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
중도가 몰락하고 극우가 부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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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5월 27일치 기사 ‘유럽의회 선거: 정치 위기 속에서 인종차별 정당이 득을 보다’의 개정·증보판이다.
5월 23~26일 열린 유럽의회 선거에서 수십 년 동안 유럽의회를 지배한 양대 “중도” 세력이 장악력을 잃었다.
중도 우파로 분류되는 정당들은 [전체 751석 중] 179석을 얻을 전망이다. 2014년의 216석보다 적은 수다. 중도 좌파 정당들의 의석 수도 191석에서 150석으로 줄 것이다.
[전 벨기에 총리이자] 중도 자유주의 그룹[유럽자유민주연합]의 지도자 히 버르호프스타트는 이렇게 말했다. “전통적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사민당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들은 유럽의회 내 주요 직책을 차지하기 위해 녹색당 등과 동맹을 맺으려 할 것이다.
이는 유럽 전체 수준에서 중도 정치가 몰락한 결과다. 이런 현상은 이미 한 나라 수준에서는 뚜렷히 드러나곤 했으며 [유럽 수준의] 이번 선거에서 더 강화됐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보수 연합과 독일사민당(SPD)의 “대연정”은 득표율이 45퍼센트에 못 미쳤다.
득표
30세 미만 청년층에서 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보수 연합은 고작 13퍼센트를, 사민당은 10퍼센트를 득표했다. 반면 녹색당은 33퍼센트를 득표했다.
영국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의 득표율을 더해도 23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2014년 선거에서 두 당이 득표한 82퍼센트에서 격감한 것이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양당인 공화당과 사회당은 합쳐서 겨우 15퍼센트를 득표했다.
전통적 주류 정당들이 긴축 정책을 추진하며 무너져 내린 자리를 인종차별·극우 정당들이 메웠다. 프랑스의 나치 정당인 국민연합(옛 국민전선)은 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신자유주의적 정당 ‘앙마르슈’[전진당]를 꺾고 1위를 차지했다.
지난 몇 달 동안 마크롱은 노란 조끼 운동과 파업에 직면해 인기를 크게 잃었다. 국민연합 대표 마린 르펜은 마크롱에 대한 광범한 반감을 이용해, 마크롱을 끌어내릴 정당은 국민연합뿐이니 모두가 국민연합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는 너무 취약해서 국민연합에 맞선 대안이 되지 못했다.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일부 좌파 정당들이 노란 조끼 운동을 몇 달 동안 비난한 것 때문에, 많은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투표에 불참한 유권자는 무려 2300만 명에 이른다. 투표 용지를 훼손하거나 백지 상태로 낸 일백만 명 중에도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부총리이자 내무장관인 마테오 살비니가 이끄는 극우 정당 동맹당이 34퍼센트를 득표해 2014년의 6퍼센트보다 훨씬 높은 성적을 냈다. 동맹당이 이주민과 로마인[‘집시’]에 대한 악성 캠페인을 벌인 후에 벌어진 일이다.
헝가리에서는 현 총리 오르반 빅토르가 이끄는 인종차별적 우익 정당 피데스당도 선거 승리를 거뒀다. 피데스당은 52퍼센트를 득표해, 헝가리에 할당된 21석 중 13석을 챙겼다. 오르반은 이번 선거를 두고 “이민자에 맞선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했다.
저항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극우의 부상은 막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의 나치 정당 황금새벽당은 2014년 선거에 비해 득표가 반토막났다. 그리스 활동가들이 황금새벽당 반대 운동을 끈질기게 벌여 황금새벽당의 살인 행각을 폭로한 덕이다.
헤이르트 빌데르스가 이끄는 네덜란드 극우 정당 자유당도 참패해 의석을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은 지난 선거에 비해 득표가 늘었지만 그들이 만족할 만큼은 아니었다.
스페인 극우 정당 ‘복스’(Vox)는 창당 이후 최초로 유럽의회 의석을 얻었지만, 득표율은 4월 총선에 비해 줄었다.
