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학숙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사측을 감싼다는 의혹만 남긴 광주시 감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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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와 전라남도가 공동 운영하는 장학시설인 남도학숙에서 벌어진 직장 내 성희롱과 사측의 불이익 조치에 대한 피해 호소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노동자 연대〉 174호에 실린 ‘공공 기관 내 성희롱과 불이익 조치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를 보시오).
성희롱 가해자와 남도학숙의 김완기 원장 등은 처음에 성희롱 사실을 부인하며 되레 피해자를 비난했지만, 피해 당사자인 여성 노동자 A씨의 용기 있는 문제제기 덕분에 올해 3월 ‘성희롱이 맞다’는 국가인권위의 결정이 나올 수 있었다. 진정 후 11개월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측은 성희롱 문제제기 이후 불이익 조치와 괴롭힘이 있었다는 A씨의 문제제기를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국가인권위 결정 후에도 피해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은밀한 따돌림’이 지속되고 있다는 호소도 나오고 있다(〈경향신문〉 6월 25일치).
여성 노동자가 어렵사리 성희롱을 인정받았다 할지라도 성희롱 피해자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적대적인 노동 조건에서는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안정적으로 근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성희롱 문제제기 이후 사측의 불이익 조치에 따른 피해를 원상회복하고 추가 피해를 막는 것이 성희롱 사건 해결에서 중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사측은 최근 오히려 두 차례에 걸쳐 A씨에게 경고성 공문을 보냈다. 성희롱과 관련한 A씨의 주장을 외부에 알리거나 직원들과의 대화 내용을 녹취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내용이다. 남도학숙 성희롱 사건이 시민단체와 언론 등에 알려지고, A씨가 성희롱과 사측의 괴롭힘의 증거로 녹취한 내용이 국가인권위 결정의 근거로 채택되고 언론에도 일부 알려지자 이를 문제 삼은 듯하다.
남도학숙 측은 성희롱 문제제기에 따른 불이익이 있었다는 A씨의 주장을 부인하며, A씨가 외부에 이런 주장을 알린 것이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자 “학숙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녹취 행위가 “직원들 간의 상호화합”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외부에 호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책임은 사측에 있어 보인다. 성희롱 피해를 호소한 여성을 외부전화가 차단된 별실에 보내고, 성희롱 문제제기를 “하극상”, “인성 불량”으로 취급하며 폭언을 한 사실은 인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A씨에 대한 경고성 공문은 피해자에게 외부에 호소하기를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사내 갈등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며 사실상 피해 호소를 또다시 입막음하려는 추가적인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광주시의 눈먼 감사
그런데 지난 4월 25일 남도학숙의 관리감독기관인 광주시는 ‘사측의 불이익 조치(“2차 피해”)가 없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아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기자가 최근 당시 감사 책임자인 황치열 감사관을 인터뷰한 결과, “2차 피해”가 없었다는 감사 결과의 근거는 매우 부실했다. 그래서 이 감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합리적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에서 모두 사측의 주장만 받아들이고 피해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채택하지 않아, 피해자 구제보다는 사측의 방어 논리를 대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보였다.
황 감사관은 남도학숙 측의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피해자의 별실 근무가 “피해자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피해자가 별실 근무를 스스로 “동의”했다고 감사관에게 진술했으며 “A씨는 혼자 있으니까 좋아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감사관의 주장만 놓고 보더라도, 피해자가 따돌림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며 어렵사리 광주시에 피해 호소를 해 놓고는 정작 감사관에게 그런 조치를 ‘스스로 원했다’고 진술했다는 셈이 돼,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자는 황 감사관에게 A씨가 ‘별실 근무를 원했다’고 진술한 증거자료가 남아 있는지를 물어봤으나 “그런 건 없다”고 답했다. A씨는 인권위 진정 이후 직원들과의 관계가 나빠진 상황에서 반어적으로 한 말이 ‘동의’로 인정됐다고 주장했다(〈경향신문〉 6월 25일치).
