ 활동가들이 미국 태평양 북서안 고목림 벌목과 야생 서식지 파괴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자 정부와 벌목 기업들은 논쟁의 구도를 ‘일자리냐 환경이냐’로 몰아갔다.

그 탓에 현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구의 스티커를 붙인 차량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벌목 노동자는 지키고 부엉이는 잡아먹자.” 반대 편향으로, 일부 환경 운동가들은 벌목 노동자와 벌목 기업 사장들을 싸잡아서 비난했다. 노동자들은 일자리와 환경을 지키는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잠재력이 있었지만 환경 운동가들은 그들과 단결할 접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안드레아스 말름 전략의 난점

거대 기업들이 석유, 천연가스, 석탄을 계속 채굴하고 정부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에 분개하는 사람들에게 화석연료 산업을 타격하자는 말름의 전략은 매력적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전략은 말름의 생각처럼 전개되기 어렵다.

말름은 국가가 그런 활동가들을 상대로 휘두를 탄압을 과소평가한다. 최소 10명의 활동가들이 도로 점거 시위에 나섰다가 최고 4개월 징역을 선고받고 이번 연말 연휴를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이보다 훨씬 더 가혹한 탄압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지난해 3월 ‘시위제한법’ 항의 시위에 참여한 라이언 로버츠는 14년 형을 선고받았다.

자본주의 국가는 기업의 이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폭력을 휘두르고 무거운 형량으로 위협하기를 조금도 망설이지 않아 왔다. 역사의 비극이게도, 자본가들을 위한 이런 국가 지원의 수혜자는 화석연료 기업인 경우가 많았다.

‘오고니 9인’ 사례를 기억할 만하다. ‘오고니 9인’은 셸이 고향을 파괴하는 것에 맞서 싸우다 1995년 나이지리아 국가에 의해 처형된 선주민 환경 운동가 9명이다.

체제에 저항하는 개인들을 상대로 자본주의 국가가 무지막지한 탄압을 휘두를 수 있다는 점이 이 전략에 가장 큰 장벽이 된다. 일부 사람들(설령 그 참여자가 아주 많더라도)이 관련 기반 시설을 타격하는 것만으로 화석연료 산업을 멈추겠다는 전략은 이 약점을 피할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유정 가동을 중단시키고, 화석연료 기반 시설을 못 쓰게 만드는 문제에서 국가를 편들지 않는다. 동시에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전략으로는 사회와 경제의 근본적 변화를 이룰 수 없다고도 주장해야 한다.

예컨대, 말름은 분명 급진적이지만 그의 전략도 개혁주의적 결론으로 귀결된다. COP26이 끝난 후, 그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기후 재앙을 늦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화석 자본의 종말을 의미한다. 즉, 화석연료로 더는 이윤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정부가 최고 엘리트의 명령을 따르느라 이런 일에 착수할 능력이 없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활동가들에게 화석연료를 폐지할 능력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그럴 잠재력은 국가만 갖고 있다.) 그보다는 그런 압력을 형성하는 것이 활동가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말름이 보기에는, 가장 급진적 형태의 운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화석연료와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성취와 과제

이 모든 논의가 COP26 이후 기후 운동에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첫째, [회담 장소였던] 글래스고에서 확인된 운동의 거대한 규모와 급진성의 의의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실로 대중적이었던 그 운동은 그간 과소 대표됐던 각종 집단의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해 분투한 성과였다.

기후 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덕분에 인종차별 반대 운동, 난민·이주민 단체, 개발도상국과의 연대를 위해 투쟁하는 단체들이 이 운동의 지도부에 포함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처럼 환경 운동과 기후 정의를 요구하는 운동 사이의 연계를 더 발전시켜야 한다.

운동을 충분히 광범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데, 누구든 운동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별적 직접 행동을 대중 시위와 대립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대신 다종다양한 전술을 전부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운동은 자본가 권력을 겨냥하는 데에 전략적 초점을 맞추고, 자본주의를 타도할 사회 세력 즉,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북돋는 구실을 해야만 한다.

대중적 기후 운동이 더 많은 사람들로 뻗어나가고 더 광범한 사회 세력들을 끌어들이도록 해야 한다. 특히 노동자 단체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 노동조합 운동 안에서는 기후 대응을 놓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노총 대의원대회는 핵발전과 천연가스 생산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의안은 “정의로운 전환”을 촉구하기는 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응이 노동자들을 위협한다고 강하게 전제하고 있고, 그 결과 “영국 상품과 일자리를 지키도록” 노조가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COP26 회담 기간 중 ‘기후 정의 세계 공동행동 집회’에 노조의 참여가 많았던 것은 좋은 일이었는데 전국 단위 노조들이 연대체 ‘COP26 동맹’을 공식 지원한 덕분이었다.

11월 5일[세계 공동행동 집회 전날] 글래스고에서는 파업을 벌이던 지자체 청소 부서 노동자들이 기후 파업에 동참했고 그레타 툰베리가 그 대열의 선두에 섰다. 그 노동자들은 다음날 대규모 행진에도 참여하면서 “기후 정의와 사회 정의는 하나다” 하고 외쳤다. 이 노동자들의 노조 상급단체인 GMB는 영국노총의 후진적인 결의안을 지지했지만 말이다.

“사회 정의와 기후 정의는 하나다” 지난해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 항의 시위에 참가한 영국의 청소 노동자들 ⓒ출처 IndustriALL Global Union

이런 사례가 더 많이 필요하고, 사회주의자들이 나서서 노동자들이 자기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더 광범한 환경 투쟁과 연결 짓게 해야 한다. 〈100만 기후 일자리〉 보고서의 주장들은 작업장에서의 정의를 요구하는 투쟁이 탄소 ‘제로’ 사회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훌륭하게 보여 준다.

지속 가능한 사회의 비전

하지만 노동자 조직의 참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적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에서, 이 사회가 굴러가는 것은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동안에도 필수 산업이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구 덕분인가? 정부와 사장들은 감염 위험이 가시지 않았는데도 왜 그토록 노동자들을 다시 일터로 몰아넣으려 했는가? 다시금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에게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 체제의 스위치를 꺼버릴 막중한 “사회적 힘”이 있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서 전략적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혁명적 잠재력을 갖는다는 점을 말름은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자동적으로 기후 운동에 결합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세계 도처에서 파괴적 양상을 드러내는 만큼, 투쟁 속에서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과 기후 정의를 위한 투쟁을 결합시킬 여지는 분명히 있다.

사회주의 조직이 더 광범한 투쟁들에서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의 힘, 특히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발휘하는 경제적 힘을 간과하면 “대리주의적” 급진주의가 운동에서 만연할 수 있다. 즉, 소수의 개인들이 전체 운동을 대신해서 행동에 나서고 그럴 경우 국가는 어렵지 않게 이를 물리치고 파괴할 수 있다. 사회주의 조직이 더 강력하고 그 영향력이 더 클수록 다양한 운동을 서로 연결시키고, 지속 가능한 미래에 대한 반(反)자본주의적 비전을 제시하는 일도 더 수월해질 것이다.

생산을 합리적·민주적으로 조직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위해 생산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노동자 권력의 맹아적 형태를 파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신생,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성인 비합리성, 무질서, 이윤 추구가 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혁명,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결정권을 쥐는 혁명이 필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은 2022년 활력을 되찾을 환경 운동을 내다보며 이런 비전을 갖고 전략적 논의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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