오스트리아 파시스트 정당 오스트리아자유당(FPÖ)은 대규모 부패 스캔들과 활기찬 반파시즘 운동 덕분에 득표율이 [2014년보다] 약 2퍼센트 감소했다. 득표율 하락폭이 더 크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 자유당이 상당한 간부층과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광범한 지지층을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맞서 광범한 운동을 건설하고, 또한 긴축을 추진하는 중도 정당의 몰락에 대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 일들이 중요한 과제다.
의회 중심적 전략으로는 이런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 한때 급진적[좌파적 사회민주주의 ― 역자] 정당이었지만 집권 후 긴축 압력에 굴복한 그리스 시리자는 우파 야당에 참패하고 조기 선거를 선언했다. 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이번 선거가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임 투표라고 말한 바 있다.
스페인에서도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가 주도하는 선거연합의 득표는 격감했다. 이 연합이 지지했던 바르셀로나 시장과 마드리드 시장은 연임에 실패했다.
인종차별과 긴축 모두에 맞선 저항과 투쟁이 우익을 저지하는 데에서 핵심이 될 것이다.
영국
주류 정당들이 정치 위기로 참패하다
5월 23~26일 열린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영국의 정치 위기와 보수당의 처참한 몰락을 훤히 드러냈다.
이는 일시적인 투표 현상이 아니다. 기성 정치 정반에 대한 심각한 반감이 표출된 것이다.
여당인 보수당의 득표율은 9퍼센트에 불과하다. 보수당에게는 전국 선거 사상 최악의 성적이자, 두 세기 이래 가장 나쁜 성적이다.
보수당은 5위를 했고 녹색당에게도 밀렸다. 총리 테리사 메이의 퇴진 선언으로 보수당 대표 경선이 시작되면 당내 분열은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
총리가 사임하고, 의회가 완전히 마비되고, 정부가 조롱거리가 되면 보통, 총선이 열린다.
지금도 바로 총선을 해야 마땅한데 보수당은 시간을 끌려고 할 것이다. 파멸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5월 28일 외무장관 제러미 헌트는 지금 보수당이 브렉시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영국의 정당 체제가 파멸하고 우리 당[보수당]도 끝장날 것이다”고 말했다.
노동당도 보수당만큼은 심각하진 않아도 무시 못 할 위기에 처해 있다. 노동당은 14.6퍼센트를 득표해 유럽의회 의원 수가 반토막났다. 노동당은 스코틀랜드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했고, 웨일스에선 전국 선거 사상 처음으로 웨일스국민당에게 밀렸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지역구인 이슬링턴에서 노동당은 2위를 했지만, [노동당 강세 지역구인] 셰필드, 노리지, 브리스톨, 브라이턴앤드호브에서는 4위를 했다.
자유민주당은 21퍼센트, 녹색당은 12.5퍼센트를 득표했다.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과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노동당 탈당파] ‘체인지 UK’는 전멸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38퍼센트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1위를 했다.
공동전선
노스웨스트잉글랜드 지역에선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축하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인종차별에 맞서자’라는 공동전선의 운동 덕분에 파시스트인 토미 로빈슨이 낙선했다. 로빈슨은 고작 2퍼센트를 득표해 공탁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영국 전체로 보아 이번 선거의 주요 수혜자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 나이절 퍼라지의 브렉시트당이다. 브렉시트당은 3분의 1 가까이 득표했는데, 이는 보수당과 노동당의 표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브렉시트당 투표자가 모두 인종차별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파시스트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극우 인종차별주의자인 퍼라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를 끌어모아 무슬림 혐오와 인종차별 쪽으로 돌린다.
브렉시트당의 이번 승리는 영국에서 인종차별적이고 우익적인 사상을 다시 강화할 것이다.
차기 당대표 자리를 노리는 보리스 존슨 등의 보수당 인사들은 브렉시트당의 승리를 보면서, 인종차별을 가미한 ‘노 딜 브렉시트’ 협박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을 더 굳힐 것이다. [‘노 딜 브렉시트’는 영국이 합의된 것 없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것을 말한다 ― 역자.]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전 총리 테레사 메이가 남겨놓은 난파선에서 뭐라도 건질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영국에서 인종차별 우파의 득세에 분노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6월 4일 영국 방문을 규탄하는 런던 시위에 집중해야 한다.
영국 정치 위기가 커지는 만큼 투쟁을 키우는 것이 절실한 때다.