광주시 감사 결과는 A씨가 사무분장 조정에 서명했다는 점을 “동의”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것을 곧 불이익을 당하는 것까지 “동의”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피해호소를 공정히 조사하고자 하는 감사관이라면 이런 의문을 떠올렸어야 마땅할 텐데도, 황 감사관은 그저 ‘A씨가 동의했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광주시 감사 결과를 보면, 성희롱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외부 전화가 차단된 별실에 근무했고, 피해자가 하던 업무가 변경된 것 자체는 사실로 인정됐다. 또한 CCTV가 피해자의 책상 방향을 향해 있었다. 이에 대해 황 감사관은 “(A씨 때문에 일부러 전화를 차단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방”이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애초에 “원래 그런 방”에 피해자를 보낸 것 자체가 불이익 조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외부전화 불통과 CCTV 방향 문제는 피해자가 국가인권위 조사관에게 호소하고 사측에 시정을 요구한 뒤에야 해결됐다. 또한 5개월가량 지속된 별실 근무는 국가인권위의 성희롱 인정 결정이 나고 광주시 감사가 실시되기 직전에 해제됐다. 그런데 애초에 별실 근무가 ‘피해자를 위한 것’이었다면 왜 감사를 앞두고 원래 자리로 복귀시켰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광주시 감사 결과는 A씨에 대해 직원들의 욕설, 협박, 따돌림 등이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것이 A씨의 “무차별적인 녹취 행위” 탓이라면서 모든 책임을 성희롱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런 감사 결과는 A씨가 왜 녹취를 하게 됐는지는 전혀 묻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성희롱 가해자는 성희롱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사측은 징계 절차는 밟지 않은 채 피해를 호소한 A씨에게 가해자와 화해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 사실을 인정받는 데 피해자의 녹취는 결정적 구실을 했다.
직장 내 성희롱이 벌어지면 직원들 대부분이 관리자 눈치를 보느라 관리자 편에 서기 십상이다. 남도학숙처럼 노동조합이 없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이처럼 피해를 뒷받침할 증인을 구하기 어려운 적대적인 환경에서 녹음은 피해자의 최소한의 자기방어 수단일 수 있다.
광주시는 사측의 해명 논리를 수용하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정작 김완기 원장이 그동안 피해자에게 한 비난과 폭언의 명백한 증거는 외면했다. 김완기 원장은 피해자와의 면담 자리에서 “보기 싫으니까 그냥 나가라. XX하고 자빠졌네, 이런 형편없을 것을 봤나”라는 욕설을 했고, 그 녹취 증거가 남아 있다. 또한, 김완기 원장은 지난해 11월 전남도의회 안전행정환경위원회에서 열린 행정사무감사에서 “성희롱이 아닌 하극상이다 … [가해자가] 순화되지 않은 표현을 한 경우도 있었던 것 같지만, 진정을 해 학숙 명예를 훼손하는 건 있을 수 없다 … 인성이 불량한 여자가 잘못 들어온 케이스”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16년 4월 15일치). 이것이야말로 성희롱 문제제기에 따른 “2차 피해”의 확실한 증거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황 감사관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며 끝내 모르쇠했다.
광주시 감사 결과는 광주시가 남도학숙 사측을 감싼다는 의혹만 남겼다. 남도학숙이 광주시가 운영하는 기관이고,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내년 서울 제2남도학숙 건립(총 공사비가 4백98억 원으로 잠정 확정)을 앞두고 성희롱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릴 수 있다는 점 등이 광주 시의 ‘눈먼 감사’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남도학숙 원장이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과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등을 지낸 권력자라는 점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인 듯하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광주지역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조차 “남도학숙 원장은 지역에서 워낙 명사고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라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싸울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성희롱 문제제기에 따른 불이익 조치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A씨의 문제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성희롱 가해자와 남도학숙 사측을 상대로 한 재판도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이 공공 기관에서 벌어진 직장 내 성희롱과 사측의 불이익 조치를 인정받는 선례가 돼,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고자 하는 다른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성희롱과 사측의 불이익 조치에 당당히 맞서는 여성 노동자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